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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어머니가 개똥참외 두 개를 남겨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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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순태의 <어머니의 땅>/1982년

대표적인 악법으로 비난받고 있는 국가보안법이 일제 강점기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본따 만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편 이승만이 정치적 반대세력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든 국가보안법은 여순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제주의 민중봉기 진압을 거부하고 38도선 철폐와 친일파 처단, 조국통일을 주장한 좌익계 군인들의 반란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사건이기도 했다. 

1982년 《문학사상》에 발표된 문순태의 소설 <어머니의 땅>은 여순사건과 그로부터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갑오농민전쟁(동학농민운동)의 격랑 속에 발생한 가족 수난사를 다루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중심으로 전후에 일어났던 두 사건은 분명 이념적으로 유사한 접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가 두 사건이 가족사에 미친 영향을 보는 시선은 탈이념적 성격이 강하다. 탈이념은 문순태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원수의 씨받이가 된 어머니

소설은 어머니의 가출로부터 시작된다. 평생을 흙만 일구며 살던 어머니에게 도시생활은 그야말로 감옥과도 같다. 이는 아내를 비롯한 가족과 겪게 되는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어머니는 정신적 충격으로 기억의 일부를 상실하게 되고 이중인격적 정서구조라는 정신적인 아픔을 겪게 된다. 어느날 어머니는 수의를 챙기고는 다시 오랜 가출을 하게 되는데 이때 주인공 나는 이복동생 혜순을 만나면서 가족 수난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어머니와 나, 어머니와 혜순, 나와 혜순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갑오농민전쟁과 여순사건 때 대장장이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정주사 집안의 밀고로 세상을 뜨게 되었음에도 어머니는 정주사 집안의 씨받이가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여기서 왜곡된 역사, 청산하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그대로 드러난다. 구한말 관료를 지냈던 정주사 집안은 일제 강점기 때도 일제에 협력하면서 기존의 기득권을 유지하게 되고 해방이 되어서도 친일 행적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된다. 반면 시아버지와 남편을 잃은 어머니에게 세상은 생존을 위해 늘 싸워야하는 대상이다.

"이 에미가 뭣 땜시 사는 줄이나 아냐? 네눔 굶게 쥑이지 않을라고 산단다 이 자석아. 고것도 모르고 밥을 얻어묵으로 안 왔어? 네눔 배부르게 밥멕일라고 이 에미가 뼈빠지게 일허로 댕긴 것도 모르고! 네눔이 굶으면 이 에미는 뭣헐라고 살긋냐." -<어머니의 땅> 중에서-

원수였지만 정주사의 씨받이가 되어 혜순을 낳은 어머니에게 먹고사는 것만큼 절실한 문제는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민초들이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주인공 나에게 혜순은 여전히 원수 정주사의 분신이다. 정주사에 대한 복수로 혜순이가 어릴 적 겁탈까지 마음먹었던 나였다. 그런 내가 혜순이와 어머니를 찾아 아픈 가족사가 묻어있는 동학골로 동행하고 있다. 나와 혜순은 화해를 할 수 있을까? 또 어머니는 잊고싶은 잊어야만 하는 동학골에 왜 가야만 했을까? 그런 어머니의 땅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은 이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자는 탈이념적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중립지대를 만들기 위한 설정은 아니다. 저자는 탈이념적 인물들을 통해 이념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데 촛점을 맞추고 있다. 무지한 민초들에게 이념은 사치일 뿐이다. 그저 살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 뿐이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민초들에게 이념의 굴레를 뒤집어씌우고 만다. 해방공간과 이어진 전쟁 와중에 민간인 학살의 진상이 밝혀지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헛죽음을 하신 거야. 아무 값도 없는 죽음이지. 도대체 어떤 주의를 위해서 아까운 목숨을 바친다는 것부터가 무의미한 일이야. 그것이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는데도 그 제도가 인간을 구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을 희생시키고 있으니까 말야. 그러니까 이 골짜기에서 죽은 이편 사람들이나 저편 사람들 모두 헛되이 죽은 거라구." -<어머니의 땅> 중에서-

저자의 얘기대로 이 땅에는 하나뿐인 고귀한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지켜 나가야 할 어떤 이념도 없다. 이념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지 인간이 이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혜순이는 이념 갈등의 희생양이다. 어머니가 동학골을 찾은 것은 이념이 아닌 단순히 먹고살기 위해 목숨을 내놓았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묻혀있기 때문이고 어머니가 생존을 위해 평생을 빌어먹었던 어머니의 땅이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나와 혜순이가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돌감나무 아래 숨겨두었던 노란 개똥참외 두 개는 나와 혜순의 화해이고 과거와 현재의 화해이며 이념 갈등의 해소를 염원하는 상징적 도구라고 하겠다.

아쉽게도 최근 들어 이념 대립의 악몽을 끄집어 내려는 세력들의 조직적인 음모가 활개를 치고 있다. 그들은 왜 이미 식어버린 유행을 되살리려는 것일까. 사라져가는 기득권을 되살리기 위한 발버둥일뿐이다. 그들은 해방공간에서처럼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때로는 테러까지 서슴지 않는다. 또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역사 왜곡도 불사하며 이미 오래 전에 묻힌 독재자들을 영웅으로 부활시키기도 한다. 세상에 사람을 넘어서는, 사람을 지배하는 이념이나 제도는 없다. 사람 위에 군림하는 이념이나 제도 또 그 이념이나 제도를 부활시키고 운용하고자 하는 세력은 청산의 대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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