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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켈트

안눈의 영주 아라운은 어떻게 프윌과 절친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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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트 신화에서 아라운(Arawn)은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이세계인 안눈(또는 안누븐)의 영주였다. 자유자재로 변신할 수 있는 사냥꾼이자 마법사인 아라운은 디페드(또는 디버드)의 영주 프윌과의 관계를 통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아라운은 ‘고귀한’이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론(Aron)의 웨일스어 형태일 것이다. 이름의 유사성을 고려할 때 아라운은 켈트 신 아루비아누스(Arubianus, ‘경작자’ 또는 ‘쟁기질한 밭의 신’이라는 뜻)의 웨일스어 형태일 수도 있다. 기독교 이후 웨일스 신화가 악마화되면서 아라운도 많은 부정적인 특징을 띠게 되었고 전통적인 지하세계나 이세계의 영주를 뛰어넘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즉 기독교 이후 아라운은 천국을 거부당한 영혼들을 감시하고 영원히 사냥하는 지옥의 사냥개들을 거느린 지옥의 신이 되었다. 아라운의 가족에 대해서는 그를 끔찍하게 사랑했던 이름없는 아내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아라운은 지하세계의 신이자 사냥의 신이었다. 출처>구글 검색

 

아라운을 정의하는 특징 중 하나는 그가 이세계 안눈의 영주라는 것이다. 안눈은 웨일스 해안에서 떨어진 섬, 바다 아래의 왕국이나 가마솥, 단순히 지하세계 등으로 서로 다른 전설에 기록되어 있다. 축복받은 천국으로 묘사된 이곳은 일부 작가들에 의해 브리튼 섬에 있었다는 전설상의 섬인 아발론과 연결되기도 한다. 아라운은 안눈의 궁정과 여왕이 사랑한 정의로운 통치자였다. 아라운은 영웅 프윌과 함께 자유자재로 변신이 가능한 마법사였다. 그의 마법은 너무 강력해서 아라운의 아내조차도 그의 변신을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무들의 전투’에서 아라운은 안눈의 전사들을 끌어들여 마법으로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키지만 귀디온에게 패배하고 만다.

 

아라운은 위대한 통치자이자 숙련된 마법사 외에도 능숙한 사냥꾼이기도 했다. 그는 거의 매일 흰 귀와 붉은 눈을 가진 초자연적인 사냥개와 함께 사냥을 즐겼다. 특히 가을은 으르렁거리는 사냥개의 포효와 겨울이 오기 전에 남쪽으로 이동하는 거위들의 울음소리가 뒤섞인 아라운의 시간이었다. 전통적인 켈트족의 달력에서는 오늘날 우리가 할로윈이라고 알고 있는 삼하인에서 가을이 끝났다. 삼하인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자유롭게 대지를 걷는 날이며 지하세계 영주로서의 아라운의 역할이 강조되는 날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브리튼 섬의 기독교화로 아라운의 죽음과의 연관성은 그의 악마화로 이어졌다. 웨일스의 이세계로서의 안눈은 저주받은 자들의 영혼이 있는 장소가 되었고 그 주인으로서의 아라운은 저주받은 자들의 영주가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라운의 사냥개는 저주받은 자들의 영혼을 사냥하는 헬하운드 즉 지옥의 사냥개가 되었다.

 

아라운과 프윌의 첫 만남은 <마비노기>의 제1장에 기록되어 있다. 디페드의 통치자 프윌은 어느 날 자신의 사냥개와 함께 수사슴을 추격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눈을 가진 사냥개는 수사슴을 잡아 갈기갈기 찢어 죽였다. 수사슴 사냥이 끝나자 신하가 나타나 프윌에게 그가 지금 안눈에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리고는 안눈 왕의 수사슴을 훔친 것에 대해 안눈의 통치자 아라운에게 자비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 아라운은 프윌에게 독특한 제안을 하는데 1년 동안 서로의 모습으로 변신해 영토를 교환하자는 것이었다. 프윌은 그 기간 동안 경쟁자 하프간(또는 하브간)을 제거해 달라는 아라운의 요구까지 받아들이며 이 제안을 수락했다. 이후 1년 동안 프윌은 안눈에서 낮에는 궁정 사냥을 갔고 밤이 되면 연회를 열었다. 자연스럽게 매일 밤 아라운의 아내와 동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졌다. 애초 아라운의 제안에는 자신의 아내와 동침을 금하는 조항이 없었지만 프윌은 단 한번도 아라운의 아내와 동침하지 않았다고 한다.

 

1년이 지나고 두 사람은 다시 만났고 아라운은 자신의 정적까지 제거해준 프윌에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라운이 프윌을 더욱 더 신뢰하게 된 것은 1년 동안 그의 아내와 단 하루도 동침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둘은 끈끈한 우정으로 엮이게 되었다. 이 때 아라운이 프윌에게 준 선물 중에는 돼지도 있었는데 훗날 이 돼지가 프윌의 아들 프리데리의 목숨을 빼앗는 계기가 된다.

 

고대 브리튼의 궁정시인 탈리에신(Taliesin, 53?~59?)의 작품 중 살아남은 중세 웨일스어 필사본인 <탈리에신의 서>에는 ‘나무들의 전쟁’이라는 시가 나온다.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 이야기는 아라운에게 쫓기고 있던 아마에톤이 안눈에서 훔친 개, 댕기물떼새, 수사슴 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렇게 아라운이 거대한 괴물들을 소환하고 마법으로 그들을 강하게 만들어 ‘나무들의 전쟁’이 시작되었고 아마에톤의 형제 귀디온이 마법과 신의 은총을 이용해 그들을 지키기 위해 나무들을 소환했고 결국 아라운이 패배했다.

 

아라운과 프윌의 이야기는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이야기와 비슷하며 아라운은 녹색 기사에 해당한다. 두 이야기 모두에서 인간 영웅은 주인의 아내로부터 유혹을 받지만 둘 다 그 유혹을 이겨낸다. 숙련된 사냥꾼, 전사, 마법 사용에 능숙한 영역의 주인이라는 그들의 닮은 점은 아서 왕 전설에서 프윌이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둘을 연결시킨다. 아라운은 또 남독일에서 발견되는 농업의 신인 아루비아누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아라운의 영역인 안눈의 풍부함과 경이로움 그리고 안눈이 문자 그대로 지하세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 아루비아누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참고로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 이야기는 14세기 영국에서 집필된 것으로 알려진 작자 미상의 작품이다. 아서왕 전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아서왕의 조카 가웨인 경의 이야기를 담았다. 중세 문학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사냥의 신으로서 아라운은 다른 켈트 신들과 연결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야생의 군주로 알려진 갈리아 신 케르눈노스도 있다. 유사하게 아라운은 마법사이기도 한 북유럽 판테온의 죽음의 신 오딘과도 관련이 있다. 오딘의 게르만 형태인 보탄은 사냥에 능숙하고 아라운의 또 다른 칭호인 야생 사냥의 군주로 알려졌다. 지하세계의 신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아라운은 그리스 로마의 하데스/플루토스와도 닮았는데 둘 다 죽은 자들의 통치자였지만 훗날 작가들이 만든 악마는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아라운은 하데스와 함께 아브라함에 그 기원을 둔 종교들에 등장하는 사탄과도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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