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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주홍글씨]를 통해 본 간통제 폐지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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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마땅히 겪어야 할 고행이려니, 참고 견디어야 할 종교려니 하고 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참고 견디던 그녀가 이 괴로움을 승리로 바꾸려고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더 자진해서 고행을 맞이했다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 주홍글씨와 그것을 단 사람을 마지막으로 보세요!'

사람들의 희생자요 평생의 노예로 여겼던 헤스터는 말했을 것이다.

‘조금만 있으면 그녀는 당신들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갑니다. 몇 시간 후에는 당신네들이 그녀의 가슴속에서 불타게 만들었던 주홍글씨를 저 깊고 신비한 바다가 영원히 감추어버릴 겁니다.!

자신의 인생과 깊이 얽혔던 고뇌로부터 해방되려던 순간에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서운함을 느꼈으리라는 추측이 인간성에 아주 어긋나는 추측은 아니었으리라." -『주홍글씨』중에서 -


간통(姦通)을 다음백과사전에서 검색해 보니 '배우자가 있으면서 배우자 아닌 다른 사람과 자발적으로 하는 성교'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렇지만 간통죄를 범죄로 인정하고 처벌하는 국가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간통죄를 범죄로 인정하고 있는 우리 사회도 최근 들어 간통죄의 위헌 여부를 놓고 뜨거운 설전이 펼쳐지고 있다. 국가의 지나친 사행활 침해인가! 아니면 선량한 사회 풍속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인가!

여기서 간통을 포함한 부부생활의 다사다난한 단상들을 보여주는 드라마 한 편이 떠오른다. 지금은 종영되었지만 매주 낮은 시청률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상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KBS의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이 바로 그것이다.

늘 드라마 마지막에 등장하는 "4주 후에 뵙겠습니다."라는 신구의 대사는 유행어가 될만큼 사회적 관심이 대단했다. 우리는 이 유행어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혼을 결심하고 가정법원에 찾아온 부부에게 바로 이혼 결정을 내리는 법은 없다. 항상 4주간의 숙려기간을 준다. 물론 이혼으로 인한 가족 붕괴라는 극단적인 파국을 막으려는 법의 배려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극히 사생활 영역에 속하는 부부간의 문제를 국가가 간섭하는 것에 대한 부담일 수 도 있다. 물론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둔다.


또 <사랑과 전쟁>에서 결말은 항상 시청자의 몫이다. 매주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사랑과 전쟁> 홈페이지에 접속해 드라마에 등장한 부부의 이혼을 찬성할 것이지, 반대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과 함께 투표를 실시한다. 간통죄 폐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는 현재 우리사회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하다


간통죄 폐지에 대한 나름의 신념을 갖게 해 준 책이 너새니얼 호손의 『주홍글씨』다. 주인공인 헤스터가 어떻게 살든 그녀의 가슴에는 'A(Adultery)'라는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가 평생 지워지지 않은 채 그녀을 지배하고 있다. 순간의 선택으로 주홍글씨를 달고 사는 그녀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오히려 'A(Angel)'이라는 주홍글씨가 더 어울린다. 물론 헤스터는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을 통해 스스로는 가슴에 'A(Angel)'을 깊이 새기는 심리변화를 겪게 된다.

주홍글씨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장 혹독한 심리적 벌이다. 다수의 편견과 오만으로 새겨진 주홍글씨는 한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사회적 고립을 강요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스스로의 의지로 이 주홍글씨를 찢고 일어선다 치더라도 이미 형성되어버린 사회적 감옥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언제든 다수에게 내재된 잘못된 차별과 편견의 주홍글씨는 시덥지않은 사건을 계기로 괴물이 되어 닥치는대로 먹어치워버린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니", "좌파"니 하는 논쟁들도 주홍글씨의 지워지기 힘든 특성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간통죄로 돌아가 보자
한국사회에서 간통죄의 범죄화가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은 차치하더라도 간통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중처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적 약자라 함은 여성에 해당된다. 간통죄가 성립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하거늘 법적 처벌은 여자와 남자가 모두 받는다치더라도 사회의 차가운 시선은 온통 여성에게만 집중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간통죄 폐지 관련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각종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들의 간통죄 폐지에 대한 찬성 비율이 그리 높지 않게 나온다. 심지어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은 경우도 심심찮게 보도된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부장적 남성중심이라는 데서 오는 여성들의 자기방어적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간통죄가 폐지된다면 여성들은 간통죄가 사라진 공간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또다시 피해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성우월주의가 사라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2008년 간통죄 폐지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미흡하나마 의미있는 결과였다. 9명의 재판관 중 5명이 간통죄를 위헌 및 헌법불합치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위헌에 필요한 정족수 6인을 채우지 못해 결국 합헌결정이 선고되었다. 비록 합헌결정을 받기는 했으나 1990년, 1993년, 2001년에 비하면 변화된 시민의식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결과라는 점에서 희망섞인 전망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또다시 간통죄에 대한 위헌이냐 합헌이냐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열을 뿜게 될 것이다. 간통죄는 지극히 가치판단의 문제다. 개인 기본권 침해나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확실한 사회적 명분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가정의 붕괴와 폐지와 동시에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간통죄 폐지에 관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법적 존폐여부의 결정은 추후 문제다. 분명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에 국가가 개입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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