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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Apollo) 또는 아폴론(Apollon)은 강력한 그리스 신이자 올림포스 12신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예언, 치유, 예술, 문화의 수호신이자 남성적 아름다움의 화신이었다. 아폴론은 야생과 사냥의 여신이자 쌍둥이 누이인 아르테미스와 함께 올림포스 2세대에 속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수염이 없는 젊은 남성 즉 쿠로스로 묘사되었다. 고대 예술 작품에서는 아폴론은 리라나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아폴론은 그리스 판테온의 최고신 제우스와 티탄 신족의 후손인 레토의 아들이었다. 신화에서 아폴론은 쌍둥이 누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델로스 섬에서 태어났다. 델로스 섬은 제우스의 질투심 많은 아내 헤라가 레토의 출산을 막으려 했을 때 레토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지상 유일의 장소였다. 아폴론은 이 섬을 자신의 숭배 중심지 중 하나로 만들어 보답했다.

 

아름다운 청년으로 묘사된 아폴론.

 

아폴론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청년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그는 활, 리라, 키타라 등 자신의 역할과 힘을 상징하는 다양한 악기로 구별되었으며 종종 월계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아폴론의 신성한 동물에는 까마귀와 늑대가 포함되었다. 아폴론은 성소와 축제를 통해 널리 숭배되었다. 델포이에서 열린 그의 신탁은 그리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탁 중 하나였다. 아폴론은 또한 자신이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작은 섬 델로스에 주요 성소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올림포스 신들과 마찬가지로 아폴론도 풍부한 신전 숭배를 받았고 델포이에서 열린 피티아 제전을 포함하여 그리스 세계 전역에서 정기적인 축제를 통해 숭배되었다. 그는 또한 건강과 의학과 같은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과 관련하여 숭배되었다. 다양한 맥락에서 아폴로에게 바치는 찬가라고 불리는 의식적인 기도가 행해지기도 했다.

 

한 신화에 따르면 젊은 아폴론이 델포이에 신탁을 세우던 중에 피톤이라는 괴물 뱀 또는 용을 만났다. 격렬한 전투 끝에 아폴론은 피톤을 화살로 처치해 승리했다. 그 후 그는 패배한 적의 시체 위에 자신의 신탁소를 세웠다. 그 이후로 델포이의 아폴론 여사제는 신의 승리를 기리는 피티아로 알려지게 되었다.

 

키타라를 들고 있는 아폴론.

 

대부분의 그리스 신들과 마찬가지로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어원은 신비로운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 청동기 시대(기원전 1600년경~1100년경)에 음절 문자로 기록된 그리스 문명의 가장 오래된 문서인 선형 문자 B 석판에는 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아폴론이 그리스 만신전에 늦게 추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폴론의 가장 흔한 별칭 중 하나인 파이안이라는 이름은 선형 문자 B 석판에 등장한다. 일부 학자들은 아폴론이라는 이름이 고대 그리스어 도리아 방언으로 ‘공공 집회’를 의미하는 단어인 아펠라(Apella)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아폴론이라는 이름의 도리아식 형태는 아펠론(Apellon)이다. 이 해석에서 아폴론은 ‘집회를 여는 자’ 또는 "집회하는 자’로 번역되는데 이는 문명 질서를 가져오고 시민 헌법의 근원이라는 그의 명성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다.

 

반면 하버드 대학교 고전학 교수인 그레고리 나기(1942년~)는 아폴론이 ‘약속, 자랑 또는 위협’을 의미하는 명사인 아페일레(Apeile)와 이의 동사인 아페일레인(Apeilein)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어원에 따르면 아폴론은 권위 있는 언변의 신, 노래와 시의 영역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언변 행위를 주관하는 신이 된다.

 

아폴론의 트리포드(삼각대).

