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래도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 좋았다

반응형
김이석의 <실비명>/1954년 

타박 타박 타박네야 너 어드메 울고 가니/ 우리 엄마 무덤가에 젖 먹으러 찾아간다/ 산이 높아서 못 간단다 산 높으면 기어가지
(후렴)명태 줄라 명태 싫다 가지 줄라 가지 싫다/ 우리 엄마 젖을 다구 우리 엄마 젖을 다구

우리 엄마 무덤가에 기어 기어 와서 보니/ 빛깔 좋고 탐스러운 개똥참외 열렸길래/ 두 손으로 따서 쥐고 정신없이 먹어보니/ 우리 엄마 살아 생전 내게 주던 젖 맛일세

1970년대 대중가요로 더 알려져 있는 함경도 민요 '타박네야'는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화려한 미사어구 없이도 극한의 슬픔으로 이끌어준다. 김이석의 소설 <실비명>을 다 읽을 즈음이면 이 '타박네야' 노랫가락이 귓가를 배회하는 듯 애틋한 슬픔이 느껴진다. 한편 주인공 도화의 '타박네야'는 살아생전 아버지가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춤으로 형상화되면서 회한의 슬픔까지 더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그는 손이 터져 찢어져라고 소나무 북을 두드리며 '이대로 그만 쓰러졌으면.'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서는 다시 무엇을 잡을 것이 없어 허공에 손을 벌리고 돌아가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 그대로 쓰러진 채 급기야 울음이 터지었다. 뭉쳤던 설움이 터지면서 어리광도 부려보고 싶은 울음이었다. -<실비명> 중에서-

한국적인 인정의 세계

비평가 백철은 김이석 소설의 특징을 '한국적인 인정의 세계를 그리는 휴머니즘 정신'이라고 했다는데 <실비명>을 두고 한 말이지 싶다. 휴머니즘이면 그냥 휴머니즘이지 한국적인 인정의 세계란 또 무슨 말일까. 주인공 덕구의 딸에 대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자신의 기대에 충족하지 못한 딸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국적'이란 말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 

저자가 전후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렇게 이념적이지도 신랄하게 비판적이지도 않다. 다만 빈곤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서민들의 애환을 관조적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보이는 것이 한국적인 인정의 세계다. 서양인들의 시선이나 오늘날 지식인들의 그것으로 바라볼 때는 부모의 출세지향이나 대리만족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체화된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은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 덕구가 딸 도화에게 기대하는 꿈, 의사를 두고 한 말이다. 우리 부모, 부모의 부모 세대부터 이어내려온 관습 중 하나가 우리세대에 이루지 못한 꿈을 다음세대의 꿈이나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다. 요즘의 진보적 시각에서 보면 비판의 대상이 되겠지만 여전히 버릴 수 없는 가장 한국적인 교육철학 중에 하나다.  내리사랑의 가장 한국적인 표현인 것이다. 

그가 딸에게 바라는 것은 의사였다. 그것은 그가 오래전부터 그의 가슴속에 간직해둔 결심이었다. …… 그 생각만 하면 피곤도 잊어버리고 그저 즐겁기만 했다. 그렇다고 그는 딸을 의사 공부를 시켜 호강을 사겠다는 그런 마음에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금 기생의 인력거를 끄는 대신, 의사가 된 딸의 인력거를 끌어보겠다는 단순한 그 마음이었다. -<실비명> 중에서-

이런 부모세대의 소망은 자식과 피할 수 없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실비명>에서도 아버지 덕구의 소망과 달리 도화의 꿈은 기생이고 배우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전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아버지 또한 자신의 기대에 못미치는 딸을 부정할 수는 없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비극은 이런 한국적 정서에서 비롯된다. 기생이 된 도화가 인력거를 타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런 정서 때문이다.

실비명(失碑銘)이 의미하는 것

저자의 한국적인 정서는 제목 '실비명'에서도 드러난다. 실비명이란 '이름이 없는 비석'을 말한다. 요즘이야 비석을 세울 일도 없거니와 세운다 해도 아들이니 딸이니 구분해서 비석에 이름을 넣고 빼는 일이 없지만 1950년대만 해도 비문에는 딸의 이름이 들어가지 못했단다. 마치 족보에 여자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던 것처럼.

한편 실비명은 슬픔의 간극을 극대화시켜주는 소재이기도 하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도화가 느낀 감정 상태가 '실비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화의 이런 감정 상태는 아버지가 반대했던 기생 춤사위로 아버지의 넋을 위로하게 된다. 가장 극적인 장면이면서 죽은 아버지와 남아있는 딸이 화해 아닌 화해를 시도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도화는 무심히 앉아서 아버지의 무덤을 지켜주는 듯이 무덤 앞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람이 휙 하고 스쳐갈 때마다 솔가지들은 나부끼며 흡사 춤을 추는 것 같았다.……그러고는 잠시 동안 푸른 하늘을 향하여 옷깃을 고치었다. -<실비명> 중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다. 소설 <실비명>이 한국적인 인정의 세계를 그렸다면 빈곤 탈출의 꿈은 이 속담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 덕구가 딸 도화에게 바라는 소망도 지긋지긋한 가난을 자신의 대(代)에서 끝내고 도화가 살아갈 다음 세대에는 용으로 살길 바라는 부모의 사랑인 것이다.

소설 <실비명>을 회고하는 마지막 심정이 조금은 씁쓸하게 끝나는 듯 싶다. 이 소설이 쓰여진 시대적 배경이 지금보다 힘들고 지금보다 모순된 사회였을망정 용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긴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개천에서 용 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당하고 있다는 게 슬플 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