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자비로운 사랑의 여신, 하토르

하토르(Hathor)는 태양신 라(Ra)의 딸로 종종 이집트 모든 파라오들의 어머니로 그려진다. ‘라의 눈’ 전설 속에서 하토르는 파괴적인 본성을 보여주지만 이것은 흔치 않은 예로 자비로운 본성이 그녀를 대표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토르(Hathor)의 그림자는 여전히 고대 이집트의 기념비적인 역사와 관련된 많은 곳에 존재한다. 하토르는 나일강 근처에서 가장 중요한 여신들 중 한 명이었고 고대 이집트 종교의 가장 잘 알려진 상징물 중 하나로 남아있다. 하토르는 어머니 여신이자 사랑과 쾌락의 여신이었다. 하토르에 대한 숭배는 왕족에서 평민에 이르기까지 대중적이었다. 하토르는 출산 여성들의 수호신이었으며 춤과 음악과 풍요 그리고 광부의 여신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의 사랑의 여신 하토르(Hathor). 출처>구글 검색

 

하토르는 서부의 여왕, 터키석의 여왕, 이국 땅의 여왕으로도 불렸다. 하토르에 대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이집트 제4왕조(BC 2613~BC 2494)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하토르 관련 문화가 더 오래 전부터 있었을 것이라는 몇몇 자료도 존재한다. 이집트 신 왕조(BC 1550~BC 1069) 파라오들이 하토르를 숭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왕 하트셉수트(Hatshepsut, 재위기간: BC 1503~BC 1482)는 데이르 엘 바리에 있는 장제전(국왕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기도와 관존의 예의로 공양의식을 올리던 곳)에 하토르 신전을 추가했다.

하트셉수트는 강력한 여왕권을 위해 하토르와 함께 전쟁의 여신 세크메트(Sekhmet) 숭배를 더욱 강화했다. 하지만 하토르 숭배는 이집트 남성 통치자들에게도 중요한 의식이었다. 가령 람세스 2세(Ramesses II, 재위기간: BC 1279~BC 1213)는 아부 심벨에 하토르와 자신의 아내인 네페르타리(Nefertari)를 두 개의 신전을 짓기도 했다. 하토르 숭배는 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BC 332~BC 30) 기간 동안에도 대중적으로 유행했다.

하토르는 암소의 머리와 귀를 가진 여인 또는 암소 그 자체로 묘사되었다. 나르메르 팔레트(Narmer Palette, 상이집트 히에라콘폴리스에서 발견된 의식용 팔레트)에 있는 왕의 벨트에 새겨진 암소는 십중팔구 하토르 여신으로 추정된다. 이 공예품은 이집트 왕조 시대 이전의 것으로 하토르에 관한 기록 중 가장 빠른 것으로 추정된다. 하토르는 왕의 에이프런이 그녀로부터 왔다는 기록이 있는 피라미드 문서에도 등장한다.

 

하토르의 가장 중요한 조각상 중 일부는 아멘호테프 2세(Amenhotep II, 재위기간: BC 1427~BC 1400) 시절 만들어졌다. 아멘호테프 2세는 자신을 하트로 앞에 서서 그녀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어른으로 묘사했다. 비록 하토르가 암소의 머리를 가진 여자로 묘사되었지만 더 많은 경우 소의 뿔이 달리 머리장식을 하고 그 사이에 태양 원반을 이고 있는 아름답고 날씬한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어떤 책에서는 하토르를 고인을 사후세계로 맞이하는 암소로 묘사하기도 한다. 하토의 여신의 상징은 탬버린처럼 소리를 내는 악기-시스트럼-이였다. 이집트 신화에서 하트로는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세트(Seth)가 호루스(Horus)의 눈을 찔렀을 때 하토르가 호루스의 눈을 치료해 주었다. 이 신화에서 하토르는 호루스가 사막에서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하토르는 작은 영양 종류인 가젤을 잡아서 젖을 짰다. 하토르 여신은 호루스의 눈에 가젤에서 짠 우유를 붓고 그의 시력을 회복시켰다고 한다.

하토르에게 바친 신전은 이집트 전역에 걸쳐 있었다. 오늘날 가장 유명한 것은 룩소르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덴드라에 위치해 있다. 하토르의 첫 번째 신전은 이집트 왕조시대 전부터 그곳에 존재했다고 한다. 덴드라에 있는 하트로 신전은 쿠푸 파라오(Khufu, 재위기간: BC 2589~BC 2566) 통치 기간 재건되었다. 이 신전은 필라의 여인 하토르와 함께 시스트럼 연주자였던 하토르의 아들 이히(Ihy)에게 바쳐졌다.


이히는 손에 악기를 들고 있는 벌거벗은 아이로 묘사되었다. 이 덴드라 신전은 여러 차례 재건 되었고 마침내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큰 건물이 되었다. 불행히도 신전을 짓기로 결심한 파라오가 그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신전 창시자는 알 수 없다. 신전은 미완성이며 기둥을 나란히 세워 천장을 받치는 형식인 하이포스타일 홀로 건물의 주요 부분 앞에는 주탑이나 열린 공간이 따로 없다. 신전에서 마지막으로 세워진 부분은 티베리우스(Tiberius, 로마제국 2대 황제, 재위기간: 14~37) 황제 때로 추정되는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최후의 여왕이었던 클레오파트라 7세(Cleopatra VII , 재위기간: BC 51~BC 30)의 몰락 이후에도 이집트에서 하토르 숭배가 계속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하토르 숭배의 또 다른 중심지는 필레 신전으로 주로 이시스(Isis)의 성역이었으나 하토르 신전도 함께 존재했다. 필래 신전은 두 여신의 묘사에 많은 영향을 주어 이집트 역사 후반기가 되면서 하토르와 이시스를 하나로 간주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 신전을 통해 하토르가 음악과 춤의 여신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신왕조 시대 하토르는 왕의 계곡에서 일했던 장인들이 점령한 디르 엘 메디나에서 매우 인기있는 모티브였다. 고고학자들은 그 마을에서 하토르에게 바쳐진 여러 장의 목조품들을 발굴했다. 발굴된 목조품들의 대부분은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 때의 것이지만 가깝게는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 만들어지기도 했다. 장인들은 하토르를 기리기 위해 기석을 세웠다. 중왕조(BC 2055~BC 1650) 시절 하토르는 레바논의 비블로스(Byblos, 바이블의 어원이 된 도시)에서도 숭배되었다. 발굴된 자료들을 보면 하토르가 비블로스에서도 대중적인 숭배의 대상이었고 그녀를 ‘비블로스 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고 한다. 하토르 숭배의 유적들은 수단 북동부의 누비아에서도 발견되었다.

요즘도 하토르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인기 있는 여신 중 한 명으로 이시스와 세크메트, 바스테트 옆에는 항상 하토르가 미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한편 이집트 시나이(Sinai)를 방문한 많은 관광객들이 터키옥과 함께 보석을 구입하는데 고대 이집트 시절 시나이는 터키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었다. 광부들은 하토르가 자신들을 보호한다고 믿었고 터키옥을 비롯한 많은 보석들을 하토르 신전에 바치곤 했다.

 

이집트 사랑의 여신 하토르는 그리스-로마 문화권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기도 했는데 그리스 신화 속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많은 요소들이 하토르를 모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하토르는 수메르의 사랑의 여신 닌후르삭(Ninhursag)을 상당 부분 모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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