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화와 전설/잉카

창조신 비라코차로 흡수된 지방신 파차카막

728x90

페루의 가장 중요한 성지순례 장소이자 스페인 정복 시대 이전의 복합도시인 파차카막에는 독특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잉카 전설에 따르면 파차카막Pachacamac (케추아어로 Pacha Kamaq)은 원래 대지에 최초로 남녀 인간을 탄생시킨 창조신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인간들이 먹을 음식은 만들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파차카막이 다시 돌아와 창조 작업을 계속하려 했지만 그 사이 남자는 이미 죽었고, 여자는 먹을 것을 찾아 먼 땅으로 떠난 후였다. 절망에 빠져 방황하던 여자는 하늘을 향해 자신의 비극을 끝내 달라고 울며 간청했다.

 

잉카 신화의 창조신 파차카막. 출처>구글 검색


여자의 간절함이 하늘에 도달했는지 태양신 인티Inti는 기근을 끝내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햇빛을 비추었다. 이런 인티의 행위로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을 것이라는 것을 그녀 자신은 알지 못했다. 인티가 자신의 창조물에 개입한 것에 화가 난 파차카막은 갓난 아이를 데려다 갈기갈기 썰어서 대지 위의 다른 종류의 과일과 채소로 만들어 버렸다. 상심한 여자는 인티에게 파차카막의처벌을 요청했다. 그 때 인티는 죽은 아들의 태반과 탯줄을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인티는 그것으로 여자에게 새로운 아들을 만들어 주었다. 그러나 여자가 이번에는 비챠마Vichaama라고 불리는 이 아들을 파차카막의 손이 닿지 않은 곳으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어느 날 비챠마는 파차카막이 어머니를 죽였다는 말을 듣고 그는 필사적으로 어머니를 찾아 다시 달려왔다. 이런 사실을 안 파차카막은 여자의 뼈를 남겨두고 바다로 숨어들기로 했다. 비챠마가 돌아와 어머니가 죽은 것을 알았을 때 그의 분노를 달랠 수 있는 것은 오직 복수뿐이었지만 바다로 숨은 파차카막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오랜 탐색 끝에 어머니의 뼈를 찾아내어 부활시키고 그의 아버지에게 파차카막의 인간 창조물을 모두 돌, 언덕, 후아카Huaca(거대한 바위 또는 기념비를 말함. 후아카들 중 일부는 파차카막 신전의 일부가 됨)로 변신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태양신 인티는 비챠마에게 새로운 인간들과 함께 이 지역을 다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새로운 인간들은 신전을 지었고, 그들의 조상과 기원 그리고 그들의 신들을 숭배하기 위해 그 신전-인티가 파차카막의 인간 창조물을 변신시킨 후아카-을 사용했다. 파차카막은 바다에 숨어 있었지만 신전이 있던 지역과 해안의 사람들과 파차카막이 관련된 지진에 휩싸였다. 그날부터 사람들은 그를 지진의 신으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스페인 정복 이전 파차카막 신전은 잉카 제국의 태평양 연안에서 가장 중요한 신탁이자 종교의 중심지였다.
뛰어난 유적지로써 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온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신탁을 받기 위해 신전으로 순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전에 대한 이러한 헌신과 순례는 잉카 왕실을 기점으로 서기 200년부터 시작되었다. 더구나 이 신전이 백성들의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중요성을 감안해 잉카인들은 이 지역을 정복한 후 종교 지도자들에게 특별한 자치권을 주기로 결심하고 지방신이었던 파차카막을 그들 자신의 판테온으로 흡수하였다.

정리하자면 페루의 고대 도시 파차카막은 원래 신의 이름이었다. 잉카 이전에 기원이 있지만 이 지역을 정복한 잉카 지도자들이 파차카막을 잉카 판테온에 받아들였다. 결국 파차카막은 잉카 판테온의 비라코차Viracocha와 혼합되어 창조신이 되었다. 파차카막 신화는 잉카 제국 정복 이후에 새롭게 편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