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에코(Echo. 그리스어로 ‘소리’라는 뜻에서 유래)는 키타이론 산에 거주하는 오레아드(산의 요정)였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님프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종종 대지에 내려와 그들을 만났다. 결국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의심을 품고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와 제우스와 님프의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했다. 에코는 제우스를 보호하려고 했고 헤라의 분노를 견뎌냈다. 결국 헤라는 에코가 자신에게 한 마지막 말만 반복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에코가 나르키소스를 만나 사랑에 빠졌을 때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수 없었고 그가 자신에게 사랑에 빠지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1세기경에 활동한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 이야기>에서 유노(그리스 신화의 헤라)는 그녀의 남편 유피테르(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의 수많은 외도에 대해 질투한다. 항상 경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불륜 현장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에코는 긴 대화로 그녀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렸다. 마침내 진실을 깨달았을 때 유노는 에코를 저주했다. 그 때부터 한 때 수다스럽기로 유명했던 에코는 다른 사람이 가장 최근에 한 말만 반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저주를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에코는 미소년 나르키소스가 동료들과 함께 사냥하러 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즉시 사랑에 빠졌고 조용히 따라갔다.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나르키소스를 부르고 싶었지만 유노의 저주로 그럴 수가 없었다.
에코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사냥하는 동안 나르키소스는 동료들과 헤어져서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외쳤고 누군가 자신의 말을 반복하는 것을 들었다. 놀란 나르키소스는 그 목소리에 대답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리로 오세요.’라고 했지만 누군가 자신의 끝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르키소스는 숲속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자 목소리의 주인이 도망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시 불렀다. 나르키소스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한 에코는 달려가 그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거부했다. 나르키소스가 사랑한 유일한 이는 물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뿐이었다. 나르키소스에게 거부당한 에코는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고 재빨리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가혹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에코의 나르키소스에 대한 사랑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르키소스가 죽어서 자신의 모습 앞에서 쇠약해 졌을 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사로잡혔을 때, 에코는 그의 시신을 애도했다. 나르키소스가 마지막으로 연못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안녕’이라고 말했을 때 에코 역시 ‘안녕’을 반복했다. 결국 에코 역시 쇠약해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피부는 주름지고 뼈는 돌로 변했다. 오늘날 에코에게 남은 것은 그녀의 목소리뿐이다.
2세기경 레스보스 섬에 살았던 고대 그리스의 작가 롱구스가 쓴 로맨스 소설 <다프니스와 클로이>에도 에코가 등장한다. 다프니스와 클로이는 바다를 가로질러 미끄러지듯 움직이는 배를 응시하고 있다. 클로이는 이전에 메아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근처 계곡에서 어부의 노래가 반복되는 것을 듣고 혼란스러워한다. 다프니스는 키스를 열 번 더 해주면 에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약속한다. 다프니스가 전한 에코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그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다프니스에 따르면 에코는 어머니가 님프였지만 아버지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님프가 아닌 필멸자에 더 가까웠다. 에코는 님프 자매들과 함께 춤을 추고 무사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하루를 보냈다. 무사이들은 그녀에게 온갖 악기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판은 에코의 음악적 재능을 부러워했고 그녀의 처녀성을 탐했다. 판은 들판의 남자들을 미치게 만들었고 그들은 야생 동물처럼 에코를 갈기갈기 찢고 여전히 노래하고 있는 그녀의 몸 조각을 땅에 뿌렸다.
님프에게 호의를 베푼 가이아는 에코의 시신 조각들을 자신 안에 숨겨 그녀의 음악을 위한 보호소를 마련했고 무사이의 명령에 따라 에코의 몸은 여전히 노래를 부르며 지상에 있는 모든 것들의 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게 된다. 다프니스는 판이 종종 자신의 피리 소리를 듣고 산을 가로질러 쫓아다니며 결코 찾을 수 없는 비밀스러운 학생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즉 자신의 피를 소리를 흉내내는 에코를 찾아 산을 떠돌아 다닌다고 한다.
