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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코미디 프로 중에 ‘김 수한무거북이와두루미삼천갑자동방삭...’이란 유행어가 있었다. '동방삭' 뒤로도 숨을 몇 번이나 헐떡이며 읊을 정도로 긴 글자가 나열되면서 웃음을 자아냈다김씨 성에 수한무로 시작되는 어느 양반 자제의 이름이었다집안 내력이 오래 살지 못한 탓에 무병장수 하라는 의미로 지어준 이름인데 오래 산다는 동식물은 죄다 끌어모아 이름에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삼천갑자동방삭은 무병장수와 무슨 연관이 있길래 이름에 넣었을까? 삼천갑자면 60년의 3천배이니 18만년이 된다. 18만년간 살았다는 동방삭 설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품성으로 유명했던 동방삭이 저승사자를 꾀어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전설인데 서왕모의 반도(먹으면 영생을 누린다는 복숭아)를 훔쳐 먹어서 오래 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고전 <서유기>의 주인공 손오공이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보면 동양에는 복숭아 관련 옛날 이야기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앞서 언급한 반도뿐만 아니라 도원결의라고 해서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은 곳도 복숭아밭이요, 안평대군이 낙원에서 놀던 꿈을 그린 그림 또한 그 배경이 복숭아밭인 안견의 몽유도원도이다. 호도도 오랑캐 복숭아란 뜻의 호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발목 양쪽의 툭 튀어나온 동그란 뼈도 복숭아뼈라고 하는 걸 보면 복숭아는 동양을 상징을 상징하는 과일임에는 틀림없다. 한편 서양에서는 유독 사과 관련 이야기들이 많다. 그리스 신화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식에 던진 황금사과였다고 하고 <백설공주>의 독이 든 사과뿐만 아니라 뉴턴의 만유인력법칙도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발견했다고 하니 동양의 복숭아에 비견될만한 것이 서양의 사과가 아닐까 싶다. 또 영국 속담에 하루에 사과 하나를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고 했으니 중국신화에 등장한 서왕모의 복숭아처럼 무병장수에 대한 인간의 꿈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영원한 화두임에 틀림없다.


 ▲서왕모. 사진>구글 검색


서왕모(西王母)는 중국 서쪽 곤륜산에 살고 있다는 최고의 여신이다. 말 그대로 세상의 서쪽을 의미한다. 즉 해가 지는 곳, 죽음의 신이 서왕모였다.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 쯤으로 생각하면 될 듯 하다. 하지만 중국신화에서 서왕모는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와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정체성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서왕모가 처음으로 언급된 <산해경>에는 서왕모의 모습이 흉측하기 짝이 없었다. 표범의 꼬리와 호랑이의 이빨을 가졌고 헝클어진 머리에 비녀를 꼽고 있었으니 거의 맹수에 가까운 반인반수였다. 게다가 휘파람 부는 것이 취미였다고 하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권위 있는 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한편 이런 서왕모의 시중꾼이 파랑새(靑鳥)였다니 조금은 의외다 싶다. 하지만 한나라 때 와서는 죽음을 관장한다면 반대로 영생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불사의 여신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는 외모 또한 절세미인으로 그려지기 시작했다.


서왕모가 불사의 여신으로 자리잡으면서 것이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복숭아, 반도(蟠桃). 한편 곤륜산의 서왕모 궁전은 사방이 천리에 달했다고 한다. 궁전 왼쪽에는 요지(瑤池)라는 호수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취천(翠川)이라는 강이 있었으며 곤륜산 아래에는 약수(弱水)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특히 약수를 건널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용뿐이었다고 한다. ‘반도원이라는 복숭아 과수원도 곤륜산에 있었는데 서왕모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먹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가 그리 철저하지는 못했나 보다. 동방삭이나 손오공이 반도를 따먹었다고 하니 말이다.


 ▲반도원에서 사과를 훔쳐먹는 손오공. 사진>구글 검색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에 따르면 서왕모가 관리하는 반도원에는 총 36백 그루의 복숭아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각각 천2백 그루씩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맨 앞쪽 천2백 그루 반도는 3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리고 먹으면 신선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중앙에 있는 천2백 그루 반도는 6천년에 한번 열리는데 먹으면 불로장생하면서 날아다닐 수 있었다고 한다. 맨 끝의 천2백 그루 반도는 9천년에 한번 열매가 열리고 먹으면 달이나 태양만큼 오래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의 버릴 수 없는 영생의 꿈은 서왕모와 관련된 역사적 인물들의 설화 속에도 오롯이 담겨 있다. 춘추전국시대 목왕(?~B.C 621)은 곤륜산 부근을 지나가다 서왕모의 부름을 받았다. 서왕모는 목왕을 위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목왕은 너무도 행복한 시간을 보낸 탓에 인간 세계로 돌아가는 것을 잊은 나머지 자신의 나라가 극도의 혼란 상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천계의 하루는 인간 세상의 1년에 해당한다. 서왕모는 목왕이 돌아갈 때 불로장생의 비법을 알고 싶으면 다시 방문하라고 했지만 이후 목왕은 두 번 다시 서왕모를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한나라 무제(B.C 156~B.C 87)도 서왕모를 만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무제가 불로장생을 염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 서왕모는 B.C 11077일 무제를 찾아갔는데 이 자리에서 무제는 불로장생의 비법을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무제는 보통의 인간처럼 일흔 살 정도밖에 살지 못했다. 서왕모의 충고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왕모는 반도를 주면서 그 동안 무제가 잔혹한 일과 전쟁을 일삼아 왔다면서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영생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하지만 무제는 서왕모를 만난 이후에도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삼았다. 반도를 네 개나 먹었음에도 무제가 영생할 수 없는 이유였다.


브라운 세카르(Brown Edouard Séquard, 1817~1894, 프랑스)라는 과학자가 있었다. 파리대학 생리학 교수였던 세카르는 척수반측절단에 의해 동측의 운동마비와 반대측의 지각마비를 일으킨다는 것, 교감신경절단으로 혈관의 마비확장을 일으킨다는 것, 부신적출동물은 부신기능 탈락으로 인해 사망한다는 것, 집토끼 고환추출액주사에 의해 전신작업능력을 항진한다는 사실(네이버 지식백과 인용)을 밝혀내는 등 신진대사 연구에 기여했지만 또 하나의 엉뚱한 연구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기니피그와 개의 고환을 으깬 체액을 주입하면 회춘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렇듯 영생의 꿈은 인류의 보편적인 바람이고 희망이다.


한무제가 서왕모의 충고대로 금욕생활과 함께 전쟁을 멈추었다고 해서 영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늘 행동을 조심하고 덕을 쌓으면서 살라는 신화의 메타포일 뿐이다. 어쩌면 영생이 아닌 인간의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간절한 꿈인 무병장수의 길이 바로 서왕모 신화의 메타포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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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