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대문호답게 세익스피어의 [햄릿]은 주옥같은 명대사들로도 유명하다. 고전 [햄릿]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연극 [햄릿]을 보지 않았더라도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쯤은 들어보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아니 각종 미디어를 통해 때로는 일상에서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인용하는 [햄릿]의 명대사임에 분명하다.
한가지 안타까움이 있다면 이 대사를 처음 접했던 게 [햄릿]이라는 책을 통해서가 아니라 중학교 영어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각박하고 모순된 현실인가! 감수성이 차고도 넘칠 청소년 시절을 교과서 속 세상에만 갇혀 사는 아니 그 세상만 강요하는 현실에 긴 아쉬움과 분노가 느껴지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직접 읽어보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 이런 주옥같은 대사가 탄생했는지 아는 것도 나름 의미있는 독서의 전초전이 일이 될 것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
햄릿 ...중략...아, 이 모든 기억들을 떨쳐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늘 아버님께 매달리시던 어머니, 그 사랑을 받아 어머니의 애정도 나날이 깊어지는 것처럼 보였지. 그런데 채 한 달도 못되어.... 아예 생각하지를 말자.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겨우 한 달. 니오베 여신처럼 온통 눈물에 젖어 가엾은 어버지의 유해를 따라가던 신발이 닳기도 전에. 아, 그런 어머니가 저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사리를 모르는 짐승이라도 좀 더 슬퍼했을 것이다. 한 형제라고는 하나, 나와 헤라클레스만큼이나 차이나는 자와 한 달도 안되어 어머니는 결혼했다. 거짓 눈물에 짓무른 자국이 가시기도 전에 결혼을 하다니! 오, 더럽게도 빠르구나. 어쩌면 그렇게도 재빨리 시동생과의 불의의 잠자리로 달려간단 말인가! ...중략...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아버지 햄릿의 죽음으로 우울증 증세를 보인다. 그러나 이 우울증은 단지 아버지의 죽음탓만은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 그의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햄릿의 어머니 거투르드는 남편 햄릿왕이 죽자 얼마 안되어 햄릿의 숙부이자 차기왕인 클로디어스와 재혼을 하게 된다. 이 현실이 어린 햄릿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혹자는 햄릿의 숙부이자 계부인 클로디어스왕에 대한 복수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동성 부모에 대한 경쟁의식)라는 정신분석학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는 것이 고상한 정신인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물리치는 것이 고상한 정신인가? 죽는 것,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는 온갖 고통도.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 이것이야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잔다. 그럼 꿈도 꾸겠지. 아, 여기서 걸리는구나. 대체 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벗어던지고 영원한 죽음의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 이를 생각하면 망설여질 수 밖에....이 망설임이 비참한 인생을 그렇게도 오래 끌게 하는 것이다. ...중략... 결국 분별심 때문에 우리는 모두 겁쟁이가 되는구나. 생기 넘치던 결심은 창백한 병색으로 물들고, 의기충천하던 위대한 뜻도 그 때문에 옆길로 빗나가 실행의 힘을 잃고 만다. ...중략...
☞어느날 선왕의 유령이 나타나 햄릿에게 자신의 죽음이 클로디어스왕의 계략이었음을 일러준다. 여기서부터 햄릿의 고민은 시작된다. 그러면서 다양한 햄릿형 성격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세익스피어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 고뇌하는 햄릿의 심정을 이 짧은 문장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이 참담한 현실을 도피할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할 것인지....
그 다음에는 침묵뿐.... |
햄릿 아, 나는 죽네, 호레이쇼! 맹독이 내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네. 살아서 영국에서 오는 소식도 듣지 못할 것 같네. 그러나 한가지 말해두지만, 덴마크의 왕위를 계승할 사람은 포틴브라스밖에 없네. 죽음에 즈음하여 내 그를 추천하네. 그 사람에게 그렇게 전해다오. 그리고 사태가 여기에 이르게 된 사정도 자세하게....그 다음에는 침묵뿐....(숨을 거둔다)
호레이쇼 아, 이제 그 귀한 정신이 사라지고 말았구나. 편히 주무십시오. 인정많은 왕자님이여, 많은 천사들이 노래로 전하를 안식처로 인도하리라!(진군하는 소리.) 그런데 어째서 저 북소리가 이리로 오고 있지?
☞클로디어스왕의 계략으로 연인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와의 결투에서 독이 묻은 칼에 찔린 햄릿은 이 대사를 남기고 숨을 거두게 된다. 대문호다운 세익스피어의 감성이 빛나는 대목이다. 처절한 비극의 마지막 장면이 고요한 적막에 휩싸이면서 인간의 숭고한 정신에 대한 감성에 빠져들게 된다. 연극으로 본다면 그 감동이 배가 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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