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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소크라테스가 닭 한마리 빚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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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

플라톤의 [파이돈]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기 전 마지막으로 한 말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아스클레피오스는 '의술의 신'으로 통한다. 그의 능력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죽는 사람까지 살려냈다고 한다. 누군가 죽어야 존재의 의미가 있는 '저승의 신' 하데스의 노여움을 산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병이 나으면 감사의 뜻으로 아스클레피오스신에게 닭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대단한 역설이 아닌가! 죽음을 코앞에 두고 의술의 신에게 감사를 표하다니....또 이 얼마나 당당한 포스인가! 예수, 석가, 공자와 함께 4대 성인으로까지 추앙받는 소크라테스다운 의연함이 돋보이는 극적인 장면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죽음 앞에서 오히려 병이 다 나았다고 했을까?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위대한 철학자인 플라톤은 그가 남긴 많은 대화편 중 대표작으로 꼽히는 [파이돈]을 통해 영혼불사(不死)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즉 죽음이란 영혼과 육체의 분리에 불과하며 영혼은 죽지 않고 또 다른 세계의 여행자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생을 허투루 살지 말라는 것이다. 좀 더 고상한 표현을 빌린다면 진정한 철학자는 살아있는 동안 영혼의 감옥인 육체를 정화해서 죽음에 맞닥뜨려도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올바른 철학적 삶은 신의 축복을 받으며 신의 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렵다. 도대체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이 너덜너덜해졌다. 읽을수록 내 뇌용량의 한계만을 깨달을 뿐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의 대표작을 읽는다는 부담감, 철학의 '철'자도 모르는 내가 오로지 철학적으로 이해하려 드는 무모함,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전체적인 내용이 한 눈에 들어올 즘 깨달았다. 이런 식의 독서라면 평생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어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 나는 철학자도 아니고 다만 무지한 독자일 뿐인데 말이다. 재밌게 읽고 내 방식대로 해석하고 또 새로운 지식의 습득을 즐거이 만끽하면 그걸로 나는 최고의 독서를 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교과서에 빨간색 밑줄까지 치면서 달달 외웠던 플라톤 철학의 특징들, '절대성', 이데아'에 대한 어렴풋한 개념이 잡히는 듯 했다. 플라톤의 저서를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채 소피스트들은 상대성을 강조하고 플라톤은 절대성을 강조한다는 한 줄만 나중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외우고 있었으니 학생들을 교과서에만 매몰시켜 버린 지난 날의 교육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절대성'과 '이데아'의 개념은 이랬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를 통해 영혼은 삶 이전에도 이미 존재했고 죽은 후에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명제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크다'라는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즉 보다 큰 것은 오직 '큼 자체'에 의해서만 다른 것보다 더 큰 것이며, 보다 작은 것은 오직 '작음 자체'에 의해서만 다른 것보다 작다고 주장하는 것이 옳다고 말일세"

A가 B보다 크다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A가 가지고 있는 '큼'이라는 본질 자체가 B가 가지고 있는 '작음'이라는 본질 자체를 이기기 때문이다.

"열을 받아들인 눈(雪)은 절대로 눈일 수 없고, 뜨거운 기운이 접근해 옴에 따라 그곳에서 물러나거나 소멸되어 버림을 자네는 인정할 테지? 또한 불도 냉기가 접근해 오면 물러가거나 소멸되어 버리네. 다시 말해서 불이 냉기를 받았을 경우에도 여전히 그대로 불이면서 동시에 찬 것일 수는 없다는 것일세."

눈의 속성인 차가움의 이데아는 그 반대 성질인 뜨거움의 이데아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혼도 마찬가지다. 영혼의 속성인 생명의 이데아는 그 반대인 죽음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로 영혼은 불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눈물을 흘리는 제자들을 호통치면서까지 독배를 들고 기꺼이 백조의 노래를 부른 까닭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자면 백조는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면 신의 품으로 돌아가게 됨을 기뻐한 나머지 평소보다 더욱 아름다운 노래를 부른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이승에서의 삶에 따라 저승에서도 지옥을 흐르는 4대강(오케아노스, 아케론, 피리플레게톤, 스티기오스)을 배회하면서 계속 지옥에 머물던지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던지 선택된다는 것이다.

정말 인생 막 살면 안되겠다.

고전읽기는 어렵지만 재밌다. 교과서의 헛지식은 직접 읽어봐야만 탈피할 수 있다. 나처럼 이해 수준이 떨어진다면 또 다른 관련 책을 펼쳐보면 된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를 내 멋대로(?) 해석하면 이런 게 아닐까? 몰라서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알려고 하지 않는 게 부끄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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