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를 읽어본 독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신은 올림포스의 12신일 것이다. 이 중에서도 아폴론은 고전적으로 치유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폴론을 비롯한 올림포스가 주류 문화가 되기 훨씬 전에도 사람들은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아폴론이 치유의 신 표준이 되기 전에 이 역할을 담당했던 또 다른 신도 있었다. 바로 치유의 신 파이안(Paean. 또는 파이온)이다. 파이안이라는 단어는 ‘치유’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어근에서 유래했다. 파이안은 청동기 시대에 존재했던 초기 그리스 문명인 미케네인들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이름이 어떻게 생겨났고 언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하지만 많은 언어학자들과 역사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파이안이라는 말이 아폴론이 그 특성을 대체하기 전까지 치유의 신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물론 두 신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신이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파이안은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 호메로스의 오푸스(Opus. ‘작품’이라는 뜻의 라틴어)에도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일리아드>에서 파이안은 트로이 전쟁 당시 칼리돈의 왕자 디오메데스에 의해 심각한 상처를 입은 전쟁의 신 아레스를 기적적으로 치료한다. 부상을 입은 아레스는 올림포스 산으로 돌아가고 파이안은 아레스에게 즉각적인 안도감을 주는 약을 바른다. 한편 <오디세이>에서 파이안은 헤라클레스의 화살을 맞은 하데스를 돌본다. 같은 서사시에서 호메로스는 이집트 사람들을 ‘인간보다 현명한’ 사람들로 묘사한다. 파이안 족의 모든 사람들이 치료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호메로스와 동시대의 또 다른 그리스 서사시인 헤시오도스는 파이안을 ‘모든 것에 대한 치료법을 아는’ 신이라고 묘사한 적이 있다.
이런 파이안이 올림포스 신의 명부에서 왜 사라졌는지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파이안’이라는 말은 아폴론과 이후 아스클레피오스의 별칭이 되었다. 아폴론에게 헌정된 구호 중에는 전쟁 노래 외에도 종종 이 단어 파이안을 포함했다. 어떤 고대 기록들은 심지어 파이안을 치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성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마침내 사람들은 악이나 재난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누군가를 위한 포괄적인 문구로 그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부 역사적 기록은 인간이 오랫동안 실존적 스트레스와 씨름해 왔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죽음의 신 타나토스가 인간을 일상적인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구했기 때문에 파이안을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결부시키기도 했다. 파이안은 아폴론과 동일시되었던 태양 신 헬리오스의 별칭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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