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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일제 강점기 낭만주의 소설을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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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길(1911~1977)의 <목축기>/「춘추」27호(1943.4)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 말은 인간이 자연과 떨어져서 살 수 없다는 필연의 법칙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도시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콘크리트가 흙을 대신할수록 자연과 고향에 대한 회귀본능이 강렬해지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은 결코 인간의 지배대상이 될 수 없다는 말일 것이다. 끊임없이 자연을 정복해가는 인간이지만 결국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자연의 복수를 답습하며 살아가는 게 또한 인간이다. 

안수길의 소설 <목축기>에는 자연과의 교감에 실패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피폐해지는지를 잘 보여준다. 농촌소설이면서 개척소설인 <목축기>는 일제 강점기 만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목축기>뿐만 아니라 안수길은 <4호실>, <한여름 밤>, <원각촌>, <북향보> 등을 통해 만주 체험을 형상화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근대소설 작가 중 만주 체험을 소재로 글을 썼던 작가로는 안수길 외에도 <홍염>, <탈출기>의 저자 최서해가 있다. 그러나 안수길과 최서해의 소설들은 만주라는 배경을 제외하면 서로 극명한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카프의 맹원이기도 했던 최서해가 만주 체험을 통해 일제 강점기 당시 조선 민중들의 빈궁한 삶을 주로 그려냈다면 안수길은 민족주의적 시선보다는 주어진 현실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방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안수길의 이런 소설적 관점은 해방 후 민족주의 콤플렉스가 되고 <북간도>라는 소설로 민족의 수난사를 형상화하기에 이른다.

안수길의 소설 <목축기>의 관전 포인트도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주인공 찬호는 사립학교 농업선생이었으나 스스로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을 망발이라 생각하고 교원생활을 접고 와우산 기슭에서 목축업을 시작한다. 찬호는 무엇보다도 양돈에 주력하여 두만강 넘어 충청도 논산에서 버크셔 칠십 두를 씨톹[種豚]으로 들여오게 된다. 그러나 실제 소설에서 저자와 주인공 찬호가 주목하는 사람은 양돈 전문인부인 로우숭(老宋)이다. 로우숭이 돼지를 대할 때 보이는 일체감은 다름아닌 인간과 자연의 교감처럼 보인다. 찬호가 보는 로우숭의 생리는 돼지와 더불어 사는 듯 했고 돼지의 말을 알아듣는 듯했고, 돼지도 로우숭의 말을 잘 들었다. 로우숭의 돼지를 대하는 태도는 어머니의 애정,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어느날부턴가 로우숭의 돼지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게 된다. 대열을 이탈한 돼지에게 무자비한 매질을 가하는가 하면 돼지를 지키기 위해 들여온 세퍼드가 돼지를 공격할 때면 되려 돼지를 껴안고 눈물을 흘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 것이다. 어느날 돼지 우리에 침입한 범에게 물려 귀를 잃은 후부터였다. 로우숭에게 귀는 돼지와 또는 자연과 소통하게 해주는 통로였다. 귀를 잃고난 후부터 생긴 로우숭의 행동은 자연과의 소통이 단절된 인간들의 비애라고도 볼 수 있겠다. 소설 마지막에서 로우숭이 엽총 하나 매고 와우산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인간의 자연과의 소통을 향한 끝없는 열망의 표현이지 않을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만주라는 소설의 배경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소설에서 만주는 일본 제국주의의 괴뢰정권이었던 만주국(1932~1945)이다. 만주국은 명목상으로는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가 통치하는 모양새를 취했으나 허수아비에 불과했고 실질적으로는 일본 제국주의 군벌이 통치하는 국가였다. 찬호가 농업교사로 초빙된 것도 만주국의 교육 방침 때문이었다. 찬호가 교원생활을 청산한 것은 당시 지식인의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었던 한계를 보여주는 듯 하나 찬호가 교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양돈사업도 사실은 만주국의 자급자족을 위한 경제 캠페인의 일환이었다.

시대적 상황에 비춰볼 때 이 소설의 낭만주의적 경향은 조선 이주민들의 삶에 대한 희망과 의욕을 사실주의적이고 현실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도 있지만 일제의 정책에 부응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만주라는 지역이 가지는 공간적 의미 때문이다. 일제의 수탈로 조선 민중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민족적 차별이 존재하는 그래서 어느 곳보다 독립운동이 활발히 펼쳐졌던 지역이 만주였다. 후에 안수길에 민족주의 콤플렉스에 시달린 이유이기도 하다. 저항문학도 그렇다고 친일문학도 아니었던 안수길의 소설들이 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안수길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그의 소설들을 좀 더 읽어봐야 그 해답이 보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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