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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헤라(Hera)는 왜 어머니 여신이 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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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 여신과 그녀의 상징 공작새. 출처>구글 검색

로마 신화의 유노(Juno)로도 잘 알려진 헤라(Hera) 여신은 신들의 집단 거주지인 올림포스의 안주인이었다. 즉 제우스의 아내였다. 결혼의 여신 헤라에 관한 이야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나 헤시오도스의 <신통기> 등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헤라는 티탄 신족의 크로노스와 레아의 딸로 원래는 제우스의 누나였다. 헤라를 낳을 당시 크로노스는 우주 최고의 통치자였으나 자신의 자식 중 한 명에게 권력을 빼앗길 것이라는 신탁에 늘 두려움에 쌓여 있었다.

 

신탁을 피하기 위한 크로노스의 노력은 그야말로 엽기적이었다. 그는 레아가 자식을 낳는 족족 통째로 삼켜서 뱃속에 가두곤 했다. 헤라는 헤스티아, 데메테르, 하데스, 포세이돈과 함께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인 크로노스의 뱃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막내인 제우스도 같은 운명이었지만 레아는 제우스를 낳자마자 돌을 보자기에 싸 크로노스가 삼키게 만들어 위기를 벗어났다. 그렇게 살아남은 제우스는 훗날 청년이 되어 크로노스에게 구토제를 먹여 형제들을 구할 수 있었다. 막내인 제우스가 맏이가 된 것이다. 그렇게 다시 제우스를 제외한 형제들과 함께 세상의 빛을 보게 된 헤라는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보살핌 속에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했다.

 

사실 헤라는 제우스의 세 번째 부인이었다. 제우수는 헤라 이전에 메티스, 테미스와 결혼한 적이 있지만 이들은 모두 티탄 신족으로 올림포스 신들과 아버지 세대인 티탄 신족과의 10년 전쟁(티타노마키아)으로 우주의 지배권은 올림포스 신들이 가지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부인인 헤라가 올림포스의 안주인이 되었다. 제우스가 자기 누이인 헤라를 유혹할 때 뻐꾸기로 변신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계속된 제우스의 바람기에도 불구하고 헤라는 제우스의 정식 부인이었다. 헤라는 결혼 선물로 가이아로부터 황금 사과가 있는 정원을 받았다.

 

헤라는 조언을 넘어 제우스를 인도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가부장적 사회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일례로 헤라, 아테나, 포세이돈은 테티스가 헤카톤케이레스인 브리아로스를 신들의 경호원으로 활동시켰을 때 제우스를 감금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 후 헤라는 출생과 결혼의 여신으로 숭배되었다. 그리고 헤라는 매년 처녀성을 회복하는데 이를 위해서 헤라는 해마다 카나투스 샘에서 목욕을 한다고 한다.

 

헤라 여신 숭배는 고대 그리스 전역에 퍼져 있었다. 코린트, 델로스, 올림피아, 페스티아, 페라초라, 스파르타, 티린스 등에 헤라 신전이 있었다. 사모스에는 헤라이온이라는 그리스 신전 중 가장 큰 규모의 신전이 있었다. 아르고스와 미케네를 포함한 고대 그리스의 많은 도시들은 도시의 여신으로 헤라를 숭배했다. 뿐만 아니라 헤라에 대한 숭배는 제우스 숭배보다 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곧 남성 중심의 판테온이 여신들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어떤 그리스 문학이나 예술에서도 헤라를 어머니 여신으로는 인식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식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신 아레스, 육아의 신 에일레이티아, 청춘의 신 헤베를 헤라의 자식들로 언급하고 있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도 헤라의 아들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제우스 없이 헤라 여신 혼자 낳은 아들이었다. 바람둥이 제우스가 밖에서 아테나를 데려온 것에 화가 나 낳은 자식이 헤파이스토스였다고….하지만 헤라는 너무도 못생긴 헤파이스토스에 실망해 그를 올림포스 산에서 던져 버렸다. 어쩌면 헤라가 최고의 여신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여신으로 인식되지 못한 이유가 아닐까?

 

또 헤라는 남편의 자식들 즉 의붓 자식들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헤라클레스일 것이다. 헤라는 알크메네가 남편의 자식을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알크메네의 다리를 묶어 출산을 방해하기도 했다. 헤라클레스가 헤라 여신의 명예에 걸맞는 이름을 갖기는 했지만 헤라는 여러 차례 영웅을 죽이려고 했다. 헤라클레스가 아기였을 때 방에 뱀을 풀어놓기도 했고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한 적도 있었다. 유명한 헤라클레스의 열 두 과업도 헤라 여신의 분노로부터 출발했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도 헤라 여신의 박해를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멜레가 제우스의 자식 즉 디오니소스를 임신했을 때 헤라는 세멜레를 속여 제우스가 인간인 세멜레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신이 아니고서는 번개의 신 제우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를 견뎌낼 수 없었다. 그렇게 세멜레는 불에 타 죽었고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열 달을 채우고 태어났다. 하지만 디오니소스는 줄기차게 헤라 여신의 위협에 직면해야만 했다.

 

난봉꾼 남편을 둔 헤라 여신의 숙명이었을까? 여전히 헤라는 질투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남편의 불륜을 도운 에코를 메아리로 만들기도 했으며 암소가 된 이오를 끊임없이 괴롭혔으며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어머니 레토는 헤라 여신의 방해로 출산할 곳을 찾지 못해 몰래 떠다니는 섬 델로스에서 남매를 낳아야만 했다.

 

살펴본 것처럼 헤라는 대체로 어머니 여신 이미지보다는 질투심 많은 여성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신화 속을 곰곰이 들여다 보면 헤라의 이런 질투가 그녀 본성이라기보다는 남편 제우스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쩌면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대중적인 숭배를 받았던 헤라 여신이었지만 남성중심적 판테온이 지배하면서 그 반작용으로 헤라 여신의 위상은 더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헤라 여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헤라는 트로이 전쟁 발발의 원인 중 하나였다. 황금 사과를 놓고 벌어진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최고의 미인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었다. 결과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선택으로 아프로디테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 사건으로 촉발된 트로이 전쟁에서 헤라는 당연히 트로이의 상대인 그리스 연합군 편에서 싸웠을 것이다. 또 헤라는 황금 양털을 구하러 간 아르고 원정대의 영웅 이아손을 도와 임무를 완성할 수 있게 했다.

 

질투와 복수로 유명한 헤라지만 그녀에게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친절한 여신이기도 했다. 키디페는 헤라의 여사제였다. 어느 날 키디페의 마차에 문제가 생겼을 때 그녀의 쌍둥이 아들인 비톤과 클레오비스는 마차를 끄는 소의 멍에를 벗겨 그들의 몸에 걸친 다음 마차를 끌고 어머니를 헤라 여신 축제에 데려갔다. 키디페는 여신에게 감사를 드리고 이들에게 인간으로써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을 달라고 기도했다. 이 형제는 헤라 여신의 도움으로 신전에서 잠이 들었다가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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