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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문명 이기의 결정체 자동차,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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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주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자동차다. 인간들은 나만 타면 내 본능을 일깨운다. 인간의 이동 속도는 보통 시속 2~4킬로미터다. 이렇게 느린 인간들은 오래전부터 편하고 빠르게 움직이려는 습성이 있었다. 인간들은 마차, 자동차 순으로 점점 더 빠르게 이동하는 물건을 만들어 냈다.

 

내 선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딱 집어 어떤 한 인간의 손에 발명됐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처음 1769년 프랑스의 공병 장교인 니콜라퀴뇨라는 인간이 세 바퀴 증기 자동차를 만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걸음 속도보다 느린 시속 3.2킬로미터밖에 달리지 못했다. 그보다 117년 뒤인 1886년에는 독일의 고틀리에프 다임러라는 사람이 시속 15킬로미터로 달리는 네 바퀴짜리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했다. 거의 동시에 독일 카를 벤츠도 모양이 아주 비슷한 자동차를 발명했다. 1893년 독일의 루돌프 디젤은 디젤 엔진을 개발했고, 1895년 프랑스의 앙드레 미슐랭은 자동차용 공기 타이어를 발명해 내 질주 본능을 서서히 일깨웠다.

 

초기에 나를 발전하게 만든 이들은 독일인이다. 최초로 대규모 제조업자는 프랑스인이었다. 나를 가장 많이 산 이들은 미국인들이었다. 나를 사기 위해 집을 담보로 잡히고,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자식의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910년대에 미국의 어느 노동조합 간부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에게 왜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25퍼센트에 불과하고 집을 마련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람은 10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동차를 사기 위해 일한다는 사람은 무려 65퍼센트에 달한다."

 

 

▲사진>구글 검색 

 

미국의 자동차 열광은 거의 전염벙처럼 미국 사회를 덮었다. 나를 찬양하는 노래가 히트송이 되곤 할 정도였다. '포드 자동차를 사 주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을래요'나 '뷰익을 타고 신혼여행 가요'는 1920년대 중반의 인기 가요였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사실상 위와 같은 노래들을 은근하고 세련되게 표현한 자동차 소설이기도 했다. 여주인공 데이지는 고급 자동차라면 사족을 못 쓰는 전형적인 1920년대 여인이었고, 개츠비의 노란 롤스로이스는 이 소설에서 상징 이상의 핵심적인 메세지를 던져 주는 장치였다. 

 

<중략>

 

한국에 내가 들어온 것은 1900년대 초반 고종 때였다. 그 뒤에 1908년 2월 일본 고베에서 근무하던 프랑스 공사가 경성으로 전근 발령을 받고 들어올 때 나를 한 대 가져 왔다. 나를 처음 본 장안의 백성들은 기절초풍했다. 귀신이 웅얼거리는 듯 나는 엔진소리와 뒤꽁무니에서 나는 연기, 거대한 쇠뭉치로 된 내가 스르르 굴러가는 광경은 조선 사람들에게 천지 이변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괴상한 경적 소리를 터트리자 행인들은 기절초풍했다. 

 

▲사진>구글 검색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에도 현재 미국처럼 마이카 시대가 왔다. 집이 너무 비싸 살 수 없는 사람들도 나는 꼭 한 대 정도 사려고 한다. 모두 나한테 중독돼 있다. 공공 교통 중심으로 만들지 않은 교통 체제 때문에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버스 운행 시간이 지체되면 시민들은 나를 사지 않을 수 없다. 승객을 빼앗긴 버스업계는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전반적인 교통체계가 나를 중심으로 형성된다. 버스를 타는 시민들의 불편은 더 심해진다. 

 

<중략>

 

내가 이 지구상에서 없어져야 할 가장 중요한 까닭이 있다. 자본주의는 화석 연료에 기대 발전해 왔다. 60년 전에는 에너지 고갈 현상에 대해 말하는 이는 없었다. 전문가들은 석유가 끊임없이 생산될 것이라 믿었다. 석유산업, 건설업, 금융업, 화학공업, 심지어 농업까지 화석 에너지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자동차는 100퍼센트 화석 에너지를 써야 한다. 개발 가능한 석유 생산량은 매장량의 30~45퍼센트 정도다. 자동차 산업은 거의 한계점에 다다랐는데 아직까지 나를 위해 귀중한 자원을 쏟아붓고 있다. 아직은 석유가 고갈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지는 않고 있으나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위기에 처해 있다. 나같이 천한 자동차도 알고 있는데 인간만 모르고 있다. 아니, 알면서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자동차다. -<작은책> 9월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것들|자동차'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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