 

아폴론은 종종 파이안(Paean)으로 불렸는데 이는 치유와 보호의 신으로서 그의 의식적 기능을 강조하는 이름이었다. 이는 매우 오래된 이름이었고 어쩌면 아폴론이라는 이름보다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른다. 아폴론의 또 다른 이름은 포이보스(Phoebus)였는데 이는 아폴론의 가장 널리 알려진 별명 중 하나이다. 많은 고대 자료에서 아폴론을 ‘포이보스 아폴론’ 또는 그냥 ‘포이보스’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은 아폴론보다는 포이보스라는 이름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아폴론을 지칭하는 또 다른 이름으로는 록시아스(Loxias. 모호한 신탁), 리케우스(Lyceus. 빛, 늑대, 리키아 지역 등을 가리킴)가 있었다.

 

아폴론의 다양한 기능은 그의 수많은 별명에 반영되어 있다. 파이아, 포이보스, 록시아스, 리케우스와 같은 별칭 외에도 아폴론은 헤케볼로스(Hekebolos. 멀리 쏘는 자), 헤카에르고스(Hekaergos. 열심히 일하는 자), 에피쿠우리오스(Epikourios. 돕는 자), 울리우스(Oulious. 치유하는 자), 로이미오스(Loimios. 역병을 퍼뜨리는 자), 알렉시카코스(Alexikakos. 악의를 품은 자)로도 불렸다. 델리오스(Delios. 델로스), 피티오스(Pythios. 피티아), 스민테우스(Smintheus. 스민티아)와 같은 별칭은 아폴론의 숭배 장소를 가리킨다.

 

니오베 자식들을 공격하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아폴론은 주로 예언, 음악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과 연관되었다. 하지만 그는 또한 의약과 역병, 가축, 식민지화 그리고 미덕의 신으로도 여겨졌다. 아폴론은 또 보편적이고 미적인 질서, 문명 그리고 이성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자격으로 그는 악하고 오만한 자들을 처벌했다. 예술에서 아폴론은 조화와 질서를 상징하는 반면 예술의 또 다른 신성한 수호신인 디오니소스는 황홀경과 혼돈에 집중했다. 이것은 예술 창작의 두 대립되는 극단인 아폴론적과 디오니소스적의 결합을 이끌었다. 이러한 대립은 19세기 독일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인 프리드리히 니체에 의해 특히 유명해졌다.

 

아폴론은 고대부터 예술과 문학에서 영원히 젊고 잘생긴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윤기 나는 머리카락, 말끔하게 면도한 얼굴 그리고 지나치지 않은 근육질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신은 활이나 악기(보통은 리라로 알려졌지만 때로는 키타라라는 현악기)로 가장 흔하게 식별되었다. 아폴론의 상징은 많았다. 활, 리라, 키타라 외에도 희생과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키가 크고 세 발이 있는 구조물인 삼각대(트리포드)도 아폴론의 상징이었다. 이 삼각대는 예언의 신으로서의 아폴론의 기능을 나타냈다. 델포이 삼각대는 델포이에서 아폴론의 여사제들이 앉아 신의 예언을 전달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아폴론의 상징에는 야자수(그가 태어났다고 전해지는 나무), 월계수(아폴론의 영예를 안은 사람에게 씌워짐), 사이프러스와 같은 신성한 식물도 포함되었다. 마지막으로 아폴론의 상징에는 다양한 신성한 동물이 포함되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동물로는 백조와 매미(음악과 노래를 상징)가 있었다. 큰까마귀, 매, 까마귀(그의 전령), 뱀(예언과 관련), 늑대, 돌고래, 사슴, 쥐, 그리핀 등도 아폴론을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마르시아스와 음악 경연대회를 하는 아폴론.

 

아폴론 신화는 제우스와 레토(티탄 신족 코이오스와 포이베의 딸)의 결합으로 탄생한 놀라운 사건으로 시작된다. 레토는 제우스가 헤라와 결혼한 사이 쌍둥이를 임신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헤라는 레토의 출산을 막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기원전 3세기 시인 칼리마코스에 따르면 헤라는 아들 아레스를 보내 레토를 맞이하는 사람이나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결국 레토는 에게 해의 작고 황량한 섬인 델로스에 도착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아폴론은 자궁 속에서 어머니에게 직접 속삭이며 레토에게 이 섬으로 피난하라고 말했다고 한다. 산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레토는 섬에 호소하여 그곳에서 출산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며 만약 그녀에게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 준다면 아폴론이 언젠가 이 보잘것없는 섬에 거대한 신전을 짓겠다고 약속했다.

