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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꼴찌를 일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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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지음■박태옥 말꾸밈■(주)자음과모음 펴냄

바야흐로 예능인 암흑시대다.

윤도현과 김제동의 KBS 퇴출에 이어 김미화에 대한 노골적인 압력이 누리꾼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뿐만 아니다. 모순된 세상을 향한 동혁이형의 샤우팅마저 개미소리로 만들려는 압박이 자행되더니 급기야는 허구한날 술에 취해 파출소를 드나드는(?) 박성광이마저 맘에 들지 않는다며 노골적인 압력이 시작되었다.

힘겨워진 삶의 무게에 어깨가 축 처져있는 서민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주는 예능인들이 정작 자신들은 거대한 권력 앞에서 생존을 걱정해야 되는 처지가 되고 만 것이다.

지난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회의에서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은 김인규 KBS 사장이 출석한 가운데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인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에서 박성광이 매주 외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발언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에 앞서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선교 의원이 예능인은 아니지만 그래도 방송인 출신이라는 점이다. 아나운서 시절 사회를 풍자하는 개그들을 그렇게도 증오했나 권력의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바로 본색을 드러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현정부 들어 우리사회는 무한경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그 경쟁이 넘어진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따뜻함이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마는 내용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친구의 손을 뿌리치든, 더 나아가 밟고 일어서든 무조건 1등이 되어야 하고 1등이 되어야만 대우받는 사회, 우리는 그런 인간미없는 각박한 사회에서 살기를 강요받고 있다.


술주정뱅이 박성광은 이런 사회를 향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외치며 많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시대를 사는 누구나 외치고 싶었던 그 말을 박성광이 대신해 주고 있기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한선교 의원은 박성광의 술주정이 마치 자신이 속해있는 기득권 세력들을 향한 불만으로 생각했나보다. 이게 사실이라면 굳이 오판한 것 같지는 않다. 매주 들려오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얼마나 눈엣가시였으면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당당하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KBS 사장을 다그쳤을까?

KBS에 관제사장을 앉힌 이유가 있었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선교 의원의 발언을 들어보면 현정부가 방송장악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목적이 무엇이었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저는 개그콘서트를 좋아 한다”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찝찝한 부분이 한 군데 있는데,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그것이다”
“그건 금방 시정될 수 있는건데 김인규 사장이 취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대사가 계속 나가는데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

왜 하필...제목이 싫었다
현 프로야구 SK와이번스 감독이자 야신(野神)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김성근 감독의 자서전인 『꼴찌를 일등으로』는 사실 제목이 싫었다. 제목이 그 책의 절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등사회, 일류사회만을 부추기는 그런 책으로 오해했다. 진솔하고 솔직담백한 자서전이라기보다 시류에 편승해 보려는 얄팍한 상술로까지 생각되었다.

그러나 공짜의 유혹은 나의 소신을 고양이가 밤새워 뒤지는 쓰레기통 생선 대가리만도 못하게 만들고 말았다. 공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평 사이트에 쭉 나열된 서평목록에는 각 도서마다 10명의 참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나열된 모든 도서에 참여신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꼴찌를 일등으로』이다.

차별과 편견을 이겨내다
서평의 압박을 견디며 읽어간 『꼴찌를 일등으로』는 제목에서 느꼈던 상술보다는 김성근 감독이 딛고 일어서야만 했던 차별과 편견의 그늘을 인식하게 해 주었다.

반은 한국인, 반은 일본인인 재일동포였던 김성근 감독에게 일본과 한국은 말 그대로 반쪽 사회에 불과했다. 한국과 일본 어디서도 온전하게 한국인이 될수도 일본인이 될 수 없었다.

김성근 감독에게 최고의 자리인 '일등'은 차별과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아니 처절한 투쟁이었다. 말투마저 한국말에 일본말 억양이 섞여 어눌하게 들리는 김성근 감독이 비로소 완전한 한국인이 될 수 있는 아니 완전한 한국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건 오직 '일등'뿐이었다. 결국 그는 한국인이 되었다. 아니 태어날 때부터 한국인이었지만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이고서야 비로소 한국인이 되었다.

『꼴찌를 일등으로』 여강여호 서평보기

"1등만 기억하는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다. 한국인 피가 흐르는데도 '일등'이 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인이 될 수 있는 세상. 차별과 편견의 무서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일상에서 저지르고 있는  우리의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기에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별과 편견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꼴찌를 일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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