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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이집트

훗날 오시리스로 흡수된 지방신, 안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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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신 안제티(Andjety)의 뜻은 ‘안제트에서 온 남자’이다. 여기서 안제트(Andjet)는 나일 델타에 있는 고대 이집트의 도시 부시리스(Busiris)를 가리킨다. 아네즈티(Anezti), 아네지티(Anedjiti)라고도 부른다. 신화에 따르면 안제티는 하(下)이집트 9번째 노모스(Nomos)의 지방신이었다. 참고로 노모스는 고대 이집트의 지방행정구역 단위로 오늘날의 주(州)에 해당한다. 노모스의 기원은 기원전 3700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 시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에는 각각 22개, 20개의 노모스가 있었다. 각각의 노모스는 고유의 신과 독자적인 표지가 있었다고 한다. 왕조 시대에는 이들 신이 지방신으로 숭배되었다. 안제티도 그런 지방신 중 하나였다.

 

오시리스가 된 지방신 안제티(Andjety). 출처>구글 검색


안제티 숭배가 유행했던 부시리스는 첫 번째 노모스의 중심이었다. 안제티는 남성으로 의인화된 신인데 그의 외모와 특징은 그가 통치자를 상징했음을 암시한다. 안제티에 관한 이런 언급은 피라미드 문서를 통해 확인되었다. 안제티가 실제로 한 때 부시리스 지역을 지배했던 지방 통치자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학자들은 안제티가 통치 개념을 의인화한 신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는 모든 왕권을 가지고 있었다. 에네페루(Eneferu)는 네 번째 왕조의 초기 파라오였다. 그는 최초의 진정한 형태의 피라미드 무덤을 만든 왕으로 여겨진다. 이 왕을 묘사한 그림에는 안제티의 왕관을 쓰고 있다고 한다.

안제티 숭배는 오시리스(Osiris)의 영향력을 뚜렷이 나타내고 있다. 그는 나중에 오시리스와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안제티는 오시리스처럼 지하세계의 저승신이었다. 즉 큰 깃털 두 개와 지팡이, 도리깨 등으로 장식된 원뿔형 왕관이 오시리스의 아테프 왕관과 많이 닮아 있다. 초기 피라미드 문서들에는 깃털들이 초승달 모양의 자궁으로 대치된다. 안제티의 속성과 특성이 오시리스에게 완전히 흡수되었을 때 오시리스의 표준화된 형태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안제티는 고대 이집트 여신들의 배우자로 여겨졌다. 피라미드 문서에 언급된 ‘독수리의 황소’라는 별칭을 갖게 된 이유일 것이다.

안제티는 부활과 재생의 신으로도 알려졌다. 이 때 안제티는 탄생의 여신 메스케네트(Meskhenet)의 남편으로 여겨졌다. 그의 중요한 역할이 탄생뿐만 아니라 사후세계로부터의 부활이었다는 것은 피라미드 문서에서 그의 이름을 쓸 때 초승달 모양의 자궁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집트 18왕조(기원전 1570 ~ 기원전 1283) 시대에는 히브리인들이 전쟁의 여신 아나트(Anat)를 숭배하기 위해 이집트를 찾았다. 이 기간 동안 아나트의 남편이 바로 안제티이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전쟁과 죽음은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였음을 고대 이집트인들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비단 고대인들의 인식만은 아닐 것이다.

요컨대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문서에 따르면 안제티는 초기 단계에서 하이집트에서 대규모로 숭배되었다. 오시리스로 흡수되기 전에 안제티는 출산과 부활 및 지하세계의 신으로 널리 숭배되었고 그 자신의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안제티는 오시리스의 등장 이후에도 독립적인 지방신으로 숭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비도스에 있는 세토스 1세(Sethos I,
기원전 1291~기원전 1278 재위) 장례 신전에는 안제티에 관한 언급이 있는데 여기서 오시리스 안제티는 다산의 여신 이시스(Isis)와 동행한다. 안제티 숭배의 중심지는 분명히 부시리스였다. ‘안제트에서 온 남자’라는 뜻의 그의 이름이 이를 가장 잘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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