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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세계명작단편소설

이 남자가 젊은 여자에 집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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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병/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 1871~1930, 일본)/1907년

 

한 남자가 있다. 생긴 걸로 치면 볼품 없을 정도가 아닌 오싹할 정도로 형편없다. 나이는 어림잡아 서른일곱 여덟 정도이고, 새우등에 들창코, 뻐드렁니, 거무스름한 구렛나룻이 얼굴의 반을 덥수룩하게 덮고 있어 언뜻 보면 무서운 생김새다. 그러니 젊은 여자들이 낮 시간에 마주쳐도 오싹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게 눈은 온화하고 성격은 상냥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남자의 독특한 취향? 나쁜 버릇?

 

이 남자의 이름은 스기다 고죠로 젊은 시절 꽤 이름있는 소설가였다. 서른일곱이 된 오늘날에는 별 볼일 없는 잡지사의 직원이 되어 보잘 것 없는 잡지 교정이나 하고 있지만 한 때는 대중의 박수 갈채를 받은 적도 있었던 작가였던 것이다. 물론 이렇게 문단의 지평선 아래로 침몰해 버릴 것이라고는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때 촉망받던 작가였던 이 남자가 추락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독특한 취향 때문이었다. 옛날부터 그랬듯이 이 남자는 젊은 여자를 동경하는 버릇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쁜 버릇이라고도 하고 병이라고도 하지만 그에게는 하나의 취향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만 보면 작가로서의 관찰력은 일순간 무뎌지고 위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젊었을 적 자주 소녀 소설을 썼지만 관찰이나 상상도 없이 동경만으로 쓴 소설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을 리 만무했다. 결국 이 남자와 소녀라는 존재는 문단의 웃음거리가 되었고 그의 소설도 문단과 대중의 웃음소리 속으로 사라져갔다. 

 

▲사진>야후재팬 검색

 

그는 오늘도 붐비는 전차 안을 두리번 거리며 젊고 아름다운 여자를 발견하고는 상대방과 타인의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면서 여자를 바라본다. 그가 그렇다고 젊은 여자의 얼굴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어지간히 못생긴 얼굴에서도 아름다운 구석을 하나쯤은 발견하곤 한다. 어쨌든 독특한 취향인지 나쁜 버릇인지 애매모호한 '소녀병'은 이 남자를 비참한 죽음으로 내몰고 만다. 붐비는 전차 안에서 꼭 한 번 더 만나고 싶었고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던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에 황홀하게 취한 나머지 전철에서 떨어졌고 맞은 편 전차에 치여 레일 위를 붉게 물들이며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이 남자는 젊은 여자라면 어지간히 못생긴 얼굴에서도 눈이 괜찮다든가, 코가 괜찮다든가, 피부색이 괜찬다든가, 피부색이 희다든가, 목덜미가 아름답다든가, 무릎이 도톰한 것이 괜찮다든가 하며, 무언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보고 즐기지만……. -<소녀병> 중에서-

 

이 남자가 젊은 여자에 집착하는 이유

 

이 소설은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우선 백 년 전 소설이지만 지금 읽혀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시대를 뛰어넘는 현실감이 있다. 하지만 젊은 여자를 탐닉하며 발생하는 각종 사회 문제 즉 성폭행이나 원조교제, 미성년자 성추행 등이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혼탁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 남자의 독특한 행동을 취향으로 볼 것인지, 나쁜 버릇으로 볼 것인지, 병으로 볼 것인지의 문제가 생긴다. 물론 이 남자가 살아있다면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자신은 아름다운 여자를 동경하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만 탐닉했다고. 

 

▲사진>야후재팬 검색 

 

제목인 '소녀병'은 이 남자의 생각과 달리 뭇 사람들이 바라보는 이 남자에 대한 시선일 것이다. 성격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병이라는 사람들도 있고, 본능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 남자의 취향(?)에 대해 어떤 주장을 하건 논란거리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논란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왜 이런 발칙한 상상력을 동원했을까? 젊은 여자에 집착하는 이 남자의 독특한 버릇을 통해 작가는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편집장은 또 빈정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사람을 놀리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애써서 아름다운 문장이라도 만들어 놓으면, 스기다군. 또 그 야한 이야기가 나왔네요, 하며 날카롭게 찌른다. 무슨 얘기를 하든지 간에 소녀 얘기를 끄집어내 비웃음을 당하게 한다. 그러면 때때로 울컥 화가 치밀어서, 난 어린애가 아니야. 서른일곱이야. 사람을 바보 취급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하며 분개한다. 그렇지만 그런 감정도 금세 사라져버리고, 질리는 일도 없이 다시 농염한 노래를 읊조리며 신체시를 짓는다. -<소녀병> 중에서-

 

물질문명의 범람 속에 자아를 빼앗겨야만 했던 근대인들의 자화상이 고스란히 현대 사회로 이어지고 있다. 아니 현대인의 삶은 근대인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다.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짊어진 짐과 가장으로서의 책무인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는 그로 하여금 자신을 잃어버리게 하는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그가 소녀에 탐닉하는 것은 소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통해 삶에 대한 열정과 생기를 찾고자 했던 간절함은 아니었을까?

 

이 소설이 백 년이라는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논란이 있는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현대인의 삶이 결코 녹녹치 않은 현실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다. 누구든 취향대로 본능대로 살기를 원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삶을 지배하면 할수록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은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이다. 그래도 소녀에 집착했던 스기다 고죠 이 남자에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다. 아무리 젊은 여자의 아름다움만 동경했을 뿐이라고 주장하지만 집착은 끝내 화를 부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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