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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맹세와 사랑의 여신, 이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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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히타이트 말로 ‘이샤라Ishara’는 ‘매우 중요한 약속’을 의미하며 ‘맹세의 여신’으로 의인화되기도 한다. 후르리와 셈족 전통에서 이샤라는 사랑의 여신으로 종종 이쉬타르Ishtar와 동일시된다. 이샤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이쉬와라Ishwara’라고 한다. 이샤라 숭배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에블라에서 숭배되기 시작했고 이후 니푸르, 시파르, 키쉬, 하르비둠, 라르사, 우룸 등으로 확산되었다. 이 말은 기원전 19세기부터 퀼테페 문헌(아나톨리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문헌으로 특히 퀼테페는 인도-유럽어족 언어의 초기 기록이 발견된 장소이기도 함)에서 차용어로 입증되었으며 인도-유럽어족에서 가장 먼저 입증된 단어이다.

 

이샤라가 등장하는 터키 야질리카야 유적에서 발견된 부조

 

여신으로서 이샤라는 맹세를 어긴 자에게 가혹한 육체적 처벌을 가할 수 있었다. 육체적 처벌 중에는 내장에서 새어 나오는 액체가 뱃속에 괴는 병인 복수도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이샤라는 병이 나면 연민이 발동하는 의약의 여신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심지어 ‘이샤라의 병으로 괴로워하다’라는 뜻의 ‘이샤리스Isharis’라는 동사도 있었다. 이샤라는 또 후르리 판테온에서도 숭배되었다. 그녀는 저승과도 연관이 있었다. 이샤라의 점성술적 구현은 전갈자리이고 일곱 개의 별 즉 세비티Sebitti(아시리아 판테온의 일곱 명의 전쟁의 신들)의 어머니로도 불렸다. 이샤라는 기원전 3천년 경부터 지금의 시리아 지역에서 잘 알려졌다. 그녀는 후르리족의 위대한 여신이 되었으며 알카, 우가리트, 에마르, 샤가르 바자르 지역에서 폭풍우의 신 테슈브Teshub, 태양신 시메기Simegi 등과 함께 숭배되었다.

 

사랑의 여신으로서 이샤라에 대한 후르리 숭배 전통은 시리아에도 전파되었다. 이샤라는 에블라의 샤르곤 이전 문서에 처음 등장하고 그 후 고대 아카드 문헌에도 사랑의 여신으로 등장한다. 우르 제3왕조 시대(BC 2112년~BC 2004년)에는 드레헴에 신전이 있었고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에는 시파르, 라르사, 하르비둠 등에 성소가 있었다. 시리아의 고대 도시 마리에서 이샤라는 매우 유명한 여신이었으며 많은 여성들이 그녀에게서 유래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카시트 시대(BC 1595년~BC 1155년)까지 이샤라 전통이 이어졌다. 그녀의 주요 별칭으로는 벨레트 라메belet rame로 사랑의 여인 이쉬타르에게도 적용된 별칭이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이샤라를 위한 침대가 정돈되었다’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아트라하시스 서사시에는 이샤라가 신혼부부의 축복을 요청받았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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