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신화에서 포솝Phosop(또는 파이솝Phaisop)은 쌀의 여신이다. 포솝은 체계화된 주류 종교의 여신이라기보다는 고대 태국 민속과 더 관련이 있는 신이다. 포솝은 ‘쌀 풍작의 어머니’라는 뜻의 매콴카오Mae Khwan Khao로도 알려져 있다. 한편 태국어에서 ‘포Pho-’는 ‘쌀’을 의미하는 어미라고 한다. 포솝은 빨간색 혹은 녹색 드레스를 입고 오른쪽 어깨에 볏단을 얹어 놓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고대 태국에서는 쌀 생산의 여러 단계에서 여신을 찬양하기 위한 의식이 행해졌고 그 계절에 맞는 제물들이 여신에게 바쳐졌다. 고대인들은 포솝이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쌀을 준다고 믿었다. 근래 들어 포솝에 대한 숭배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시리킷 여왕은 2008년 8월 태국 민속의 이런 고대 풍습을 왕실 차원에서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쌀과 그 재배 단계와 관련된 이런 전통 의식의 복원은 농부들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전통 복원의 일환으로 매년 태국에서는 왕실 경작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 축제 마지막에 사람들은 풍년과 행운을 빌며 앞다퉈 고랑에서 볍씨를 모으기도 한다.
포솝은 온 몸에 보석을 걸치고 빨강 또는 초록색 옷을 입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녀는 오른쪽 어깨에 수확한 볏단을 메고 서 있거나 앉아있다. 때로는 팔베개를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포솝을 묘사한 최근의 도상학은 힌두교의 데비Devi(파괴의 신 시바의 배우자 파르바티 또는 여신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함)를 기반으로 하지만 그 기원은 포솝에 관한 고대 태국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벼 수확 축제에서 포솝으로 분장하고 등장하기도 한다.
태국에 포솝이 있다면 라오스에는 낭코솝Nang Khosop이라는 쌀의 여신이 전해진다. 쌀에 관한 라오스 기원 신화에는 여러 가지 자료들이 존재한다. 라오스의 불교사원인 왓시사켓 자료에 따르면 어느 날 천 년의 기근 끝에 한 청년이 황금 물고기를 잡았다. 물고기들의 왕은 그 황금 물고기의 고통스런 외침을 듣고 청년에게 보물과 황금 물고기를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 보물의 정체는 바로 쌀의 여신 낭코솝이었다. 그녀가 들녘에 사는 동안 쌀은 수 세기 동안 인간들에게 영양을 공급했고 불교 교리도 더불어 발전했다. 그러나 어느 날 불의한 왕이 금과 코끼리, 사치품을 얻기 위해 쌀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대지는 다시 기근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다.
기근이 계속되던 어느 날 노부부 노예가 숲에서 은둔자를 만났다. 그들이 굶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은둔자는 낭코솝 여신에게 식량을 호소했다. 하지만 여신은 단호히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은둔자는 낭코솝 여신을 죽여 수많은 조각으로 시신을 훼손했다. 그 결과 쌀의 여신 낭코솝의 훼손된 시신 조각에서 흑미, 백미, 찹쌀 등의 다양한 종류의 쌀들이 생겨났다. 노부부는 인간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쌀들을 재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비엔티안(라오스의 수도) 지역의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논을 돌보는 수호 정령 피나Phina는 낭코솝의 두개골, 입, 이에서 비롯되었다. 일부 저자들은 쌀 여신 신화를 통해 불교가 어떻게 불교 이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지를 연구했다. 캄보디아와 캄보디아, 베트남의 소수 민족의 쌀의 여신인 포나가르Po Nagar(또는 포 이노 노가르Po Ino Nogar, 포 얀 이노 노가르 타하Po Yan Ino Nogar Taha)는 태국과 라오스의 쌀의 여신과 비슷한 속성 및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캄보디아 민족의 전통신인 포나가르 여인Lady Po Nagar과 관련이 있다. 라오스 북부와 베트남에 거주하는 몬-크메르 족 사람들 사이에서는 쌀의 여신을 달래는 춤을 흔히 볼 수 있다.
비슷한 쌀의 여신이 인도네시아에서도 발견된다. 듀이스리Dewi Sri는 자바와 수마트라, 발리 등에서 쌀과 농사 및 다산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위에서 언급한 쌀의 여신들과 차이라면 듀이스리의 신전은 현지 논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포솝 이미지는 우리나라의 농림축산식품부에 해당하는 태국 농업협동부의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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