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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그는 조물주의 오발탄이었을까, 부정한 사회의 들러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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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선의 <오발탄>/1959년

요즘
 언론보도를 통해 이웃의 무관심 속에 일주일, 한달 심지어 몇 년 동안 방치된 싸늘한 주검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그럴 때면 문득 스쳐가는 소설 속 장면이 하나 있다.

따르르릉 벨이 울렸다. 긴 자동차의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철호가 탄 차도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행렬에 끼여서 움직이는 수밖에 없었다. 철호의 입에서 흘러내린 선지피가 흥건히 그의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고 있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채 교통신호대의 파랑불 밑으로 차는 네거리를 지나갔다.

이범선의 소설 <오발탄>은 그렇게 스스로를 조물주의 오발탄이라고 절망하던 주인공 철호의 쓸쓸한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쉴새없이 오가는 문명의 이기가 울려대는 소음 속에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두는 철호의 죽음은 시대를 뛰어넘어 화려한 문명을 뒤로 하고 비루한 삶을 연명해야만 하는 우리사회의 자화상인지도 모르겠다. 무관심 속에 죽어가는 사람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사람들, 과연 그들은 조물주의 오발탄일까? 아니면 그들을 벼랑끝으로 내모는 또 다른 음모가 있는 것일까?

 

                     ▲ 영화 <오발탄>의 한 장면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던 이범선의 <오발탄>은 월남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그 결과로 일어나는 비극적인 종말을 소재로 하고 있다. 주인공 철호 가족의 면면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상실한 당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피난 당시 한강철교 폭파의 충격으로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는 어머니, 난산 끝에 죽고마는 아내, 군대 전역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 권총강도가 되어버린 동생 영호, 이런 가족들을 부양해야 할 의무를 짊어진 주인공 철호. 누구 한 명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가족은 전쟁이 남긴 비정상적인 사회의 축소판이다.  

치통의 추억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이들 가족의 일상은 철호가 물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서 처절한 패배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속에 비친 영호 자신은 온종일 숲 속을 맨발로 해매고 있는 원시인이다. 어렵사리 사냥에 성공해 보지만 그가 얻은 것은 짐승의 내장뿐이다. 머리와 꼬리는 누군가에게 빼앗겨버린 철저하게 소외된 소시민의 그것이다.

또 철호가 겪어야 하는 삶의 고난은 치통으로 형상화된다. 치통을 끝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앓는 이를 빼면 되는 것이다. 그럴 상황이 못된다는 것은 비루한 삶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철호는 임신하고서도 제대로 영양보충을 못한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을 내보인다. 그는 출혈 때문에 어금니 양쪽을 동시에 빼서는 안되지만 병원을 옮겨가며 결국 치통의 원인을 제거하고 만다. 그러나 철호는 거리를 방황하다 과다출혈로 택시 안에서 누구도 모르게 죽어간다. 전쟁의 상흔은 개인의 삶에 대한 의지와 의욕마저도 온전히 지킬 수 없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아들 구실, 남편 구실, 애비 구실, 형 구실, 오빠 구실, 또 계리사 사무실 서기 구실, 해야 할 구실이 너무 많구나. 그래 난 네 말대로 아마도 조물주의 오발탄인지도 모른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디건 가긴 가야 한다.……' -<오발탄> 중에서-

소설 <오발탄>에는 주인공 철호 말고도 또 한 명 주목해야 할 인물이 있다. 철호의 동생 영호다. 

비참한 삶의 원인은 단순히 전쟁 때문만은 아니다

영호의 등장은 <오발탄>이 전후소설을 뛰어넘어 고발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부여해 준다. 소시민들의 비참한 삶이 단순히 전쟁의 상흔 때문만이 아닌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됨을 고발한다.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윤리를 지키고 법을 지키며 사는 소시민들이지만 결국엔 현재의 비루한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부조리한 사회에 그 원인이 있다는 메세지 전달자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바로 영호다.

"양심이란 손끝의 가십니다. 빼어비리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공연히 그냥 두고 건드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 거야요. 윤리요? 윤리, 그것은 나이롱 빤쯔 같은 것이죠. 입으나마나 불알이 덜렁 비쳐 보이기는 매한가지죠. 법률? 그건 마치 허수아비 같은 것입니다. 허수아비. 덜 굳은 바가지에다 되는대로 눈과 코를 그리고 수염만 크게 그린 허수아비." -<오발탄> 중에서-

권총강도가 된 영호의 상징성은 순진하게 사는 형에 대한 충고이자 부조리하고 모순된 사회에 대한 저항에 있다 하겠다. 결국 제목의 '오발탄'은 패배주의적이고 회의적인 허무주의에 대한 역설이자 국가와 사회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소외 끝에 무기력해진 개인을 상징하는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공정한 사회가 우리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보편적인 명제인 이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면 할수록 체화된 불공정한 사회의 그늘이 더욱 선명해진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공정한 사회라는 요란한 구호만 있을 뿐 어디에도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룰이 없다.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공정한 게임이 되겠는가. 영호의 메세지는 이런 사회에 대한 고발이다. 벼랑끝으로 내몰린 사람들, 그들은 조물주의 오발탄이 아니라 불공정하고 부조리한 사회의 들러리이자 소수의 행복을 위한 희생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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