 

델로스 섬은 자연적으로 줄 수 있는 선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레토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레토는 이 섬에서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쌍둥이를 낳았고 그 대가로 델로스는 아폴론의 성지가 되었다. 길고 고통스러운 산고 끝에(헤라는 출산의 여신인 딸 에일레이티이아가 레토에게 가는 것을 막음으로써 이 산고를 연장했다) 마침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어났다. 어린 아폴론은 화려한 옷으로 감싸졌고 법과 질서의 여신 테미스는 그에게 넥타르와 암브로시아를 먹였다. 아폴로는 빠르게 성장했다. <호메로스 찬가> 3장에 따르면 태어나자마자 그는 모든 이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리라와 굽은 활은 영원히 내게 소중하리라. 나는 사람들에게 제우스의 변함없는 뜻을 전하리라." 여러 자료에 따르면 델로스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가 태어나기 전에는 떠도는 섬이었다. 레토처럼 델로스는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나 쌍둥이 신이 태어난 후 델로스는 그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델로스는 영원히 아폴론의 신성한 섬으로 자리 잡았다.

 

헥토르의 시신을 보호하고 있는 아폴론.

 

젊은 아폴론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피톤이라는 짐승을 사냥하기로 결심했다. 태초의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인 피톤은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용이었다. 가장 널리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아폴론은 이 짐승을 추적하여 델포이까지 가서 활과 화살로 죽였다. 그 후 그는 델포이의 신탁소를 장악하여 예언을 전하는 중심지로 삼았다. 그러나 로마 신화 작가 히기누스에 따르면 아폴론이 피톤을 죽인 것은 어머니 레토가 출산할 곳을 찾던 중 피톤이 그녀를 쫓았기 때문에 복수심에 불타올랐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폴론이 누이 아르테미스와 함께 어머니 레토를 겁탈하려던 괴물 티티우스를 죽였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일부 버전에서는 티티우스가 제우스에게 살해당했고 다른 버전에서는 레토가 직접 티티우스를 죽였다.

 

아폴론은 태어난 직후 음악에 입문했고 곧 우주 최고의 음악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이 칭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호메로스 찬가>에 자세히 묘사된 한 이야기에서 헤르메스는 아폴론의 소 여러 마리를 훔쳐 동굴에 숨겼다. 그곳에서 헤르메스는 거북을 죽이고 내장과 껍질로 최초의 리라를 만들었다. 한편 아폴론은 이 도난 사건에 분노하여 제우스에게 보고했고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훔친 소를 돌려주라고 명령했다. 헤르메스가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아폴론이 목격했다. 젊은 신은 그 악기에 매료되어 소 대신 그것을 받기로 했다. 때때로 어리석고 오만한 자들이 아폴론에게 음악 경연 대회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판이 자신의 음악과 아폴론의 음악을 비교했을 때 신의 분노를 샀다. 그들은 리디아의 왕 트몰로스를 경연 대회의 심판으로 선택했다. 판은 파이프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지만 아폴론은 리라를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연주하여 즉시 승자로 결정되었다. 미다스 왕이 결과에 불만을 표하자 아폴론은 그의 귀를 당나귀 귀로 만드는 저주를 내렸다.

 

연인 히아킨토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폴론.

 

아폴론에게 도전한 것에 대한 처벌은 훨씬 더 가혹했을 수도 있다. 사티로스 마르시아스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어느 날 아테나가 만들어 버렸다가 버린 일종의 플루트인 아울로스를 발견했다. 그는 그 악기를 잘 다루었고 결국 자신이 아폴론보다 더 나은 연주자라고 믿게 되었다. 아폴론은 다시 한번 도전자와 결투를 준비했다. 마르시아스는 잘 연주했지만 결국은 아폴론의 리라와 목소리의 조합이 승리했다. 일부 이야기에서는 아폴론이 리라를 거꾸로 연주하고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연주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결정적으로 증명했다고 한다. 마르시아스가 파이프를 거꾸로 연주하려 했을 때는 성공률이 떨어졌다. 그러나 모든 판본에서 그의 오만에 대한 처벌은 죽음이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나무에 매달고 그의 살갗을 벗겨냈다.

