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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빛의 제국에 낮과 밤이 공존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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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1995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유형을 즐기고 있다. 집을 찾아 떠나는 철새떼라도 지나간다면 힘찬 날개짓이 선명하게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하늘을 받치고 서 있는 땅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있다. 파란 하늘까지 삐죽이 얼굴을 내민 나무에도, 외로이 서 있는 호숫가 집에도 온통 검은 빛이 가득하다. 다만 어둠을 밝히는 불빛만이 호수에 어른거리고 있을 뿐이다. 어떤 상식과 과학을 동원해도 설명이 안되는 이 그림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현대미술에서의 팝아트와 디자인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벨기에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프랑스어, René Magritte, 1898~1967)는 초현실주의 작가로 유명하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빛의 제국>(1954년)이라는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은 고정관념과 상식을 깬 낮과 밤의 공존이 신비스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초현실적인 작품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특히 <빛의 제국>에 나타난 낮과 밤을 대표하는 빛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르네 마그리트의 1954년 作 <빛의 제국>을 그대로 제목으로 옮긴 김연수의 소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1954년>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사실은 어렵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만큼이나 이 소설의 주제를 파악하기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러나 독일 유학생인 '나'가 독일에서 들은 이야기를 통해 어렵게 유추해볼 뿐이다.

보편성의 두 얼굴

주인공 '나'가 독일에서 들은 이야기는 이렇다. 독일에 관광 온 한국인 아주머니가 달빛이 흐르는 강물에 빠져 익사했다. 그런데 이 아주머니는 힐프 고트(Hilf Gott!) 대신 '사람 살려'를 외친다. 한편 이 아주머니를 안내하던 여자 유학생은 이 아주머니는 평생 독일에 갈 꿈만 꾸고 살았고 독일이라는 먼 곳에서 진정한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자 유학생은 왜 이렇게 먼 곳에서 진정과 자신과 만날 수 있다고 믿었을까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서 이 세계에 보편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보편성의 사전적 의미는 '모든 것에 두루 통하거나 적용되는 성질'을 말한다. 많은 대중이 공감하는 정서가 보편성일 것이다. 그렇다면 독일에 관광왔다 봉변을 당한 한국인 아주머니도 '힐프 고트' 대신 '사람 살려'를 외쳐도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보편성이라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 또 이 아주머니의 꿈이 머나먼 독일이 아닌 한국에서도 실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보편성이 가지는 한계다. 즉 보편성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다. 더 좁게는 인종과 종교, 문화, 환경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것이 보편성이다.

독일 유학생인 '나'가 엄마와 아버지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라도 결국 한국에 돌아와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이나 증조 할아버지의 산소에 떼를 입혀야 한다는 것도 우리네의 가장 보편적인 정서다. 이런 보편적 정서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아버지 세대의 한물 간 풍습일지도 모른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살고 있는 '나'에게는 결코 보편적이지 않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는 그들만의 정서일지도 모른다. 한편 아버지로 인해 생긴 이복동생 재식에 대해 '잘 안된다'는 말로 차별을 가했던 어머니의 행동도 흔쾌히 인정해 줄 수 있는 한국적인 보편성이다.

보편성의 한계, 즉 시간과 공간의 벽은 사람들에게 페른베(Fernweh, 먼 곳에의 동경)를 꿈꾸게 한다. 한국인 아주머니가 그랬고 이복동생 재식이 그랬다. 그렇다면 보편성의 사전적 의미는 여지없이 퇴색되고 만다.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빛의 제국에서 보편성의 참의미를 보다

저자는 '나'와 시앗(첩)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어머니의 차별을 피해 가출한 재식과의 화해를 통해 보편성의 참의미를 되새겨 준다.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은 어릴 적부터 미술을 좋아했던 재식이 좋아했던 그림이자 현재는 재식이 살고 있는 곳의 풍경이기도 하다. 어렴풋하게나마 르네 마그리트의 초현실적인 그림이 상징하는 주제의식을 이해하게 된다.

"그때 내 눈앞으로 펼쳐진 마을 풍경이 어떻게 보였는지 알아? 저기 말이야. 못 뒤에 보안등을 켜놓은 동사무소 말이야."
"르네 마그리트?"
"어떻게 알아? 그래, 바로 그거야. 「빛의 제국」. 어떻게 알았지?"
"이젠 나도 알 수 있을 것 같아."

저자의 시선은 좀 더 사회적인 이슈로 확대되기도 한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이다. 연일 TV에서는 북한 주민들의 이해하기 힘든 풍경들을 보여주곤 한다. TV에 비친 북한 주민들은 도통 이해하기 힘든 장면만을 연출한다. 김일성의 죽음 앞에 대성통곡하는 풍경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이념의 차이가 만든 보편성의 전형이다. 그러나 통일을 위해서는 이런 북한 주민들의 보편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빛의 제국」에서 낮과 밤이 공존하는 것처럼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서로 다른 보편성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통일 논의의 시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빛의 제국」은 '모든 논리가 사라지고 결국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로 뭉뚱그려져 존재하는 공간'을 상징하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에 갇혀있는 보편성은 무덤과 함께 무너져 내려야 한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겨우 무덤 하나를 무너뜨리고 독일로 돌아가는 날 '색시 하나 만들어서 오라'는 어머니의 말에 '또 어머니가 만든 그 무덤 속으로 들어가란 말인가?'라고 생각하고는 손을 저으며 사양한다. 

마지막으로 재식이 「빛의 제국」 에 관한 기사에서 밑줄을 쳐놓은 르네 마그리트가 미셸 푸코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되새겨 본다.

닮음과 비슷함이라는 단어들을 통하여 당신은 세계와 우리 자신들이 전혀 새롭게 존재하는 광경을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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