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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따따부따

책임이 없다는 청와대, 과연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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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가장 큰 특징 하나는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도 그랬고, 유우성 간첩 증거 조작 사건도 그랬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대신 사과하거나 여론이 불리하다 싶으면 그 때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는 관행이 생긴 것이다. 그 과정에서 대통령은 해당 사고나 사건의 제3자 입장에서 정치권으로 모든 문제의 화살을 돌리기 일쑤다.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들이 국가적 사고나 사건 때마다 머리 숙여 사과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이런 덕에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 국민적 신뢰를 잃으면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마찬가지다. 총리만 사과했을 뿐 대통령은 '어린 학생들이 수학여행 길에서 큰 참변을 당해 참으로 가슴 아픈 심정'이라며 애도만 표할 뿐 아직까지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다. 대신 먼저 탈출한 승무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라며 국민 정서를 자극하는 발언만 반복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해외 언론에서는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법권 침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야 정부의 책임이 없다손 치더라도 이후 사고 수습 과정에서 벌어진 난맥상은 유가족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국민들의 분노를 더 가중시키고 있다. 단 한 줄의 사과성명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사과는 커녕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의 책임 논란에서 회피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어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실은 재난 관련 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민 대변인은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 청와대의 안보·통일·국방의 컨트롤 타워'라고 말했다. 안보실은 첩보를 수집해 각 수석실에 뿌리는 역할만 할 뿐 '법령으로 따지만 이런 재해 상황이 터졌을 때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2014년 국가안전관리 집행계획'에 따르면 사고나 테러가 발생하면 국가안보실에 보고하고 또 안보실은 대통령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청와대의 이런 반응은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 과정에서 벌어진 혼선에 대해 국민들의 비판과 불만이 대통령과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수습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늑장 대응과 혼선은 현 정부가 자초한 것이라는 분석이 여러 언론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제대로 된 위기관리 매뉴얼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정부의 위기대응 시스템과 초동 대처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며 위기관리 매뉴얼이 작동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그러면서 더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질책과 달리 제대로 된 위기관리 매뉴얼이 이미 있었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 4월 식목일을 전후 발생해  비무장지대(DMZ)까지 번진 산불을 계기로 '위기관리 대응 매뉴얼'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만든 NSC(국가안전보장회의)는 통합적인 국가위기관리체계로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 발생시 대처요령이나 초동단계 지침, 위기발령 체계 전파, 대국민 홍보방안 등을 명시한 종합적인 위기관리 매뉴얼이었다. 재난이나 사고 발생시 정부 각 부처나 기관의 대응책을 구체적으로 규정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을 수립했으며 NSC 산하 위기관리센터는 270여 개의 실무 매뉴얼이 있었다고 한다. 또 1년에 한번씩 위기대응통합훈련을 실시해 매뉴얼을 보완했다고 한다.

 

오늘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장을 역임했던 류희인씨도 이같은 사실을 재차 확인해주고 있다. 류희인씨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전통적 의미의 안보로 불린 군사적 위협뿐만 아니라 재난까지 포함한 포괄적 안보를 추구하고 청와대에서 이를 관리했다고 한다. 즉 NSC가 위기상황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는데 그 이유는 통일·외교·국방 등 전통적 의미의 안보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나 인적 재난, 전력, 통신 등 국가핵심기반시설 마비까지도 국민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고 넓은 의미의 안보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강력한 재난대응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이미 청와대가 그 역할을 하도록 하는 매뉴얼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대응 매뉴얼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는 말일까? 아니면 매뉴얼조차 없다는 것일까? 물론 현재도 위기대응 매뉴얼이 있다. 하지만 형식적이고 컨트롤 타워 자체가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할 수 없게 돼 있어서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없앴다

 

기억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치 마녀사냥하듯 참여정부 흔적 지우기에 열을 올렸다는 사실을. 참여정부가 만든 제도나 시스템의 효용성과 필요성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참여정부의 흔적이 남아있는 거라곤 죄다 없애는데 골몰했다. 그 중 하나가 NSC라는 상설기구를 통해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을 총괄해 오던 것을 폐지한 것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NSC를 비상임기구로 전환했고 동시에 안보 분야는 청와대가, 재난 분야는 안전행정부가 맡도록 했던 것이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의 책임 회피성 발언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엉망이 된 데는 박 대통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 시절 당시 박근혜 의원은 새누리당의 전신이었던 한나라당 시절부터 대통령에 버금가는 당내 위상과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기존에 있던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이 무용지물이 될 때까지 일언반구도 없었던 대통령이 이제와서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한편 박 대통령은 지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과 선박 안전 관련 상당수의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며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선장의 승객 유기 관련 책임 법안도 이미 국회에 상정돼 있는 민생법안'이라며 정치권에 책임을 돌리려는 발언을 쏟아냈지만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그렇게 위기관리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고 심각성을 인식했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위기관리 매뉴얼이 폐기되는 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박근혜 정부 출범과 동시에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꿀 정도로 안전에 방점을 두었지만 말뿐이었다는 것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난맥상은 물론 박근혜 정부가 첫 편성한 2014년 예산안에서도 안전 분야 예산은 대폭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기획재정부는 재난 관리에 투입되는 재정을 2017년까지 약 5% 가량 축소한다는 계획까지 세워놓았다고 한다.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지금 대통령과 청와대가 해야 할 일은 여론의 비판과 비난을 피해가려고 꼼수를 부릴 때가 아니다. 앞서 살펴봤듯이 지금의 혼선과 난맥상의 책임은 대통령 본인에게 있다. 설마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를 계승하지 않는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과정에서부터 강조했던 '안전한 정부'가 허언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슬픔에 빠져있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은 물론 국민들에게도 진심어린 사과를 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확실한 후속대책을 서두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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