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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길포드 사건과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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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9일 영국 블레어 총리는 성명을 내 30년 전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블레어 총리는 "그들이 겪은 시련과 부당함에 사과를 표한다"며 "가족들이 겪은 상실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고 밝혔다. 도대체 30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국가를 대표하는 총리가 뒤늦게 사과까지 했을까? 사건은 1975년 10월 5일 영국의 어느 술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 폭력의 희생자가 된 젊은이들

 

1975년 10월 영국 길포드 술집에서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Irish Republican Army) 테러와 관련해 폴 힐(Paul Hill), 제리 콘론(Gerry Conlon), 패트릭 암스트롱(Patrick Armstrong), 캐롤 리처드슨(Carole Richardson)라는 이름의 4명의 청년이 체포되었다. 소위 길퍼드 4인방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IRA 테러와 연관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었다. 다만 패트릭 암스트롱과 캐롤 리처드슨이 불법 건물에 살고 있었고 몇 건의 경범죄 전력이 있었을 뿐이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중에서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결백을 주장했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종신형을 선고 받았다. 뿐만 아니라 제리 콘론의 가족 등 7명이 추가로 기소되었다. 2년 후인 1977년 다른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IRA 단원들에 의해 길퍼드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었다는 것을 밝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영국 검찰은 이들을 길포드 사건과 관련된 혐의로 기소하지 않았다. 길퍼드 4인방도 항소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 사건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그러던 1989년 이 사건을 조사하던 사설 탐정에 의해 패트릭 암스트롱의 혐의가 담긴 경찰 신문 내용 초안을 발견했는데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자기로 작성된 경찰 신문 내용 초안은 삭제하거나 추가한 부분이 있었고 순서가 바뀌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에 제출된 심문 내용이나 심문 과정에서 손으로 쓴 내용이 새로 발견된 초안과 동일했다. 이것은 심문 과정에서 손으로 쓴 내용이 심문이 있은 뒤에 작성되었다는 것을 암시했고 경찰이 짜집기했다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중에서 

 

새로운 증거를 바탕으로 길포드 4인방은 다시 항소했고 재심 결과 경찰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결국 4명의 젊은이들은 무죄 선고를 받았고 이들과 함께 옥살이를 했던 다른 10여 명도 1990년대 들어 모두 무죄임이 밝혀졌다. 이 사건은 영국 사법 사상 최대 '과오'로 남았으며 영국 사법체계에 대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제리 콘론은 자신의 아버지가 경찰의 구타와 강요로 IRA 폭탄 테러와 관련됐다는 허위 자백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끝내 제리 콘론의 아버지는 옥중에서 숨을 거뒀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이 사건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바로 짐 셰리든 감독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In The Name Of The Father, 1993)이다. 길포드 4인방이었던 제리 콘론의 자전적 소설 <입증된 무죄>를 영화한 것이다. 잉글랜드 길퍼드의 한 술집에서 끔찍한 폭탄테러가 발생했고 이 사고로 5명이 사망하고 75명이 중상을 입는다. 당시는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주장하는 IRA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절로 제리 콘론(대니얼 데이 루이스)은 철없는 청년으로 영국군 저격병으로 오해받았고 폭동을 주도한 인물로 찍혀 엉뚱하게 폭탄 테러의 주범으로 체포된다.

 

제리 콘론은 경찰의 협박과 고문으로 허위 진술서에 서명을 하고 아버지 주세페까지 공법으로 몰려 교도소에 수감된다. 종신형을 선고받은 제리 콘론은 감옥에서 만난 IRA 간부들을 마치 영웅 대하듯 철없는 행동을 계속 하지만 결국 진정한 영웅은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 주세페는 결국 옥중에서 사망하고 이에 격분한 제리 콘론은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 일어선다. 짐 셰리든 감독은 민감한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아들의 오해와 화해에 촛점을 맞추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성숙하는가를 보여 주었다.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는 44회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금곰상을 수상했다.

 

검찰의 권력 남용은 물론 권력의 시녀가 된 대한민국 검찰의 현실을 볼 때 결코 남의 나라 일, 영화 속 허구만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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