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 조선을 위기로 빠뜨렸던 세도정치는 원래 ‘정치는 널리 사회를 교화시켜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는 도리’라는 사림의 통치이념에서 나온 이상적인 정치 도의를 의미했다. 하지만 정조가 죽고 순조가 12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자 정조의 유탁으로 김조순의 딸이 순조의 왕비가 되면서 안동 김씨에 의한 섭정이 시작되면서부터 세도정치는 척신이나 총신이 강력하나 권세를 잡고 전권을 휘두르는 부정적인 정치형태를 의미하게 되었다. 안동 김씨로부터 시작된 세도정치는 이후 풍양 조씨, 다시 안동 김씨, 여흥 민씨로 이어지면서 조선의 몰락을 재촉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섭정, 세도정치의 최후는 정권의 몰락과 피비린내 나는 죽음의 굿판이었다. 비단 역사 속에서만 세도정치가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어쩌면 현실 속 부패한 정치에 대한 메타포일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미모로 바람둥이 제우스의 사랑을 받고 쌍둥이 형제를 낳은 안티오페(Antiope) 가문이 그랬다.
안티오페는 테바이 왕 라브다코스의 섭정을 한 닉테우스(Nycteus)의 딸이다. 닉테우스에게는 안티오페 말고도 닉테이스(Nycteis)라는 딸이 하나 더 있었다. 닉테우스, 안티오페 가문의 섭정은 시작된 것은 닉테우스의 딸 닉테이스가 테바이 왕족의 왕비가 되면서부터였다. 닉테우스는 카드모스를 도와 테바이를 건설한 스파르토이(‘씨뿌려 나온 자들’이라는 뜻) 중 한 명인 크토니오스의 아들이었다. 닉테우스의 딸 닉테이스는 카드모스의 아들로 테바이의 왕이 된 폴리도로스와 결혼하여 라브다코스를 낳았는데 폴리도로스 왕은 아들 라브다코스가 어린 아이일 때 죽고 말았다. 이 때부터 닉테우스는 어린 손자를 대신해 테바이를 섭정하게 되었다.
▲제우스와 안티오페. 사진>구글 검색 |
닉테우스는 외손자 라브다코스가 성인이 되자 그에게 테바이 통치권을 물려주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라브다코스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라브다코스가 죽었을 때 라이오스라는 아들이 한 명 있었는데 겨우 한 살이었다고 한다. 또다시 닉테우스 가문의 섭정이 시작되었는데 이 때부터는 닉테우스의 동생 리코스(Lycus)가 테바이를 섭정하기 시작했다. 테바이의 건설자 카드모스 가문이 2대에 걸쳐 외척들에게 통치권을 넘겨준 셈이었다.
동생 닉테이스가 카드모스 가문에 시집 간 뒤 닉테우스 가문이 테바이를 섭정하는 동안 안티오페는 바람둥이, 난봉꾼 제우스의 눈에 띄게 되었다. 제우스는 안티오페에게 접근해 관계를 맺었고 안티오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아무리 신 중의 신이라지만 제우스의 아이를 임신한 안티오페는 아버지 닉테우스가 이 사실을 알게 될까봐 두려워 시키온으로 도망을 갔고 에포페우스 왕과 결혼했다. 나중에 닉테우스는 이 사실을 알게 되었고 수치심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닉테우스는 죽으면서 동생인 리코스에게 안티오페와 에포페우스를 응징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닉테우스에게 수치심을 안긴 사실이 처녀가 신의 아들을 임신해서인지 아니면 이 사실을 숨기고 도망간 시키온 왕 에포페우스의 아이를 임신해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리코스는 형 닉테우스의 유언대로 시키온을 공격해 에포페우스를 죽이고 안티오페를 테바이로 끌고 갔다. 끌려가는 도중 안티오페는 키타이론 산에서 쌍둥이 암피온(Amphion)과 제토(Zethus)스를 낳았는데 안티오페의 삼촌이자 쌍둥이들의 할아버지였던 리코스는 매정하게도 안티오페의 두 아들을 산 속에 버려둔 채 테바이로 떠났고 훗날 두 아들은 양치기들에게 발견되어 양육되었다고 한다.
테바이로 끌려온 안티오페는 성의 한 구석에 감금당한 채 리코스와 그의 아내 디르케(Dirce)의 온갖 학대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안티오페는 탈출에 성공했고(어떻게 성공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다) 키타이론 산으로 두 아들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쌍둥이 두 아들은 양치기들의 양육에 의해 잘 성장해 있었고 그들은 서로를 알아보며 수십 년 만의 해후를 만끽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얼마 가지 않았다. 두 아들은 어머니가 그동안 학대당해 왔다는 것을 알았고 복수를 결심했다. 결국 암피온, 제토스 두 쌍둥이 형제는 리코스를 죽이고 그의 아내 디르케는 황소에 매달아 죽인 후 그 시신은 샘에 던져 버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티오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 이야기와 연관된 이후 안티오페의 삶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안티오페에 관한 다른 버전에는 안티오페의 죽음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안티오페를 감금하고 탄압했던 숙모 디르케가 디오니소스(Dionysus)의 열렬한 숭배자로 등장한다. 안티오페의 두 쌍둥이 아들이 디르케를 끔찍하게 죽이자 디오니소스는 분노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의 열렬한 숭배자 디르케의 죽음에 분노가 풀리지 않은 디오니소스는 안티오페에게 저주를 퍼부어 그녀를 광녀로 만들었다. 미치광이가 되어 이곳 저곳을 헤매게 된 안티오페는 어느 날 시시포스(Sisyphus)의 손자 포코스(Phocus)를 만나게 되고 포코스의 지극정성으로 안티오페는 디오니소스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된다. 이후 행복한 결혼생활을 즐기며 평생을 해로하다 죽어서는 포코스와 합장되었다고 한다.
|
'신화와 전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우스의 여신들⑧ 타이게테, 전사의 나라 스파르타를 잉태하다 (7) | 2017.04.17 |
---|---|
제우스의 여신들⑦ 세멜레, 함부로 의심하지 마라 (1) | 2017.04.14 |
오리온, 오줌에서 태어나 별이 된 거인 (12) | 2017.04.12 |
포모나와 베르툼누스,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운명 (14) | 2017.04.10 |
셀레네와 엔디미온,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다 (4) | 2017.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