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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알페이오스강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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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서 알페이오스(Alpheios. 또는 Alpheus)는 강의 신이었다.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의 중심에 위치한 타이게투스산에서 발원하여 올림피아 부근까지 흐르는 강의 이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강의 신과 마찬가지로 알페이오스도 티탄족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와 그의 누이인 테티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그는 파리스의 딸 텔레고네와 결합해 오르실로코스 왕을 낳았다. 오르실로코스를 통해 알페이오스는 디오클레스의 할아버지이자 트로이 전쟁 중에 아이네이아스에 의해 살해된 두 군인 크레톤과 오르실로코스의 증조부가 되었다. 강의 신 알페이오스는 또 포세이돈과 결합해 에이레네를 낳은 멜란테이아의 아버지이기도 했다. 후기 기록에 따르면 알페이오스는 제우스와 결합해 엔디미온을 낳았을 수도 있는 포에니사의 아버지였다.

 

아레투사와 알페이오스. 출처>구글 검색

 

파우사니아스(Pausanias. 110년~180년. 그리스의 지리학자)에 따르면 알페이오스는 열정적인 사냥꾼이었고 님페 아레투사와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아레투사는 그를 피해 시라쿠사(시칠리아섬의 남동쪽에 위치한 만) 근처의 오르티기아섬으로 도망쳤고 우물로 변신했다. 그 후 알페이오스는 펠로폰네소스에서 오르티기아 바다 밑으로 흐르는 강이 되었다. 그곳에서 알페이오스 강은 아레투사 샘의 물과 합쳐졌다. 이 일로 아레투사 샘은 시라쿠사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고대 로마의 작가 오비디우스(Publius Naso Ovidius. BC 43년~AD 17년)는 알페이오스에 관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오비디우스에 따르면 아름다운 님페(또는 님프, 요정) 아레투사는 어느 날 아카디아의 알페이오스강에서 목욕을 하던 중 강의 신의 등장으로 깜짝 놀라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아르테미스 여신은 그녀를 불쌍히 여겨 그녀를 우물로 바꾸어 오르티기아섬 아래로 흘러가게 했다. 알페이오스는 물의 형태로 변신해 개울로 뛰어들었지만 땅이 열리고 물이 지하로 흘러 아르테미스에게 봉헌된 신성한 장소인 오르티기아섬 근처의 시라쿠사만에 나타났다.

 

다른 신화에 따르면 아르테미스 자신은 알페이오스의 사랑의 대상이었다. 한 때 그에게 쫓기자 그녀는 엘리스에 있는 레트리니로 도망쳤고 여기서 그녀는 자신과 그녀를 따르는 님페들의 얼굴을 흙으로 위장해 알페이오스가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결국 알페이오스는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이 일로 레트리니에는 아르테미스 알파이아 신전이 건설되었다. 또 다른 신화에서 여신은 오르티기아로 도망쳤고 그곳에는 알파이아라는 이름으로 그녀에게 봉헌된 신전이 있었다. 아르테미스를 향한 알페이오스의 사랑에 대한 암시는 올림피아에서 두 신이 공동의 제단을 가졌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이 신화에는 두 가지 이상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페이오스강과 아레투사샘에서 흐르는 물이 지하에서 합류한다는 대중적인 믿음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알페이오스강에서 컵을 던지면 오르티기아의 아레투사샘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플루타르코스(Plutarch. 46년~120년. 고대 로마의 철학자이자 작가)는 앞서 언급한 내용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했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알페이오스는 헬리오스의 아들이었고 그의 형제 케르카포스를 죽였다. 절망에 분노에 사로잡힌 그는 닉티무스강으로 뛰어들었고 이 강의 이름이 훗날 알페이오스로 바뀌었다고 한다.

 

알페이오스는 또 헤라클레스가 수행한 다섯 번째 과업에서 하루만에 아우게이아스의 외양간을 청소하기 위해 강의 흐름을 변경했는데 이 강이 바로 알페이오스강이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과업을 이런 식으로 수행한 것이다. 알페이오스는 종종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 76년~138년)의 연인인 안티누스(Antinous. ?~130년)와 관련이 있었다. 안티누스는 황제의 제물로 나일강에 빠져 죽은 그리스 청년이었다. 그가 신격화된 후 그 시대의 주화들은 안티누스, 알페이오스, 하드리아누스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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