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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오스트리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이 국제 왕따가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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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치권에서는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두고 말이 많은 모양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서로 차기 대권 주자로 모시기 위한 경쟁이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은 친반이니 반반이니 하면서 새로운 계파 창출에 열을 올리고 있고, 새정치연합은 새정치연합대로 반기문 총장이 자기 사람이라며 차기 대권주자로 지목하고 있다. 하지만 반기문 총장 본인의 의사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이런 정치권의 모시기 경쟁 때문인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도 반기문 총장은 늘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정책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는 우리 정치권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정치권의 반기문 총장 모시기 경쟁과 함께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 오스트리아 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Kurt Waldheim, 1918~2007)이다. 빈국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발트하임은 오스트리아 외무장관 비서, 캐나다 대사, 유엔 대사, 외무부 장관을 거쳐 UN사무총장을 역임하는 등 초고속 승진의 입지전적 인물로 유명하다. 게다가 UN사무총장 경력을 바탕으로 1986년 오스트리아 국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고 54%의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스트리아 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 

 

하지만 유엔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발트하임이었지만 대통령 재임 시절 그는 국제적인 왕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발트하임이 대통령에 당선한 이듬해 미국은 발트하임을 요주의 대상자(Watchlist)에 올려 그는 평생 미국 입국이 거부됐다. 또 이스라엘은 아랍 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발트하임에 불편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는 서방세계도 발트하임을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외교기피인물)로 지정하고 예방하지도 초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결국 발트하임은 1992년 재선을 포기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유엔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발트하임은 자국의 대통령이 되자마자 왜 국제 왕따가 되었을까? 그의 전력 때문이다.

 

발트하임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부터 과거 전력 때문에 시달렸다. 오스트리아 주간지 '프로필' 기자였던  보름에 의해 그가 2차대전 당시 나치당과 나치돌격기마대원(SA)이었다는 서류와 사진이 폭로된 것이다. 게다가 국제유대인협회(WJC)는 발트하임이 그리스 살로니카에서 4만명의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이송하는 사업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발트하임은 저신은 나치당원도 전범 행위를 한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그의 전력에 대한 증거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당시 발트하임의 경쟁자였던 사민당 지노바츠 총리도 그의 전력을 선거 운동에 적극 활용했다.

 

▲나치돌격기마대원 시절의 쿠르트 발트하임 

 

발트하임의 이런 전력이 그의 대통령 당선에 걸림돌이 되지는 못했다. 반유대주의 성향이 강한 오스트리아 국민들은 이스라엘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발트하임을 더 지지했고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시켜 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력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었던 그를 국제 왕따로 만들었고 불명예로 정계 은퇴하는 운명을 겪어야만 했다.

 

국제역사학회는 발트하임이 전볌 행위를 한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발칸에서 벌어진 전범 행위를 알았어야 했다며 도의적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발트하임은 자신은 그저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고 변명했지만 국제사회에서 그의 변명이 통할 리 없었다. 유대인 학살 현장에 있었지만 자신은 직접 학살에 가담하지도 않았고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재판에 참석한 뒤 그를 평범한 얼굴을 한 악이라고 표현하며 아이히만은 그저 바보스럽게 위에서 내리는 지시만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악의 평범성을 주장했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에게 속았다. 아이히만이 사형당한 뒤 발견된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는 지능적으로 유대인을 학살했고 더 죽이지 못해 안타깝다.”고 고백했다.

 

학살 현장에 있었으면서 학살에 동참하지 않았고 그 사실을 몰랐다니. 발트하임이 국제적 왕따가 된 데는 오히려 그의 전력을 숨기려 했던 온갖 변명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유엔사무총장까지 역임했던 오스트리아 전 대통령 쿠르트 발트하임의 불행은 해방된지 70년이 다 되로록 아직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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