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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고대인들의 계절에 대한 생각이 투영된 아도니스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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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도니스Adonis 신화는 비극과 죽음, 부활이 결합된 전설적인 러브 스토리이다. 잘생긴 청년 아도니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사랑 이야기의 기원은 고대 근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우가리트,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이미 전해지고 있었다. 전설은 아도니스가 청년이었을 때 사랑의 여신을 만나 죽었지만 그의 연인 아프로디테를 위해 부활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전설은 많은 시인과 작가, 역사가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들의 작품을 통해 주변 지역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다.

 

아도니스는 미라가 변한 몰약나무에서 태어났다. 출처>구글 검색

아돈Adon은 고대 가나안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름다움과 풍요와 부활의 신이었다. ‘아돈Adon’이라는 이름은 ‘지배자’를 의미했다. 그리스 신화와 헬레니즘 세계에서 아돈은 아도니스로 불렸다. 뿐만 아니라 문명에 따라 아돈은 다양한 이름으로 채용되었는데 우가리트에서는 바알,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두무지 또는 탐무즈,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라는 이름으로 전파되었다. 신화는 아돈의 영원한 연인이자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아스타르테를 포함하는데 그리스에서는 아프로디테, 로마에서는 베누스로 알려지게 되었다. 아돈과 아스타르테의 사랑 이야기는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는 사이 뒤엉키면서 아스타르테와 러브 스토리가 없는 불완전한 아도니스 신화로 변질되었다.

 

아돈과 아스타르테 신화가 가나안에서 그리스와 로마로 전파된 데는 지중해 동부의 섬 사이프러스의 역할이 컸다. 그러나 이 전설에 대한 메소포타미아와 가나안의 자료가 부족한 탓에 그리스 작가들은 아돈과 아스타르테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결과 아돈과 아스타르테 전설은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 신화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 신화의 그리스 버전과 로마 버전에도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사이프러스의 왕 키니라스Cinyras에게는 미라Myrrha라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키니라스 왕은 딸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비교하곤 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아프로디테는 분노했고 복수를 결심했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를 시켜 미라를 그녀의 아버지와 사랑에 빠지게 만들어 버렸다. 즉 부녀지간에 근친상간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미라는 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이를 알게 된 키니라스 왕은 딸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니던 미라도 자신의 가증스러운 행동을 후회하게 되었고 신들에게 자신을 보호해 줄 것을 기도했다. 미라의 기도를 들은 아프로디테는 그녀를 몰약나무로 변신시켰다.

 

아도니스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아프로디테. 출처>구글 검색

아홉 달이 지나고 몰약나무에서는 아이가 한 명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아도니스였다. 아도니스는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빼다 박았다고 한다. 어느 날 아도니스를 본 아프로디테는 그의 아름다움에 빠져 다른 여신들로부터 숨기기 위해 지하세계의 여신 페르세포네에게 아도니스를 맡겼다. 아도니스가 지하세계에서 청년으로 성장했을 때 이번에는 페르세포네가 그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급기야 아도니스를 아프로디테에게 돌려주는 문제로 페르세포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신들의 제왕 제우스는 넉 달은 페르세포네와 함께 지하세계에서, 넉 달은 지상에서 아프로디테와 함께, 나머지 넉 달은 아도니스가 원하는 대로 지낼 것을 명령했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여덟 달을 아프로디테와 보냈다고 한다. 아도니스 또한 아프로디테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도니스는 사냥으로 유명했다. 그는 비블로스 근처에 있는 아프카 숲에서 사냥을 즐겼다. 사냥을 즐기던 아도니스는 멧돼지의 공격을 받아 쓰러졌고 아프로디테의 품에 안겨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프로디테는 넥타르를 그의 상처에 뿌렸다. 그런 아프로디테의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스는 끝내 숨을 거두었지만 아도니스의 피와 아프로디테의 넥타르가 섞여 스며든 땅에서는 아름다운 꽃이 피어났는데 향기는 아프로디테의 넥타르를 닮았고 색깔은 아도니스의 피처럼 붉었다고 한다. 이 꽃이 바로 아네모네였다.

 

아도니스의 피는 강으로 흘러 들었고 강 빛깔을 온통 붉게 만들었다. 이 강이 바로 아도니스 강(현재의 나흐르 이브라힘 강 또는 아브라함 강)이었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오래 전부터 심한 겨울비가 내리면 철을 함유한 산화물로 인해 강물이 붉게 변했다고 한다.

 

레바논 베이루트 북쪽 지중해 연안의 고대도시 비블로스Byblos는 아도니스 의식을 지켜왔던 고대 세계의 주요 지역 중 하나였다. 실제로 아도니스 의식들은 기독교 시대 초기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한편 비블로스는 성경의 영어 표현 ‘바이블Bible’의 어원이 되었다.

 

비블로스 사람들은 아도니스의 멧돼지 사건을 실제 이야기로 믿었다고 한다.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비블로스 사람들은 해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 아도니스를 애도했으며 이런 의식은 국가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애도 의식이 끝나면 그들은 아도니스의 장례식을 치렀으며 다음 날에는 아도니스가 부활해 하늘로 올라갔다고 발표했다.

 

비블로스 사람들의 또 다른 놀라운 의식의 대상은 레바논 산에서 발원해 바다로 흘러가는 강이었다. 비블로스 사람들은 아도니스 강이 해마다 그 색깔을 잃어가고 있다고 믿었으며, 아도니스 애도 의식의 징표로 핏빛 붉은 색을 만들기 위해 바다에 붉은 색으로 염색된 자갈들을 뿌렸다. 이때까지도 그들은 아도니스가 레바논에서 상처를 입었으며 그의 피가 강둑으로 흘러갔다고 믿었다. 이 신화는 이 시기 즉 해마다 겨울비가 내린 후에 강물이 붉게 변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아도니스와 아프로디테 신화는 많은 페니키아 도시들에서도 재현되었다. 또 이 이야기는 그리스를 거쳐 로마 시대로 전해졌다. 물론 전해지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약간의 변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설의 본질만은 훼손되지 않은 채 전파되었다. 그 본질이란 아름다운 여신과 잘생긴 청년의 사랑, 그리고 부활이라는 소재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도니스 신화는 메소포타미아 또는 가나안을 포함한 고대 근동 지역의 식물, 농업 문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황량하고 황폐한 겨울과 새 생명이 탄생하는 봄과 여름. 이 신화는 고대인들의 이런 계절에 대한 생각의 반영일 것이다. 아도니스 숭배는 현재까지도 일부 지역-레바논, 메소포타미아, 이란 등-에 전승되고 있으며 이들 지역에서 봄 축제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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