 

아폴론과 관련된 테베의 왕 암피온의 아내 니오베는 오만의 결과에 대한 또 다른 유명한 이야기일 것이다. 이야기에 따르면 니오베는 일곱 명의 아들과 일곱 명의 딸 등 열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어느 날 니오베는 자신이 레토 여신보다 더 축복받았다고 큰 소리로 자랑했다. 자신에게는 아름다운 아이가 열 네 명인 반면 레토에게는 두 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니오베를 처벌하기 위해 레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보내 니오베의 아이들을 몰살했다. 아폴론은 자신의 활로 아들들을,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활로 딸들을 죽였다. 니오베의 남편 암피온 역시 죽었다. 오직 니오베만 남았다. 비탄에 빠진 니오베는 슬픔에 잠겨 쇠약해졌고 그녀의 눈물은 강이 되었고 그녀 자신은 돌이 되었다. <메타모르포세스>를 쓴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이 가슴 아픈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아폴론과 무사이

 

그러나 일부 판본에서는 니오베의 자녀 중 적어도 한 명은 살아남았다고 한다. 아폴로도로스는 생존자를 멜리보이아라고 부르고 암피온 또한 죽음을 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서는 두 아이가 살아남았는데 아들과 딸 각각 아미클라스와 클로리스였다고 한다. 로마 신화 작가 히기누스는 아폴론이 니오비드 왕조에게서 빼앗아 간 수명을 클로리스의 아들 네스토르에게 주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이것이 네스토르가 장수한 이유였다.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아폴론의 아들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음의 치료법을 발견하고 시행했지만 제우스가 의학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이유로 그를 죽였다.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아폴론은 제우스가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이는 데 사용한 번개를 만든 키클롭스를 살해했다. 아폴론을 처벌하기 위해 제우스는 아폴론에게 페라이의 왕 아드메토스를 위해 일정 기간 동안 고된 노역을 하도록 했다.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의 가축을 돌보는 형벌을 감수했다. 하지만 아드메토스는 친절한 사람이었고 아폴론을 존중했다. 그 대가로 아폴론은 아드메토스의 번영을 보장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아폴론과 아드메토스는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로마 시대 아폴론 프레스코화.

 

아폴론은 노역 기간이 끝난 후에도 아드메토스의 헌신적인 친구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아드메토스의 삶이 곧 끝날 운명임을 알게 된 그는 모든 필멸자의 수명을 재는 운명의 세 자매 여신 모이라이와 타협에 성공했다. 아드메토스가 자신을 위해 기꺼이 죽을 사람을 찾으면 자신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폴론은 이 거래를 아드메토스에게 제안했고 아드메토스의 아내이자 아름다운 알케스티스는 그의 아내를 위해 죽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결국 비극은 피했고 아드메토스의 또 다른 친구인 헤라클레스의 힘 덕분에 두 사람은 재회했다. 헤라클레스는 여행 중 우연히 페라이에 들렀고 알케스티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게 된 후 죽음 자체를 정복하여 그녀를 남편에게 데려왔다.

 

한 신화에서 아폴론은 포세이돈과 함께 트로이의 왕 라오메돈이 그의 위대한 도시에 요새를 건설하는 것을 도왔다. 일부 전승에 따르면 이 작업은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올림포스의 지배자 자리를 차지하려 하자 제우스가 내린 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전승에서는 두 신이 라오메돈의 오만함을 시험해 보고자 기꺼이 나섰다고 한다. 아폴론과 포세이돈은 지시받은 대로 작업을 수행했지만 고대 자료에서는 분업에 대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일부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요새를 건설했고 아폴론은 라오메돈의 가축을 돌보았다고 한다. 핀다로스는 심지어 아이아코스라는 필멸자의 도움을 받아 두 신이 트로이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 트로이는 결국 함락될 운명이었기에 신들만으로는 건설할 수 없었다(그러한 도시는 진정으로 난공불락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필멸자 아이아코스가 쌓은 성벽의 일부는 항상 약점이 될 것이었다.

