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여호의 책이 있는 풍경 :: 힙노스, 가장 행복한 시간을 위해

작년 침대 매트리스가 폐암 유발 물질인 라돈에 피폭되었다는 뉴스 때문에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가장 편안하고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야 할 잠자리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니 도대체 우리 일상에서 안전이 담보된 것이 있기나 한건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적발된 침대 회사의 모델 중에 '파워그린슬리퍼힙노스'가 있었다. 여기서 '힙노스'는 그리스 신화의 잠의 신을 말한다. 침대 매트리스와 잠의 신. 찰떡궁합 작명이지만 황당하게도 잠의 신 힙노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쌍둥이 형제라는 것이다. 매트리스와 잠, 라돈과 죽음. 그렇다. 윤리를 저버린 장사의 결말은 비극일 수밖에 없다.   


▲잠의 신 힙노스와 죽음의 신 타나토스.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서 힙노스(Hypnos)는 잠의 신으로 밤의 신 닉스와 어둠의 신 에레보스의 아들이다.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는 쌍둥이 형제지간이다. 힙노스는 개념이 의인화된 신으로 호메로스는 그가 렘노스에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힙노스의 거처는 하데스의 나라 즉 하계로 알려졌다. 반면 오비디우스는 힙노스가 킴메리오이 족의 나라에 살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힙노스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와 비슷하게 날개 달린 모습으로 등장해서 모든 사람들을 잠들게 만들어 버린다. 


힙노스가 간접적으로 등장한 것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로 트로이 전쟁 때 헤라 여신은 자신이 포세이돈과 그리스 연합군을 돕는 것을 제우스가 알아채지 못하게 힙노스에게 제우스를 잠들게 해 줄것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헤라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카리테스 자매 중 한 명과 결혼시켜 주겠는 유혹에 넘어가 제우스를 잠들게 했다고 한다. 이 덕에 불리하게 전개되던 그리스 연합군은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로이 전쟁 때 힙노스의 등장은 겨우 등장인물 몇 번에 불과했다. 힙노스가 온전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전설은 단 하나뿐으로 그리스 신화 속 꽃미남 중 한 명인 엔디미온을 사랑한 이야기였다. 힙노스는 엔디미온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사랑하는 연인의 눈을 계속 볼 수 있도록 엔디미온이 눈을 뜬 채로 잘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신들의 세상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눈을 뜨고 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능하더라도 과연 제대로 된 잠을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잠 안재우는 고문도 있었다고 하지 않은가.


그리스 신화에서 힙노스의 역할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영어의 많은 단어들이 힙노스와 그의 형제들에게서 기원했다. 잠을 의미하는 '힙노스'는 직접적으로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안락사를 의미하는 '유타나시아(Euthanasia)'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에서,  불면증을 의미하는 '인솜니아(Insomnia)'는 힙노스의 로마식 이름인 솜누스에서,  공포증을 뜻하는 '포비아(Phobia)'는 공포의 신 포보스에서, 아편의 주성분인 '모르핀(Morphine)'은 꿈의 신 모르페우스에서 유래했다. 타나토스, 포보스, 모르페우스 등은 모두 닉스와 에레보스 사이에서 태어난 힙노스의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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