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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역사가 기억하지 않는 소시민들의 일상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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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인의 <강>/1968년

E.H 카는 1961년 1월부터 3월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한 내용을 묶은 책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역사란 역사와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했다. 더불어 역사가와 그가 선택한 사실의 상호작용은 추상적이고 고립된 개인들 사이의 대화가 아니라 현재의 사회와 과거의 사회 사이의 대화로 '역사란 한 시대가 다른 세대 속에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일들에 관한 기록'이라고 했다.

E.H 카의 역사에 관한 명쾌한 정의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역사란 승자의 기록이고 또한 영웅들의 놀이터란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가 말한 주목할 만한 가치란 승자가 된 몇몇 영웅들에 의해 평가되고 왜곡되기도 하며 폄하되기도 한다. 결국 E.H 카가 말한 주목할 만한 가치란 어쩌면 역사의 한복판에 섰던 다수 개인들의 평가가 가장 합리적이고 정당할지도 모른다. 다만 역사가 그런 개인들을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서정인의 소설 <강>은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개인들의 일상을 포착하고 있다. 군하리행 버스에 몸을 맡긴 군상들에게는 이름조차도 없다. 그저 '고깔 모자를 쓴 사나이', '외투 속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 '잠바를 입은 사나이' 정도로 불릴 뿐이다. 기껏해야 '박씨', '김씨', '이씨'가 그들을 부르는 이름의 전부다. 우리는 그들을 '소시민'이라 부른다. 진정한 역사란 이런 소시민들의 삶의 기록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군하리행 버스에 탄 우리네 이웃, 소시민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소설 <강>에는 각기 다른 네 가지 유형의 소시민들이 등장한다. 박씨, 김씨, 이씨 그리고 여자. 세 남자는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하기 위해 , 여자는 술집 작부로 일하고 있는 '서울집'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소설은 현실과 상상이 교차하며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심리를 섬세하고 묘사하고 있다. 

전직 국민학교 선생이었던 박씨. 고깔 모자를 쓴 박씨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병역 기피자다. 김씨와 이씨가 묵고 있는 하숙집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는 그의 전력 탓인지 검은 색안경을 쓰고 나타난 버스 기사를 보고는 형사를 상상한다. 등장인물들 중 가장 평범한 캐릭터지만 술판에서는 쾌활한 성격의 이씨에게는 질투심을 느낀다. 

슬쩍 떠보느라고 "이주사는 정말 재미있는 사람이야"라고 그가 말했을 때, 그녀가 "정말 그래요"라고 대답했으므로 그는 대단히 실망을 했다. 

잠바를 입은 사나이 이씨는 세무서 직원이다. 요즘이야 권력, 재력, 학력 등 성공에 관한 다양한 기준이 존재하지만 소설이 씌여진 1960년대를 감안한다면 세무서 주사 이씨는 분명 성공한 캐릭터의 전형이다. 그는 검은 색안경을 보고는 안마 시술소의 포동포동한 여자 장님을 떠올리고 술판에서도 적극적으로 여자에게 희롱을 한다. 그렇다. 이씨는 매력적이긴 하지만 다분히 속물 근성이 강한 군상의 대표격이다. 

박씨나 이씨와 달리 김씨는 늙은 대학생으로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사는 인물이다. 그는 가난한 대학생이다. 그는 스스로를 인생의 낙오자로 생각한다. 여인숙의 꼬마를 통해 천재에서 낙오자로 전락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적중하느냐 않느냐가 아니라 적중하건 안하건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데에 있다. 적중하건 안하건 간에 그는 그가 처음 출발할 때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던 곳으로부터 사뭇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와 있음을 깨닫는다. 아 ― 되찾을 수 없는 것의 상실임이여!

마지막으로 술집 작부인 여자는 생의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했지만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소시민들의 대명사다. 그녀는 하얀 눈을 보며 신부의 꿈을 꾸고 있다. 그녀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을 늙은 대학생을 통해 이루려 한다. 가엾게 새우잠을 자고 있는 김씨를 보며 자신이 그의 누나가 되고 어머니가 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는 김씨의 옆에 누워 남폿불을 끈다. 

하얀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밤에 그녀가 남겨논 발자국이 하얗게 지워지듯 이들 네 명의 소시민들은 그렇게 누구도 기억해 주지 않는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소설 속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강'을 제목으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은 사실은 여러 발원지에서 출발한 물이 모여 생성된다는 것에서 착안하지 않았나 싶다. 사회란 또 역사란 다양한 모습을 하고 그만큼의 다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것이라는 메세지를 주고자 했을 것이다. 

억압의 시대였던 1960년대에도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도 비록 역사가 기억해 주지는 못할망정 소시민들은 그렇게 살았고 또 살아갈 것이다. 언젠가 역사의 중심에 설 그날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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