판에 관한 <호메로스 찬가>와 <오르페우스 찬가>는 모두 롱구스의 판이 산 너머로 에코의 비밀스러운 목소리를 쫓는 이야기를 반복한다. 9세기에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총대주교 포티우스가 쓴 <비블리오테카>는 판의 에코에 대한 짝사랑은 미인 대회(아테나, 헤라, 아프로디테)에서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분노한 아프로디테의 저주였다고 말한다. 4~5세기경에 활동한 이집트 출신의 고대 그리스 시인 논노스의 <디오니시아카>에도 에코에 대한 여러 언급이 있다. 논누스에 따르면 판은 자주 에코에게 구애했지만 결코 그의 사랑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디오니시아카>의 대홍수 관련 글에서 논노스는 물이 너무 높아서 언덕 위에서도 에코가 헤엄쳐야 했다고 말한다. 판의 구애를 피해 도망친 에코는 이제 포세이돈의 정욕을 두려워했다. 그러면서 논노스는 에코가 결코 판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세기에 활동한 아프리카 출신의 고대 로마 소설가 아풀레이우스는 <황금 당나귀>에서 판이 에코를 팔에 안고 온갖 노래를 반복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묘사한다. 마찬가지로 10세기에 출판된 비잔틴 제국의 백과사전인 <수다>에서 에코와 판은 잉크스라는 아들과 이암베라는 딸을 낳는 것으로 묘사한다. 12세기에 쓰여진 <나르키소스의 상태>라는 글에서 에코와 나르키소스는 아름다운 님프와 오만한 왕자에서 공주 다네와 평민에 불과한 나르키소스로 바뀐다.
이 중세 이야기에 따르면 다네는 아모르(그리스 신화의 에로스)의 화살에 찔린 후 나르키소스에게 열광적으로 사랑에 빠진다. 다네가 왕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르키소스는 도망치듯 그녀를 거부한다. 굴욕을 당한 다네는 아모르를 불러 나르키소스를 저주한다. 나르키소스는 다른 이들에게 가했던 것과 같은 짝사랑의 고통을 겪게 된다. 즉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얼마 후 다네는 망토만 걸친 채 알몸인 죽음 직전의 나르키소스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본 다네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고 그의 품에 안겨 죽는다. 이 중세 이야기는 남녀 모두에게 구혼자를 멸시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라고. 참고로 이 중세 이야기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달리 동성애에 대한 암시는 사라진다.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여성으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1230년경에 쓴 프랑스의 시인 기욤 드 로리스의 시 <장미의 로맨스>(장 드 몽이 1275년경에 완성함)에서 에코는 님프나 공주가 아니라 고귀한 여인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나르키소스를 열렬히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하지만 나르키소스는 오만함과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 때문에 모든 여성들을 거부한다. 기욤은 나르키소스의 거절을 들은 에코가 크나큰 분노와 슬픔으로 즉시 죽었다고 묘사했다. 죽기 직전 에코는 데우스(‘신’을 의미하는 라틴어)를 부른다. 에코는 나르키소스가 언젠가는 자신처럼 짝사랑에 시달리게 될 것을 바라며 버림받은 자들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나르키소스가 알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나르키소스는 사냥을 마치고 연못에 도착한다. 에코는 데우스에게 기도했고 물가에서 나르키소스를 기다리는 이는 아모르이다. 아모르는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하게 만들고 이는 곧 그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이것이 에코에 대한 정의일 뿐만 아니라 나르키소스의 사랑 자체에 대한 무시를 처벌하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 이야기는 모든 남자에게 연인을 업신여기면 신이 그 잘못을 처벌할 것이라는 경고로 끝난다. 기욤의 이 이야기는 담시(이야기체로 된 시)에서 강조된 궁중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오비디우스의 초기 이야기와는 더 멀어진 내용이다. 여기에서 헤라의 저주는 전혀 없고 이야기는 공공연히 도덕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도덕적 메시지는 오로지 여성만을 겨냥한다. 이는 나르키소스가 범죄 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요즘이라면 도저히 동의할 수 없는 주제이지만 남성 중심의 당시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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