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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남녀추니'가 된 헤르마프로디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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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마프로디토스를 바라보고 있는 살마키스. 출처>구글 검색

<조선왕조실록> ‘세조실록’에는 사방지(舍方知)라는 성소수자가 등장한다. 사방지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사방지의 어머니는 그를 여자로 키웠다. 그렇게 자란 사방지는 특히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이런 이유로 사방지는 벼슬한 양반집을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 와중에 사방지는 양반집 과부와 눈이 맞아 인연을 맺었다. 하지만 철저하게 신분사회였던 조선 시대에 둘의 사랑은 결코 용납될 수 없었다. 사방지의 출신은 노비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방지는 여자가(?)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둘의 사랑은 요즘으로 치면 동성애였으니 더더욱 해괴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조정에까지 들어갔다.

 

급기야 사방지는 사헌부에 체포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세조는 사방지의 몸을 확인하도록 했다. 놀랍게도 사방지는 겉모습은 여자였으나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세조의 반응 또한 의외였다. 세조는 사방지의 이런 특징을 병이라 생각해 과부의 아버지에게 처분을 맡겼다. 과부의 아버지도 딸이 혼자 된 것이 불쌍해 둘이 헤어지는 조건으로 곤장 몇 대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문제는 그 사건 이후에도 사방지와 과부는 계속해서 만남을 이어갔던 것이다. 결국 세조는 사방지를 유배형에 처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명종실록’에도 등장한다. 함경도에 임성구지(林性仇之)라는 양성을 가진 사람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는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갔다. 이런 사실이 함경감사의 장계를 통해 명종에게 보고되었다. 명종은 요물을 죽여야 한다는 관료들의 탄원에도 불구하고 임성구지를 사람들과 격리시키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요물이긴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처럼 한 몸에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진 양성공유자를 우리말로 ‘남녀추니’ 또는 ‘어지자지’라고 한다. 의학적으로는 ‘허마프로다이트(Hermaphrodite)라고 한다. 이 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마프로디토스(Hermaphroditus)에서 유래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령의 신 헤르메스의 아들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르마프로디토스가 남성과 여성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허마프로다이트 즉 남녀추니의 어원이 되었을까.

 

헤르마프로디토스는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두 이름을 합친 것이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어머니를 닮아 용모가 빼어난 소년으로 성장했다. 어느 날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카리아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 근처를 지나가고 있을 때 호수의 님페 살마키스(Salmacis)가 그를 보고 한 눈에 반해 버렸다. 하지만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그의 구애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살마키스는 그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살마키스의 호수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그녀는 헤르마프로디토스에게 다가가 덥석 껴안았다. 헤르마프로디토스가 계속해서 그녀를 떼어놓으려 하자 살마키스는 아예 그의 몸에 착 달라붙어 신들에게 두 몸이 절대 떨어지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신들의 살마키스의 일방적인 사랑이 안쓰러웠던지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어 양성을 지닌 새로운 존재로 결합시켰다. 한편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신들에게 기도해 누구라도 살마키스 호수에서 목욕을 하면 남자로써의 기능을 잃게 해 달라고 했다. 기원 전후까지 사람들은 남자들이 이 호수에서 목욕을 하면 남성의 기능을 잃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 속에도 그리스 신화 속에도 자웅동체 즉 남녀추니가 등장한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세조나 명종이 이 해괴한(?) 사건을 두고 요물이니 괴물이니 하기 전에 한 인간으로 생각해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다. 인간보다 더 소중하고 절대적인 가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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