 

어쨌든 라오메돈은 아폴론과 포세이돈이 성벽을 다 짓자 돈을 지불하기를 거부했고 심지어 노예로 팔려고까지 했다. 이는 특히 변덕스러운 포세이돈을 화나게 했는데 그는 바다 괴물을 보내 트로이의 시골을 황폐화시켰다. 결국 트로이는 두 번 함락되었다. 한 번은 라오메돈이 헤라클레스를 화나게 했을 때(아폴론과 포세이돈을 화나게 했던 방식과 매우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고 또 한 번은 10년간의 트로이 전쟁(아름다운 헬레네에 대한 사랑을 놓고 벌인 전쟁) 이후였다.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

 

트로이 전쟁 동안 아폴론은 트로이를 강력하게 방어했다. 어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트로이의 여왕 헤쿠바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사랑했고 예언의 기술을 전수했던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쟁 내내 아폴론은 사건의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전쟁 초기 아폴론의 분노는 강력한 영웅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에 불화를 일으켜 아카이아인들을 파멸시킬 위기에 처했다. 이 불화는 아가멤논이 아폴론의 사제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전쟁 포로로 잡아갔을 때 시작되었다. 크리세스는 먼저 딸의 몸값을 요구했다. 이것이 실패하자 그는 아폴론의 중재를 요청했다.

 

올림포스 산 정상에서 내려오던 아폴론은 분노에 차 활과 화살통을 어깨에 메고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분노한 신이 움직일 때마다 화살이 어깨에 부딪혔고 그의 출현은 마치 밤과 같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함선들과 떨어져 앉아 화살을 쏘았다. 은빛 활의 울림은 끔찍했다. 그는 먼저 노새와 날쌘 개들을 공격했지만 그 다음에는 인간들을 향해 날카로운 화살을 쏘아 공격했다. 죽은 자들의 장작더미는 끊임없이 두껍게 타올랐다. 수많은 전사자가 나온 후에야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왜 고통받는지 깨달았고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에게 크리세이스를 화난 사제에게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아가멤논은 굴복했지만 두 사람 사이의 호의는 영원히 깨졌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포로인 브리세이스를 크리세이스 대신 데려갔고 이에 아킬레우스는 그리스군을 위해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갈등의 다른 시점에서 아폴론은 트로이 편에서 싸웠거나 아이네이아스와 헥토르와 같은 트로이 영웅을 대신하여 중재했다. 전자가 전장에서 디오메데스의 손에 부상을 입었을 때 아폴론은 아이네이아스를 보호하기 위해 안개로 현장을 덮었다. 아폴론은 또한 아킬레우스의 가장 친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적 갑옷을 입고 전투에 나갔을 때 헥토르가 그를 죽이는 것을 도왔다. 나중에 아폴론은 백병전에서 아킬레우스에게 패배한 헥토르에게 다시 자신의 힘을 사용했다. 아킬레우스가 마침내 헥토르를 물리쳤을 때 아폴론은 안개를 사용하여 아킬레우스가 승리와 분노로 훼손하려 했던 시신을 덮었다. 결국 아폴론은 거의 무적이었던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초래했다. 아폴론은 트로이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아킬레우스가 아들 테네스를 죽인 것에 대해 오랫동안 원한을 품고 있었다. 대부분의 전승에서 아폴론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쏜 화살을 아킬레우스를 죽이도록 조종했다.

