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양귀비와 쌍벽을 이루는 서양의 대표미인이 바로 클레오파트라이다. 클레오파트라는 고대 이집트 왕국의 마지막 여왕이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와의 사이에서 케사리온이라는 아들을 낳았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자 클레오파트라는 새로운 권력자 안토니우스에게 접근해 결혼까지 했다. 그러던 중 카이사르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와의 전쟁이 발발했고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와 연합군을 결성해 악티움 해전에서 운명을 건 전투를 벌였다. 하지만 패배로 끝났고 안토니우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연인 안토니우스가 죽자 클레오파트라는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포로가 되어 로마로 끌려가게 되었다. 결국 클레오파트라는 독사에 팔을 물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클레오파트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인류 역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여성 중에 한 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에도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한다는 것을 아는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도 여러 명의 클레오파트라가.
그리스 신화에서 클레오파트라Cleopatra는 고대 그리스 로크리스 지방 명문가의 딸이었지만 로크리스인들이 인간 제물로 아테네 신전에 보낸 최초의 처녀 중 한 명이었다. 트로이가 함락되었을 때 로크리스의 왕 오일레우스의 아들 아이아스는 약탈을 피해 아테나 신전으로 피신해 여신의 목상을 끌어안고 있던 트로이아의 공주 카산드라를 겁탈했다. 이 과정에서 여신의 목상이 땅에 떨어졌다. 이 사건이 있은 지 3년 후 로크리스에는 전염병이 돌고 흉년이 들었다. 아테나 여신의 저주였다.
로크리스인들은 아테나의 노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두 명의 처녀를 트로이아로 보내야 한다는 신탁을 받았다. 신탁에 따라 로크리스인들은 두 명의 처녀를 일리온(트로이의 다른 이름)으로 보냈는데 그 중 한 명이 클레오파트라였다. 클레오파트라는 평생을 아테나 신전에서 보내다 죽었다고 한다.
또 한 명의 클레오파트라는 보레아스와 오레이티이아의 딸로 제테스, 칼라이스, 키오네 등과 형제지간이었다. 그녀는 피네우스와 결혼해 플렉시포스와 판디온을 낳았다. 하지만 피네우스는 다르다노스의 딸 이다이아와 불륜을 저질렀고 클레오파트라를 감옥에 가두고 두 아들을 장님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멧돼지 사냥으로 유명한 멜레아그로스의 아내도 클레오파트라였다. 클레오파트라는 남편이 죽자 따라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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