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광역시가 지난 4월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탄생한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5·18 민주화 운동 기념곡 지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 UCC에 올린 동영상 <임을 위한 행진곡-어느 결혼식>이 누리꾼의 관심을 모으고 있지만 올해 기념식에서도 기념곡 지정은 물론 제창도 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30년 넘게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불려졌고 노동자, 농민 등 이 땅의 서민 대중들의 울분과 분노와 희망을 대변해 온 노래였으며 1997년 5·18 민주화 운동이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이후에도 2008년까지 5·18 기념식에서 제창된 노래지만 유독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만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홀대하고 있다.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 34주년이다. 올해도 정부 고위 관계자가 참석하는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공식 기념곡 지정은 물론 제창도 할 수 없게 됐다. 이에 반발해 5월 단체들은 물론 새정치민주연합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도 정부 공식 기념식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가짜 참배객을 동원할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왜 이토록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에 반대하는 것일까?
정부는 기념일과 동일한 제목이 아닌 노래를 부를 때는 제창을 하지 않고 합창을 하도록돼 있다는 규정을 내세우지만 실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여전히 일부 보수단체의 반발을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일부 보수단체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반대하는 이유는 황당 그 자체다. 보수단체의 주장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작사가인 소설가 황석영씨가 방북한 뒤 김일성을 만나고 임을 위한 교향시라는 영화를 제작하며 삽입된 노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이후 쭉 불려진 노래였지만 황석영씨 방북은 그보다 한참 후인 1989년의 일이다. 일부 보수단체의 주장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은 그저 색깔론에 불과하다.
‘아직 이 노래에 대한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의 말이나 ‘국민의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는 정홍원 국무총리의 말은 정부가 여전히 일부 보수·우익 단체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다. 이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명박 정부도 그랬지만 박근혜 정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특히 5·18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된 마당에 여전히 일부 보수단체의 반발을 이유로 기념곡 지정과 제창을 반대한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진실로 인정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 타령까지 불릴 뻔 했으니 이들 정부의 민주주의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어느 수준인지를 보여준다. 정부가 언제까지 5·18 기념식을 파행으로 이끌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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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2007) 중에서 |
한편 작곡가 김종률씨에 따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를 토대로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한 5월 영령들에 대한 살아남은 자의 부끄러움과 미안함에서 만들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백기완 선생의 시 ‘묏비나리’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무너져 피에 젖은 대지 위엔/먼저 간 투사들의 분에 겨운 사연들이/이슬처럼 맺히고/어디선가 흐느끼는 소리 들릴지니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져/세월은 흘러가도/굽이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일어나라 일어나라/소리치는 피맺힌 함성/앞서서 가나니/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백기완 선생의 ‘묏비나리’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혼식 축가였던 노래, 30년이 넘도록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 대중의 애환과 분노를 대변해 주었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정부에게는 아직도 홀대의 대상인 현실은 겉만 화려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주소가 아닐 수 없다. 민주화 운동과 민주주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선진국 운운하는 것은 국민들을 홀리기 위한 위정자들의 말장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를 정상궤도로 되돌릴 수 있는 힘은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임을 위한 행진곡’ 속의 다짐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결혼식 축가는 이제 온 국민이 정부 기념식은 물론 일상에서도 부를 수 있는 희망의 찬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