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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공존해 왔던 가장 보편적인 성정이다. 앞으로도 사랑은 인류가 존재하는 한 결코 희석되거나 소멸되지 않을 몇 안 되는 단어 중 하나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남녀간의 사랑은 수많은 예술 장르의 주제가 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비극적인 사랑도 있고, 우리 소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처럼 가슴이 따뜻해지는 사랑도 있다. 특히 신화 속의 남녀간 사랑은 많은 작가나 화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루스 해협 입구를 지키는 작은 섬 안의 크즈탑에도 신화 속 사랑, 그 중에서도 가슴 시리도록 슬픈 러브 스토리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레안드로스의 탑이라고도 한단다.

 

레안드로스(Leandros 또는 Leander, 리앤더 또는 레안더라고도 읽는다)는 아시아와 유럽 사이에 있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지금의 다르다넬스 해협)의 아시아 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인 아비도스의 청년이었다. 그 맞은편 세스토스라는 도시에는 아프로디테의 여사제인 헤로(Hero)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지만 레안드로스의 부모가 그들의 결혼을 반대했다. 아프로디테 신전의 사제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레안드로스 시신 위로 몸을 던진 헤로. 사진>구글 검색

 

한 번 서로에게 빼앗긴 마음은 부모의 끈질긴 반대도 둘 사이를 갈라놓지 못했다. 그래서 레안드로스는 매일 밤 해협을 헤엄쳐 세스토스로 갔다. 헤로는 높은 탑 위에서 레안드로스가 안전하게 해협을 건널 수 있도록 횃불을 밝혀 길을 안내했다. 누구는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이라며 노래하지만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은 바다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둘의 사랑은 점점 무르익어 갔다.

 

둘의 사랑이 해피 엔딩으로 끝났다면 오늘날까지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이어지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날도 레안드로스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헤엄쳐 세스토스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해협 중간쯤 건넜을 때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 파도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레안드로스는 사력을 다해 헤엄을 쳤지만 끝내 힘이 빠져 익사하고 말았다. 게다가 심한 바람에 헤로가 들고 있던 횃불마저도 꺼져 버렸으니 아무리 수영에 자신이 있던 레안드로스도 성난 파도를 견디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던 헤로는 탑 아래서 밤새 레안드로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자 뜬 눈으로 밤을 지샌 헤로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말았다. 세스토스 탑 아래로 파도에 밀려 시체 한 구가 떠밀려 온 것이다. 헤로는 높은 탑 위에 있었지만 한 눈에 그 시체가 레안드로스라는 것을 알았고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토록 사랑했던 애인을 잃은 헤로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고 탑 가장자리로 올라가 레안드로스의 시신을 향해 몸을 던졌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Baron Byron, 1788~1824)은 그의 시 아비도스의 신부에서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이 사지 부력 좋은 물결이 날라다 준 일이 있었으니/바람이 헬레의 바다 위를 세차게 불고 있다/저 무서운 폭풍이 밤바다를 휘몰아치던 그 때처럼/그 때, 에로스는 구하러 나와서도 깜빡 잊고 구하지 못했다


저 용감한 미남자/세스토스 처녀의 유일한 희망을/, 그 때 오직 한 하늘가에 탑 위의 횃불이 반짝였다/그리고 불어오는 강풍과 흩날리는 포말과/울부짖는 바닷새들이 돌아오라고 일렀지만/머리 위의 구름, 눈 아래의 바다가 신호를 보내고 소리를 질러 가지 말라고 일렀지만/그에게는 공포를 예고하는 소리도, 신호도/들리지 않았다/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저 사랑의 빛/멀리서 빛나는 단 하나의 별밖에 보이지 않았다/그의 귀에는 오직 헤로가 부르는 노래/「그대 거친 파도여, 사랑하는 이들을 너무 오래 갈라놓지 말아다오/이 노래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옛이야기, 그러나 사랑은 늘 새로워서/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어 이 또한 진실임을 증명하게 하라

 

여기서 또 하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바이런은 헤로와 레안드로스 신화를 예술로만 승화시킨 게 아니었다. 직접 레안드로스가 되기도 했단다. 바이런은 콘스탄티노플을 여행하던 중 바람이 불어 배가 운행을 못하게 되자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헤엄쳐서 건넜다고 한다. 그의 수영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모르겠지만 바이런은 당시 한 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있었다. 이 무모한 도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쨌든 바이런의 이런 무모한 도전은 훗날 다르다넬스(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는 수영대회를 열리게 했고 급기야는 올림픽 종목에 수영이 포함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헤로와 레안드로스의 러브 스토리가 세계적인 시인 바이런에게 예술적 영감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바이런의 기행을 거쳐 수영이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니 사랑의 감동이 사랑 그 너머 아득한 곳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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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