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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동부에 있는 키프로스 섬에 아낙사레테(Anaxarete)라는 처녀가 살고 있었다. 아낙사레테는 키프로스 섬의 살라미스 시를 건설한 테우크로스의 후손으로 그 미모가 여신들만큼이나 뛰어났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낙사레테는 도도하고 콧대가 높아 어중간한 남자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이런 아낙사레테를 짝사랑한 남자가 있었으니 천민 출신의 목동 이피스(Iphis)였다. 콧대 높은 아낙사레테가 천한 이피스의 사랑을 받아줄 리 만무했다. 심지어는 이런 이피스를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피스는 조롱을 받으면서까지 아낙사레테에 대한 사랑을 접을 수는 없었다. 결국 이피스는 짝사랑의 고통을 참지 못하고 아낙사레테의 집 앞에서 목을 매고 자살했다. 하지만 아낙사레테는 자신을 짝사랑 하다 죽은 이피스에게 일말의 연민도 느끼지 않았다. 이 비극적인 사랑을 내려다 보고 있던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돌처럼 비정한 아낙사레테에게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는 돌처럼 비정한 아낙사레테를 진짜 돌로 만들어버렸다고 한다.


 ▲포모나. 사진>구글 검색


이피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피스와 아낙사라테의 비극적인 사랑을 이용해 사랑을쟁취한 신이 있었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베르툼누스(Vertumnus)였다. 베르툼누스가 열렬히 사랑한 여신은 아름다운 숲의 님페 포모나(Pomona였다. 포모나는 과일의 여신으로 그녀의 관심은 오직 과일나무를 손질하고 과수원을 가꾸는 것뿐이었다. 나무의 신 파우누스(Faunus)와 사티로스(Satyros), 황무지와 숲의 신 실바누스(Silvanus)도 포모나에게 구애를 했지만 실패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지만 이들은 포모나의 사랑을 쟁취할 만큼 끈기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베르툼누스는 달랐다. 베르툼누스는 변신 능력이 뛰어난 자신의 장점을 살려 포모나에게 접근했다.

 

베르툼누스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해 가면서 포모나에게 접근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베르툼누스가 마지막으로 시도한 변신은 노파였다. 노파로 변신한 베르툼누스는 포모나에게 접근해 그녀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면서 느릅나무를 감고 올라간 포도넝쿨을 가리키며 아름다운 포도넝쿨도 느릅나무가 없었다면 땅바닥을 기어야만 했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베르툼누스의 구애를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과일에만 온통 빠져 있는 포모나의 닫힌 마음이 열릴 턱이 없었다.


 ▲포모나와 베루툼누스. 사진>구글 검색

 

노파로 변신한 베르툼누스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더 들려 주었다. 바로 이피스와 아낙사레테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로 사랑하는 이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 마음만큼이나 차가운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가 무서웠을까? 포모나의 닫힌 마음이 열리는 듯 했다. 이 때 노파로 변신한 베르툼누스는 변신을 풀고 다시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와서 다시 포모나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노파의 이야기에 이미 마음이 움직인 포모나는 더 이상 베르툼누스의 구애를 거절할 수 없었다고 한다.

 

베르툼누스의 끈질긴 구애의 승리이기도 했지만 베르툼누스와 포모나의 사랑은 사실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베르툼누스는 변화한다는 뜻의 단어 베르테레(Vertere)’에서 유래한 계절의 신이었다. 과일의 여신 포모나가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의 사랑을 거부한다면 제대로 된 수확을 얻을 리 만무하다. 결국 둘의 사랑은 운명이자 숙명이 아니었을까?

 

과일의 여신 포모나는 나무의 요정인 하마드리아데스(Hamadryades, 하마드리아스의 복수형)의 하나로 과일을 뜻하는 라틴어 포뭄(Pomum)’에서 유래했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포모나는 과일의 여신이 아닌 사투르누스(Saturn,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의 아들이자 라티움의 전설적인 왕인 피쿠스(Picus)의 아내였다고 한다. 피쿠스는 마녀 키르케(Circe)의 사랑을 받았지만 아내 포모나를 너무도 사랑해서 키르케의 구애를 거절했고 분노한 마녀 키르케는 피쿠스를 딱다구리로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라틴어로 ‘Picus’딱다구리라는 뜻이라고 한다. 현대 영어나 프랑스어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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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