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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일본

아베에게 하치만은 전쟁의 신일까? 평화의 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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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신화에서 하치만(八幡神, Hachiman)은 전쟁의 신이자 평화의 신이다. 하치만은 오진(應神, 200~310) 일왕과 동일시 되는데, 진구(신공, 170~269) 왕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리에게 신공으로 익숙한 진구 왕후는 신라를 정벌하라는 신의 계시를 거부한 남편이 갑자기 즉사하자 하치만을 임신한 채 3년 동안 신라를 정벌했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아이를 3년 동안 임신했다는 기록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이야기는 대부분 허구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관련된 임나일본부설의 허구성은 다름아닌 일본인 학자들에 의해 최초로 제기되었다. 일본의 신라 정복설을 뒤받침하기 위해 일본 최고의 역사서인 <일본서기>가 일부 왜곡됐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는 역사적인 사실은 접어두고 신화로만 살펴보고자 한다.

 

전쟁의 신 하치만은 평화의 신이기도 했다. 출처>구글 검색

진구 왕후가 아이를 삼 년 동안 임신했다는 전설은 베트남 신화의 탓 산(Thach Sanh) 이야기와 매우 유사해 보인다. 하치만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인 전쟁의 신이었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수호신 즉 평화의 신이기도 했다. 그의 특징은 힘을 통한 평화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서양인들의 사고 방식과는 달리 하치만의 상징은 흰 비둘기였다. 일본 신화에서는 일반적으로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전쟁의 신 하치만의 전령이었다는 사실이 의아하기만 하다. 하치만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오진 왕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하치만은 신도의 여러 신들 중에서도 기원이 불분명한 신으로도 유명하다. 현대 일본 신화에서는 하치만을 오진 왕과 동일시함으로써 그의 통치 기간 동안 일본의 생활 수준과 문화가 크게 향상되었다고 믿는다. 하치만이 태어난 곳에 신사가 들어섰고 그가 죽은 후 몇 세기가 지나 어린이 모습을 한 가미가 그곳 사제에게 나타났다고 한다. 사제에 따르면 이 가미가 자기를 하치만이라고 알려주었고 이후 왕족과의 연결고리가 생기게 되었다. 하치만의 숭배 중심지는 큐슈의 우사신궁이다.

 

오늘날 이 장소에는 우미하이만구 신사가 들어서 있는데 여기서 하치만은 전쟁으로 신으로 인식되며 전쟁터에 나가는 병사들은 이 신사의 유물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주의가 득세했던 일본에서 하치만의 역할은 평화의 신이자 인생의 수호자로 바뀌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하치만의 역할은 전쟁과 평화를 번갈아 가며 상징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일본에서 하치만은 어떤 역할일까? 특히 군국주의 부활에 여념이 없는 아베 일본 총리에게 하치만은 전쟁의 신일까? 아니면 평화의 신일까? 전쟁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일본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전쟁의 기억을 지우고 또 다른 역사 전쟁을 도발하고 있는 아베에게 아니 아베는 일본 국민들에게 하치만을 전쟁의 신으로 각인시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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