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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전설/그리스

제우스의 여신들⑤ 이오, 질투였을까? 복수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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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하면서도 본다는 게 막장 드라마다. 여기서 막장이란 광산이나 탄광의 갱도 끝에 있는 채굴이나 굴진 작업장을 말한다. 즉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곳이다. 고로 막장 드라마는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간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시청 중에도 자연스레 욕이 나올 수밖에 없는 설정들이지만 막장의 중독성이 얼마나 강한지 단 하루라도 건너뛰면 궁금해 죽을 지경인 것이 막장 드라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타인의 욕망은 헌신짝 버리듯 무시하는 게 막장 드라마의 주된 흐름이다. 갈 데까지 간 인간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를 동원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막장 드라마의 종결자로 불륜만한 게 없다. 늘 결말은 해피엔딩이지만 막을 내리는 그 순간까지 조강지처나 팔불출 남편은 가련하고 불쌍하다. 복수는 꿈도 못꾸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들이다. 결론 장면에 이르러서는 그 응징 장면도 얼토당토하지 않지만 게다가 뻔한 결말이지만 시청자는 마음 조이며 보는 게 막장 드라마의 매력(?)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막장 드라마는 신화 속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올림포스의 주인 제우스의 불륜 이야기는 그야말로 끝이 없다. 또 하나 추가되는 난봉꾼·바람둥이 제우스의 불륜 행각. 이번 상대는 이오Io다.


이오는 강의 신 이나코스Inachos의 딸이었다. 제우스가 천상에서 내려다본 이오의 얼굴은 신화 속 미스 그리스였던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에 견줘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인간이건 신이건 여자만 보면 추근대야 직성이 풀리는 제우스였으니 미모 따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제우스야 신 중의 신이었으니 딱히 불륜에 대한 응징을 받을 일이 없었겠지만 그 상대였는던 이오에게는 크나큰 불행의 시작일 수 밖에 없었다. 가련한 이오의 불행은 제우스의 정실부인 헤라의 육감에서부터 시작됐다.

 ▲암소로 변한 이오. 사진>구글 검색


헤라는 어느 날 주위가 어둑어둑해지는 것을 보고는 육감적으로 남편 제우스가 뭔가 캥기는 게 있어 구름을 일으킨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자의 육감은 틀리는 법이 없다. 헤라가 구름을 헤치고 지상을 내려다보니 제우스가 강가에서 암소 한 마리와 서 있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자의 육감은 확실했다. 제우스는 이오와 사랑을 하다가 헤라가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재빨리 이오를 암소로 변하게 한 것이다.

강가로 내려간 헤라는 남편에게 다가가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암소가 아름답다며 자기에게 선물로 그 암소를 달라고 했다. 제우스는 난감했다. 자기 애인을 아내의 손에 건네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하찮은 암소 한 마리를 달라는 데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도 불륜 행각이 들키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어 암소를 헤라에게 선물로 주었다. 이 때 제우스의 마음은 어땠을까?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기분 그대로였을 것이다.

헤라는 남편에게서 선물로 받은 암소가 여자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헤라는 눈이 백 개나 달린 괴물 아르고스에게 암소를 보내 감시하도록 했다. 암소로 변한 이오는 살려달라고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와 언니들을 봐도 말을 할 수가 없으니 자기 딸이나 동생으로 알아보지도 못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암소를 보고는 풀을 먹이려 하자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오는 발굽으로 'Io'라는 글자를 땅바닥에 새겼다. 급기야 아버지 이나코스는 그 암소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딸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내 아르코스가 와서는 이오를 끌고가 버렸으니 아버지 이나코스의 마음은 천갈래 만갈래였을 것이다.  

제우스는 이런 상황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시켜 이오를 구하도록 했다. 지상에 내려가 양치기로 변신한 헤르메스는 피리를 불며 돌아다녔다. 헤르메스의 피리 소리가 얼마나 구구절절했는지 아르고스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헤르메스는 이 때다 싶어 슬픈 곡조로 아르고스를 잠재워 보려 했지만 백 개의 눈 중에 늘 한두 개는 뜨고 있는 터라 이오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헤르메스는 자신이 불고 있는 피리[쉬링크스, 판의 피리]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애달픈 곡조를 불러도 자지 않던 아르고스 백 개의 눈이 스르르 잠긴 것이다. 헤르메스는 이때다 싶어 아르고스의 목을 잘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렸다. 훗날 헤라는 아르고스의 눈을 자신의 상징인 공작의 꼬리에 달아주었다고 한다. 이 때부터 공작의 꼬리가 그렇게 화려했던 모양이다.

암소, 이오를 감시하던 아르고스가 죽었다고 해서 헤라의 복수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헤라는 등에 한 마리를 보내 이오를 괴롭혔다. 이오는 등에를 피해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바다를 건너기도 했고 평야를 헤매기도 했고 산을 오르기도 했고 해협을 건너기도 했다. 이 때 암소 이오가 건넜던 바다는 이오니아해가 되었고 해협은 보스포로스[암소의 나루]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리 막장 드라마라도 결말은 해피엔딩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애인 이오가 너무 가여웠던 제우스는 헤라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놓고는 다시는 이오를 만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헤라도 자신의 복수극이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했는지 제우스의 약속을 받아들이고는 이오가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찬성했다. 드디어 이오는 예전의 아름다운 모습을 되찾고 아버지와 자매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한다. 

알다시피 제우스와 헤라의 로마 신화 이름은 주피터Jupiter와 주노Juno다. 오늘날 태양계 행성 중에서 가장 큰 목성을 주피터라고 부른다. 또 목성의 위성 중에는 이오가 있다고 한다. 한편 미우주항공국(NASA)의 목성 탐사선 이름이 주노라고 하니 그리스 신화의 미래 버전이 아닐까 싶다. 오늘도 신화 속 그대로 목성 탐사선 주노(헤라)는 남편 주피터(제우스)와 한때의 연인 이오(목성의 위성)가 다시 바람을 피우는지 감시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질투라고 하기에는 너무 과한 복수가 아직도 진행중이라니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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