 

아폴론은 대부분의 그리스 신들처럼 수많은 연애를 했다. 하지만 모든 연애가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 것은 아니며 실제로 아폴론의 가장 유명한 연애 이야기 중 상당수는 실망, 배신 혹은 짝사랑에 대한 내용이다. 한 신화에서 아폴론은 코로니스라는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졌다(일부 전승에서는 그녀의 이름이 아르시노에라였다). 그러나 코로니스는 인간 이스키스를 사랑했고 그녀가 아폴론의 아이를 임신한 동안 그와 잠자리를 가졌다. 아폴론은 코로니스의 불륜을 알게 되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그녀를 죽였다. 코로니스의 시신이 화장터에서 화장되는 동안 아폴론은 그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불타는 시신에서 아기를 꺼냈다. 이 사건을 제왕절개의 시초로 보는 견해도 있다. 아스클레피오스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위대한 의사가 되었지만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또 다른 유명한 신화는 아폴론과 잘생긴 청년 히아킨토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아폴론과 히아킨토스가 들판에서 수련하던 중 아폴론은 실수로 원반으로 히아킨토스의 머리를 쳤고 히아킨토스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 상심한 아폴론은 죽은 연인을 히아신스 꽃으로 변하게 했고 그 꽃잎은 그리스어로 ‘아아’를 뜻하는 아이아이(aiai)를 형성했다. 아폴론이 사랑했던 다른 이들은 신의 사랑에 보답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요정 다프네는 아폴론이 그녀를 겁탈하려 하자 도망쳤다. 신이 그녀를 품에 안으려는 순간 다프네는 월계수로 변했다. 오비디우스의 아름다운 희곡에 따르면 다프네의 온몸은 무기력증에 휩싸였고 얇은 나무껍질이 그녀의 부드러운 가슴을 감싸 안았으며 그녀의 머리카락은 움직이는 나뭇잎처럼 변했다. 그녀의 팔은 흔들리는 나뭇가지로 변했고 뿌리처럼 움직이는 발은 땅에 붙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나뭇잎으로 둘러싸여 가려져 있었다.

 

다프네는 새로운 모습으로 변했지만 아폴론의 마음속에 영원히 특별한 자리를 차지했다. 아폴론은 자신의 사제들과 여사제들 그리고 자신을 기리기 위해 델포이에서 열린 피티아 경기 대회 우승자들이 이 월계관을 쓰도록 명령했다. 아폴론은 또한 프리아모스와 헤쿠바의 딸인 아름다운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를 사랑했다. 아폴론은 카산드라에게 예언 능력을 주며 그녀가 자신과 잠자리를 갖기를 바랐다. 카산드라가 거절하자 아폴론은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렸다. 결국 카산드라는 백성들에게 트로이가 함락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아폴론은 그리스 신화 속 어디에나 존재한다. 앞서 언급된 신화들은 아폴론이 등장했던 수많은 이야기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다른 주목할 만한 신화들은 올림포스 신들과 거인족 사이의 끔찍한 전쟁인 기간토마키아에서 아폴론의 역할을 묘사하고 있다. 대부분의 자료에서 아폴론은 에피알테스라는 기간테스와 싸운 신들 중 하나였으며 핀다로스에 따르면 그가 거인 포르피리온을 화살로 죽였다고 한다. 아폴론은 또한 알로아다이(알로에우스의 아내 이피메데이아 공주의 쌍둥이 아들을 일컫는 말) 오토스와 에피알테스를 죽인 신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 두 건방진 형제는 헤라와 아르테미스를 납치하여 아내로 삼으려 했다. 그래서 그들은 두 개의 산을 서로 쌓아 올리고 올림포스의 신들을 공격했다. 어떤 판본에서는 아폴론이 화살로 알로아다이를 죽였다고도 한다. 다른 판본에서는 아폴론이 계략을 써서 그들을 죽였는데 두 형제 사이에 사슴 한 마리를 놓아주자 서로 창을 던져 서로를 맞혔다고 한다.

 

그리스 미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 다른 대중 신화에서 아폴론은 헤라클레스와 싸웠다. 이야기에 따르면 헤라클레스는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의 신탁소에 어떤 문제에 대해 문의했지만 신탁소의 답변에 불만을 품었다. 결국 그는 델포이의 삼각대를 훔쳐 자신의 신탁소를 열려고 했다. 아폴론은 즉시 올림포스에서 내려와 헤라클레스에게서 신성한 삼각대를 빼앗으려 했다. 제우스가 이 배다른 형제를 떼어놓음으로써 싸움이 끝났다.

