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 시인의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2】
말 많은 시대의 미덕은 귀를 막아버리고 눈을 감아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바야흐로 말[言]의 계절이다. 때로 이 계절이 주는 달콤함은 찰나의 시간일지언정 희망을 본다는 것이다. 머슴(?)의 애달픈 구애작전에 주인(?)의 마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흔들리고 또 흔들린다. 그러나 조금만 귀를 기울여보면 어디에도 노동자와 서민의 얘기는 없고 머슴이라며 한껏 머리를 조아리는 왕의 시혜만 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뀌는 날 결국 일장춘몽의 허망함에 가슴을 쳐보지만 어느덧 머슴과 주인은 신분이 뒤바뀐 채 지나간 계절을 비웃을 것이다. 너무 어렵게 살지 말라며 말[言]에 담았던 장미빛은 너무 쉽게 살지 말라는 타박이 될 것이다. 담배 연기로 누렇게 뜬 사각의 공간에서 왈칵 쏟아지려는 눈물을 나는 왜 애써 참아야만 하는가. 시인은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라 했지만 '지나갈 청춘의 절벽'에 서있는 이들이 너무도 많은 계절이다.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1
스무살 때 광부가 되고 싶어/을지로5가 인력소개소를 찾았다/아무것도 없는 청춘이었다/가방에는 낡은 옷 몇벌이 전부/갈 곳 없는 나를 땅속에 묻고/이번 생은 베렸다고/이 생을 빨리 지나쳐버리고 싶었다
소개로 3만원을 내고 나니/2만원이 남았다/근처 여인숙 방에 낯선 이 여섯명이 들어갔다/내일 새벽이면 봉고차가 온다는데/2만원을 꼭 손에 쥐고 잠이 오지 않았다/뜬눈으로 새우다 희뿌염한 새벽/슬며시 길을 났다
인쇄골목 24시간 구멍가게에서 선 채로/막 살아낸 달걀 세개에 소주 한병을/콜콜콜 따라 마셨다/그 달걀맛이 아직도 짭짭하게 입안을 돈다/너무 쉽게 살아도 안되지만/너무 어렵게 살아도 안된다
지나간 청춘에 보내는 송가 2
종로2가 공구상가 골목 안/여인숙 건물 지하/옛날 목욕탕을 개조해 쓰던/일용잡부 소개소에서 날일을 다니며/한달에 10만원을 받던 달방을 얻어 썼다/같이 방을 쓰던 친구의 부업은/일 다녀온 밤마다/달방에 세든 이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타짜였다/한번에 3만원 이상 따지 말 것/한달에 보름은 일을 다녀야 의심받지 않는다는 것/한 곳에 석달 이상 머물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고 했다/그가 가끔 사주는 5천원짜리 반계탕이 참 맛있었다
밤새워 때전 이불 속에서 책을 읽고 시를 쓰는 내게/너는 나처럼 살지 말고 성공하라고/진정으로 부럽다고 했다/떠나가던 날, 고백을 하는데/결핵 환자라는 것이었다/그가 떠난 날/처음으로 축축하고 무거운 이불을/햇볕 쬐는 여인숙 옥상 빨랫줄에 걸었다/내게는 결핵보다 더 무섭게 폐를 송소 뚫는/외로움이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차마 말하지 못했다/괜찮다고, 괜찮다고/어디에 가든 들키지 말고 잘 지내라고/빌어주었다
말 많은 시대의 미덕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크게 뜨는 것이다. 시혜가 아닌 2만원짜리 여인숙에서 소주를 들이키는, 일용잡부의 호주머니를 터는 타짜의 외로움을 들어주는 머슴이 절실한 계절이다. 더이상 왁자지껄 저잣거리에서 내키지 않는 떡볶이로 그 고운 입술을 더럽히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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