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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메소포타미아

'운명의 서판' 지킴이, 나부Nab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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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Nabu는 메소포타미아 특히 바빌로니아-아카드 신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들 중 하나로, 뒤늦은 기원전 1000년 경에야 그의 중요성이 인식되었다. 그는 엔키의 아들이자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과 자르파니툼의 아들로 알려졌다. 이미 수메르 신화에서 나부는 글쓰기와 수확의 여신 니사바Nisaba로 알려져 있었다. 후에 나부는 저술과 지혜의 남신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바빌로니아인들의 존경과 경배를 받았다. 바빌로니아의 많은 저술들에는 ‘나부에게 찬양하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저술과 지혜의 신 나부Nabu. 출처>구글 검색


나부라는 이름에는 ‘예언자’, ‘선지자’, ‘신탁을 읽는 사람’ 등의 뜻이 있다. 아람아(고대 시리아어)의 ‘네보Nebo’와 아랍과 페르시아어의 ‘나비Nabi’ 등은 모두 나부에서 파생된 말로 모두 ‘예언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부는 수 천년 전에 존재했던 성서시대인 다윗왕과 솔로몬왕 때의 고대 도시 에블라의 신 목록에도 언급되어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나부는 훗날 사악한 새 안주Anzu가 훔쳐간 ‘운명의 서판’에 인간과 우주의 운명을 새겼다. 고대 자료에 따르면 나부는 앗시리아 판테온에 들어가기 전에 인간에 관한 신들의 모든 결정을 기록한 마르둑의 서기관이자 조언자였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 무렵 동시대의 우가리트와 아모리 출신 서기관들은 나부의 숭배자들을 메소포타미아로 불러들였다고 한다.

 

나부는 고대 바빌로니아인과 앗시리아인에 관한 운명의 서판을 지키던 신이었다고 한다. 고대 세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운명을 믿었다. 즉 신들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비록 사람들은 자유로운 의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이 사건을 변화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자유의지는 오직 사람들이 정해진 운명에 이르게 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허락되었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북유럽 신화에서 노른들Norns은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고 개인의 운명과 수명을 결정하는 여신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명의 세 자매에 관한 신화를 갖고 있었다.

나부는 바빌론 근처 보르시파에 에지다라는 신전에 거주하고 있었다. 학자들은 이곳에서 나부 숭배의 증거들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나부의 동상은 바빌론으로 옮겨져서 그의 아버지 마르둑을 찬양할 수 있었다. 12일 동안 치러지는 고대 바빌론의 신년 축제인 아키투는 마르둑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지만 그 기간 동안 나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부 숭배는 구 바빌로니아 시대(2000~1600 BC) 특히 함무라비 왕(1792~1750 BC) 시대에 절정을 이뤘다.

저술과 지혜의 신 나부의 상징은 서판 위에 놓여있는 첨필이었고, 그는 보통 뿔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꼭 잡은 그의 두 손은 사제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아버지 마르둑의 것으로 알려진 날개 달린 용을 타고 다녔다. 나부의 신전 에지다에서는 글씨로 장식된 점토판이 제물로 바쳐졌다. 그는 또 지혜의 여신으로 여겨졌던 타슈메트Tashmet(또는 타슈메툼Tashmetum)의 남편이었다.

신탁이라는 그의 역할 때문에 나부는 달의 신 신Sin과도 관련이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점성학자들은 나부와 수성을 연결시켰다. 나부 숭배는 오래 지속되었으며 이집트까지 전파되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부를 달의 신 토트Thoth와 동일시했다. 상이집트와 누비아 남쪽 경계지점에 있는 엘레판티네 섬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신 나부는 5명의 주요 외래 신들 중 하나로 숭배되었다.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의 죽음과 로마 제국의 등장 시기에 나부는 종종 그리스의 태양 신 아폴론과 비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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