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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로마

수다쟁이 라라는 어떻게 침묵의 여신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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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로마를 막론하고 오늘의 시각에서 본 신들의 일이란 얽히고 설킨 복잡한 관계를 서로 배신하는 것이다. 이런 배신 행위들은 현재의 시각으로 보면 분명 범죄에 해당한다. 특히 상대방(이성적 파트너)에 대한 강압적인 행위들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경우 여러 건의 성폭행 범죄에 연루되어 있었다. 복수와 살인, 강간….인간의 어두운 부분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곳이 또한 신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한편 로마 판테온의 최고신 유피테르Jupiter(그리스의 제우스)는 물의 님페 중 하나인 라라의 혀를 자르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가정의 신을 모신 신전 라라리움

 

라라Lara(또는 라룬다Larunda, 라란다Laranda)는 나이아드Naiad 즉 물의 님페였다. 그녀는 강의 신 알몬Almon의 딸로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다. 하지만 라라의 부모는 종종 말을 참지 못한다며 그녀를 꾸짖었다. 라라는 쉬지 않고 말을 하는 수다쟁이였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해서는 안될 이야기들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유피테르가 유투르나Yuturna(샘의 여신)라는 님페를 사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유피테르에게 관심이 없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유피테르가 계속해서 추근대자 유투르나는 티베르 강에 몸을 던져 강둑에 숨기로 결심했다. 유피테르는 모든 물의 님페들을 불러 유투르나가 숨는 것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모든 나이아데스가 유피테르의 명령을 따랐지만 라라만은 유노Juno(그리스의 헤라)한테 가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자질하고 말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피테르는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에 대한 벌(물론 유피테르의 일방적인 생각이지만)로 라라의 혀를 자르라고 명령했다. 유피테르는 또 메르쿠리우스Mercurius(그리스의 헤르메스)에게 그녀를 지하세계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메르쿠리우스는 신들의 전령이자 저승사자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메르쿠리우스는 라라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둘 사이에서는 두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라레스Lares(Lar의 복수형으로 가정의 수호신)였다. 메르쿠리우스는 유피테르가 찾지 못하도록 숲 속 깊은 곳 오두막에 라라를 숨겼다. 하지만 끝내 라라는 유피테르에게 발각되고 말았고 교차로에서 살아야 한다는 명령을 받았다. 로마 신화에 따르면 교차로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의미했다.

 

혀가 잘리자 라라는 긴 침묵에 빠졌다. 이러한 이유로 라라는 사람들을 악의적인 말과 질투로부터 보호해주는 침묵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로마의 두 번째 황제인 누마 폼필리오Numa Pompilio는 침묵의 여신 데아 무타Dea Muta라는 이름으로 라라 숭배를 시작했다. 라라 숭배가 처음 시작된 곳은 로마인들이 신들에게 그들의 보호를 빌기 위해 장미와 포도주 등의 제물을 바쳤던 교차로와 관련이 있었다.

 

라라의 자식들인 라레스는 가정의 수호신이었다. 라레스는 구체적인 모습이 없이 가정의 수호신으로서 고대로마의 모든 가정에서 숭배되었다고 한다. 가정의 수호신이 수다쟁이의 자식들이었다니…수다쟁이 라라가 자신의 그 특성으로 혀가 잘리고 난 후 새롭게 얻은 별칭 침묵의 여신의 자식들이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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