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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강원도 달비장수' 가난으로 붕괴된 공동체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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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순의 <강원도 달비장수>/1967년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이 '매춘 천국'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 돈으로 타인의 육체를 거래하는 매춘이 일명 '사창가'라 불리던 성매매 집결지뿐만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 생활 주변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말 그대로 매춘은 성을 파는 행위다. 즉 매춘이 수요자인 남성보다는 공급자인 여성에게 사회적 비난이 집중되었던 남성 우월주의적 용어였다. 그래서 매매춘이라는 용어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현재는 성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특정 성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성매매'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

한국이 매춘과 강제노동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공급지이자 경유지이고 최종 도착지라는 미 국무부의 연례 인신매매실태 보고서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매춘, 성매매는 단순한 윤리적 가치를 뛰어넘어 우리 사회가 안고있는 다양한 형태의 모순들이 집약되어 나타난 결정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춘의 역사가 인류의 역사와 동일시 되기도 하고 매춘 합법화에 대한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마치 신드롬처럼 번져가는 성매매의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전병순의 소설 <강원도 달비장수>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1968년 「현대문학」에 발표된 <강원도 달비장수>는 제목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매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달비'라는 단어의 뜻과 1968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달비는 여자들의 머리숱이 많아 보이라고 덧넣었던 딴머리, 다리의 방언이다. 일종의 가발을 의미한다. 또 1968년은 전후 본격적으로 근대화와 산업화가 시작되는 시점으로 당시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가장 번성했던 분야가 바로 가발산업이었다.

충격적인 반전

소설은 전라도 산골 추암 마을 여인네들이 강원도에 달비장수하러 떠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하루 먹기에도 버겁게 살고 있는 월평댁은 열아홉된 며느리를 동네 여인네들의 달비장수 대열에 합류할 것을 종용한다. 군대간 남편이 전역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새댁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몇 달에 걸친 시어머니의 성화에 결국 달비장수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마을 여인네들은 극구 만류하지만 월평댁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왜 그렇게 만류했을까?

어찌됐건 마을 여인네들을 따라 강원도에 달비장수로 나선 새댁은 첫 날 끔찍한 경험을 하게 된다. 새댁이 묵었던 집에 도둑이 든 것이다. 새댁은 이 도둑에게 몸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치심에 첫 날 밤을 보낸 새댁은 깜짝 놀랐다. 머리맡에 돈이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한 건 같이 나섰던 마을 여인네들은 저마다 밤새 달비를 팔아 제법 큰 돈을 쥐고 있었던 것이다. 새댁이 달비장수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둑이 새댁의 몸을 범한 댓가로 놓고 간 돈, 이 돈이 바로 달비장수로 얻는 수입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달비장수라는 명분으로 강원도에 와서 매춘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동체의 윤리적 붕괴

저자는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냉정하리만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한 마을 여인네들이 윤리적 파멸로 공동체가 해체되는 이 상황을 말이다. 달비장수로 나섰던 마을 여인네들은 새댁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뭐 그래. 자네 입만 덮어두면 누가 안당가. 죽 떠먹은 자리고 한강에 배 지나간 자린디 서방이 돌아와도 걱정할 것 없네." -<강원도 달비장수> 중에서-

새댁이 앞뒤 가리지 않고 폭로해 버린 달비장수의 진실이 아들의 귀에 들어갈까봐 전전긍긍하는 월평댁에게 동네 어른들이 중지를 모아 마을 잔치를 벌이는 장면은 공동체의 윤리적 붕괴를 리얼하게 묘사해 준다. 저자의 매춘에 대한 담담한 사건 전개는 자칫 매춘이라는 감각적 장면에 매몰되기 쉬운 독자의 시선을 매춘의 원인으로 자연스럽게 옮겨놓는다. 

'지지리도 가난한 마을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소설을 시작한다. 저자의 주제의식은 이미 소설 첫머리에 드러나 있는 것이다. 매춘이라는 현상보다 한 순간 공동체의 윤리적 붕괴를 가져온 가난의 결과를 보여주기 위해 끝까지 냉철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가난의 원인은? 그 원인은 바로 가난을 해소한다는 근대화와 산업화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이 <강원도 달비장수>라고 할 수 있다. 

성매매의 단속 이전에 왜 그들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으로 내몰리고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하는 이유다. 또 보편적 복지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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