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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장맛비보다 더 짜증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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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이렇게 시작된다.

 

‘밭에서 완두를 거둬들이고 난 바로 그 이튿날부터 시작된 비가 며칠이고 계속해서 내렸다.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쏟아져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면서 칠흑의 밤을 온통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고 있었다.’

 

그렇다. 소설 속 표현처럼 장마는 늘 음침하고 스산하다. 하지만 올 장마는 비도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고 평년보다 늦게까지 장마가 지속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한낮의 더위를 식혀주어야 할 소나기가 오히려 습도만 높여 불쾌지수가 상승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어젯밤 일할 때도 그랬다. 낮 동안 덮혀진 땅을 채 식히기도 전에 한바탕 쏟아지고 만 소나기 때문에 땅에서는 연기처럼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몸뚱이는 멈출 줄 모르고 흐르는 땀에 땅에서 올라오는 습도까지 더해져 기분 나쁘게 끈적이고 있었다. 시간이 더디 가는 게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오늘은 절기상으로는 대서이면서 중복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일년 중 가장 덥다는 날이다. '염소뿔이 더위에 녹는다'는 속담도 대서를 두고 나온 말이다. 대개는 이 즈음에 장마가 끝나고 말복까지 가장 더운 날씨가 이어지는데 올해는 늑장 장마까지 겹치면서 끈적끈적하니 도대체 기운이라곤 어디에 숨었는지 그야말로 녹초가 될 지경이다. 어디 보양식이라도 있을까 두리번거려 보지만 실상은 만사가 귀찮다. 

 

▲장마. 사진>SBS 

 

 

한바탕 쏟아진 후 올라오는 열기를 보니 어릴 적 추억이 문득 떠오른다. 불에 타는 듯 푹푹 찌는 초가집 마당에 번개가 몇 번 번쩍하더니 소나기가 한바탕 내리기 시작했다. 마당은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안개가 모락모락 피기 시작했고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마루 바로 앞 흙마당은 깊에 고랑이 패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마당에는 그리 크지 않은 생명체가 팔딱거리고 있었다. 미꾸라지였다. 산 중턱에 지은 집이라 미꾸라지가 들어올만 한 어떤 수로나 통로도 없었는데 어쨌든 신기했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빗줄기와 함께 떨어졌다고 했고 그렇게 믿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었지만 굳이 과학적으로 캐묻고 싶지는 않다. 추억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대서 즈음에 먹는 추어탕이 최고의 보양이 되었던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무더위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너도나도 보양식을 찾아 발품을 팔고 있다.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민어탕…. 사람마다 체질이 다 다르니 그 체질에 맞는 보양식도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삼시세끼 밥만한 보양식이 있을까 싶다. 체질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어질 습한 무더위에 짜증날 일만 없어도 보양식이 굳이 필요 없을텐데 말이다. 

 

퇴근하고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서 단발성으로 내리는 장마비보다 더 짜증이 밀려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느닷없는 노동 개혁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총대를 매고 나선 것이다. 표를 잃을 각오로 노동 개혁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그 큰 덩치에 공주님 헛기침만 들어도 방울소리 요란스레 울리며 따라다니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여름 냉면값도 안되는 시급에 그나마도 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가 수 백에 이른다는데 뭘 그리 개혁할 게 있다는 것인지. 노골적으로 재벌만 챙겨주기에는 조금은 민망(?)했던 것일까? 아니면 공주님 안중에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힘겨운 일상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노동자, 서민 죽이기에는 역대급 정권이라 할 만 하다.

 

장마비보다 더 짜증난 일은 서민을 졸로 보는 늙은 공주와 그 졸개들의 만행을 침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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