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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초룸주 하투샤의 야즐르카야 유적은 기원전 13세기 경 봄축제나 왕의 즉위식이 거행된 국가 성소였다.특히 이곳에는 암벽에 새긴 두 개의 부조가 유명한데 하나는 히타이트 판테온의 최고신 테슈브의 아들 샤루마Sharruma가 왕을 팔로 감싼 채 걸아가는 장면이 새겨져 있으며 바로 옆에는 죽음의 신 네르갈이 사자 네 마리를 두 손으로 거꾸로 매단 채 큰 갈을 휘두르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신화학자들은 샤루마가 무덤에서 깨어난 왕을 네르갈에게 인도하는 장면이라고 주장한다. 이 왕은 기원전 1237년에서 기원전 1209년까지 히타이트 제국을 다스렸던 투달리야 4세Tudhaliya IV였다. 그의 재임 기간에 13개의 댐이 건설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오늘날까지도 터키의 고대도시 알라카회위크에 남아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죽은 왕을 지하세계로 인도한 신 샤루마는 어떤 신이었을까?

 

 

샤루마Sharruma는 히타이트가 채택한 후르리족(기원전 2천년 경 소아시아 지역에 살았던 민족)의 산의 신이었다. 이름의 유래와 의미는 알려져 있지 않다. 히타이트와 후르리 문헌에 따르면 그의 이름은 ‘왕’을 의미하는 아카드어 ‘샤리Sharri’와 관련이 있었으며 루갈-마LUGAL-ma 왕을 수메르그램(Sumerogram, 수메르어 이외의 언어를 표현한 표의 문자)으로 표현한 것일 수 있다. 루비어(고대 아나톨리아의 언어 중 하나) 상형문자에서 그의 이름은 한 쌍의 걸어 다니는 다리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것을 ‘사르마Sarma’라고 읽었다.

 

샤루마는 폭풍우의 신 테슈브Teshub와 헤파트Hepat 여신의 아들이며 야생동물의 여신 이나라Inara와는 남매 지간이다. 그는 호랑이나 검은 표범을 타고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말라티야에서 발견된 일루얀카 부조(BC 1050년~BC 850년 경으로 추정됨)에 그의 아버지 뒤에 묘사되어 있는데 현재 이 부조는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 있는 아나톨리아 문명화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샤루마의 아내는 용 일루얀카의 딸이다.

 

샤루마는 원래 아나톨리아 국경 지대의 황소 모양의 산신이었다. 초기 연구에 따르면 샤루마는 원래 헤파트 여신의 배우자였으나 이후 테슈브가 그의 자리를 대신했고 그는 아들로 강등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서 헤파트 여신은 기후의 신 알레포Aleppo의 배우자였으며 헤파트와 샤루마를 부부로 그린 초기 묘사는 어머니와 아들로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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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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