 

아폴론은 그리스인들이 상상했던 그리스 문화의 궁극적인 표현이었다. 젊고 활력 넘치며 강력하고 현명하며 평화롭고(때로는 정의로운 분노가 터져 나오기도 했지만) 빛과 시, 음악 그리고 문명으로 가득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문화적 표현 덕분에 아폴론은 그리스 세계 전역에서 널리 사랑받고 존경받았다. 그의 유동적인 성생활조차도 남녀 모두의 에로틱한 쾌락을 포용했던 문화를 시사한다. 아폴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수많은 신전, 조각상 그리고 기타 기념물들을 보면 고대 그리스인들의 아폴론에 대한 존경심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폴론 축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델포이에서 4년마다 열리는 피티아 경기 대회였다. 경기에는 레슬링, 달리기, 승마 및 전차 경주 등의 운동 경기와 음악, 시 심지어 그림까지 다양한 예술 경연이 포함되었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도 대부분의 경기에 참가할 수 있었다. 우승자에게는 월계관으로 장식된 화관이 수여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피티아 경기 대회는 아폴론이 괴물 피톤을 물리치고 델포이를 신탁소로 삼은 후 직접 제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피티아 경기 대회가 기원전 582년경에 시작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아폴론의 또 다른 중요한 축제는 델로스 섬에서 4년마다 열리는 델리아 경기 대회였다. 델리아 축제 기간 동안 그리스 전역에서 온 방문객과 순례자들은 델로스 섬에 모여 음악 공연, 제사 그리고 잔치를 벌였다. 고대 그리스 도시 곳곳에서 아폴론을 기리는 수많은 축제가 열렸다. 아테네에서는 보에드로미아, 메타게이트니아, 피아넵시아, 타르겔리아 등 아폴론을 기리는 연례 축제가 열렸다. 스파르타에서는 카르네이아와 히아킨티아(아폴론의 연인이자 스파르타의 왕자였던 히아킨토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됨) 등 연례 축제가 열렸다. 테베에서는 아폴론을 기리는 대규모 축제인 다프네포리아가 9년마다 열렸다.

 

아폴론은 그리스 전역에 수많은 신전, 성소 그리고 사당을 가지고 있었다. 아폴론에 대한 신전 숭배는 초기부터 존재해 왔으며 일부 신전은 기원전 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욱이 이러한 고대 사원들 중 다수는 실제로 미케네 시대(기원전 1600년경~1100년경)부터 사용되던 종교 유적지 위에 건설되었다. 그리스 세계에서 아폴론은 무엇보다도 예언과 점술의 신이었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에 있는 아폴론의 주요 사원들은 델로스 섬의 사원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그의 예언적 기능을 강조했다. 하지만 아폴론은 음악과 예술, 식민지 개척, 치유와 의학의 신으로도 널리 숭배되었다.

 

아마도 아폴론 신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델포이에 있는 신전과 신탁일 것이다. 이곳에서 피티아라고 불리는 여사제가 아폴론의 예언과 조언을 전했다. 피티아는 신전 아래로 흐르는 샘에서 솟아오르는 증기를 흡입하여 영감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학자들은 이 주장의 진실성에 대해 오랫동안 의견이 엇갈렸으며 델포이 아래의 단층선에서 발생할 수 있는 증기에 대한 고고학적 및 지질학적 조사는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아폴론은 그리스 세계 전역에 걸쳐 신탁을 가지고 있었다. 보이오티아의 테베와 프토스 산, 포키스의 아바에, 소아시아의 디디마, 클라로스, 페르가몬 등에 신탁이 있었다. 아폴론은 또한 크레타의 고르틴과 드레로스,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와 셀리누스에도 중요한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아폴론은 이탈리아 특히 마그나 그라이키아와 에트루리아에서도 널리 숭배되었다. 그러나 로마에서는 비교적 늦게까지 그의 존재를 거의 알 수 없었고 그의 첫 번째 신전은 기원전 5세기경에 등장했다. 로마 세계에서 아폴론은 주로 치료(또는 치유)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의 신탁 여사제들을 시빌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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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