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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역병의 신 에라가 무서웠던 것은 역병이 초래한 기근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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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 판테온에서 에라Erra는 전쟁과 전염병의 신으로 지하세계의 신 네르갈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에라는 특히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신으로 때로는 전염병을 가져오는 신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파괴적인 본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에라의 가장 일반적인 별칭은 ‘전사’였으며 또 다른 별칭으로는 ‘역병과 학살의 지배자’가 있었다. 한편 두 번째로 언급된 별칭에 관해서는 에라의 파괴적인 힘이 ‘전염병’이 아닌 ‘기근’이나 ‘기아’에 기인했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반면 역병과 기아는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에서는 역병이 기아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에라 신화가 기록된 토판.

 

에라의 배우자는 마미 여신(같은 이름의 어머니 여신은 아님)이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하늘의 신 아누(수메르의 안)였다. 에라는 결국 지하세계의 신 네르갈과 동일시되었다. 에라의 네르갈과의 관련성은 이미 구 아카드 시대(기원전 2350년 ~ 기원전 2200년)부터 확인되었다. 에라 또는 네르갈에 대한 수메르인들의 찬양이 토판에 남아 있지만  두 신이 별개의 신이었는지 아니면 같은 신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네르갈과 에레쉬키갈>의 바빌로니아 버전에 네르갈 때신 에라라는 이름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두 신이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에라의 주요 숭배지는 바빌로니아 쿠타에 있는 에메쉴람(‘메쉴람의 집’이라는 뜻)이었다. 이 곳은 네르갈의 숭배 중심지이기도 하다.

 

에라는 수메르인이 역사 시대에 들어간 최초의 시대인 사르곤 시대(기원전 2390년 ~ 기원전2210년)에 메소포타미아남부에서 처음으로 이름에 신적 요소를 가지고 등장했다. 에라는 기원전 2000년 경부터 두 번의 왕실 찬양문에 등장한다. 첫 번째는 함무라비 왕 찬양문인데 안타깝게도 이 신에 대한 의미있는 무언가를 드러내기에는 너무 단편적이다. 두 번째는 우르-닌우르타 왕에게 바친 찬양문을 포함한 인안나 여신에게 보내는 찬양문이다. 이 찬양에서 인안나와 다른 신들은 왕에게 말하여 왕이 영토를 정직하고 강력하게 통치하도록 인도한다. 엔릴은 우르-닌우르타 왕이 ‘전사 에라’를 포함해 전쟁 신들의 용감한 행동을 모방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신 아시리아 시대(기원전 935년 ~ 기원전 609년)에서 셀레우코스 시대(기원전 311년 ~ 기원전 63년)에 걸쳐 에라는 학술과 문학 토판에서 증명되었다. 에라가 등장하는 가장 길고 잘 알려진 문학 토판은 <에라와 이슘>이다. 정확한 날짜는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이 이야기는 기원전 8세기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라와 이슘>에서 에라는 일시적으로 세상을 장악한 후 전염병으로 바빌로니아를 황폐화시킨다. 이 토판은 폭력의 분출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폭력이 어떻게 질서(신이 세상에 부여한 질서까지도)를 혼란으로 유도하는지와 어떻게 문명을 파괴하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기원전 13세기에서 기원전 9세기 사이에 바빌로니아는 외부의 침략자들에 의해 유린되었다. 이 신화는 저자가 경험한 폭력의 실제 결과에 대한 반영일 수 있다.

 

셀레우코스 우룩 시대(기원전 305년 ~ 기원전 64년) 주문 토판에서 전염병의 출현과 관련된 불길한 주문에는 ‘에라가 대지를 삼킬 것이다’라는 표현이 종종 사용되었다. 죽음을 부르는 자로써의 에라 역할에 관한 언급은 후지리나에서 악마들을 쫓으려는 신 아시리아 주술 시리즈에도 등장한다. 주술 토판의 첫 부분은 다양한 악마들과 악마들이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 에라는 죽음을 가져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사람들을 거리로 내모는 위대한 에라’로 묘사되어 있다. 계속해서 토판은 주술 사제가 악마들을 쫓기 위해 행해야 하는 의식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전쟁과 전염병(역병)의 신 에라를 묘사한 어떤 이미지도 아직까지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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