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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5.27 프로크루스테스와 다양성 사회의 시민 (14)

 

자신의 침로 나그네들을 안내하고 있는 프로크루스테스. 출처>구글 검색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그리스 아티카 지방에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살면서 강도질을 일삼는 도둑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도둑의 집에는 철제 침대가 하나 있었는데 나그네가 그 집 앞을 지나가면 불러들여 침대에 눕힌 다음 나그네의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몸을 잘라서 죽이고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몸을 늘려서 죽였다고 한다. 이 도둑이 바로 그 유명한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란 말이 바로 여기서 유래됐는데 자기 생각에 맞추어 타인의 생각을 고치려 하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을 때 이 말을 흔히 사용한다.


하지만 악명 높았던 도둑 프로크루스테스도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에게 그가 사람들에게 했던 똑같은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테세우스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들어가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죽인 영웅이 아닌가! 그렇다면 테세우스와 프로쿠루스테스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에게는 고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장차 아들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던 아이게우스 왕은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서 술을 조심하라는 신탁을 받게 된다. 이 신탁이 테세우스를 그리스 신화에 등장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아이게우스 왕은 신탁을 받고 돌아가던 중 트로이젠이라는 나라를 방문하게 되는데 여기서 술을 마시고 트로이젠의 공주 아이트라와 동침을 하게 된다. 아들의 탄생을 예견했던 것일까? 아이게우스 왕은 트로이젠을 떠나기 전 자신이 묵었던 방 앞의 섬돌 밑에 칼 한 자루와 가죽신을 넣어두고 아들이 태어나거든 섬돌 밑에 숨겨둔 칼과 가죽신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했다. 일종의 신표였던 것이다. 아마도 이 섬돌은 보통 사람은 들어올릴 수 없는 엄청난 무게였던 모양이다.

아이게우스 왕 예견대로 공주의 몸에서는 아들이 태어났다. 이 아들이 바로 테세우스(Theseus)다. 테세우스는 자라면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16살 되던 해 공주 아이트라가 시킨대로 섬돌을 들어올려 칼과 가죽신을 들고는 아이게우스왕을 찾아가게 된다.

프로크루스테스가 재수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의 운명이었던 것일까? 하필 테세우스가 트로이젠에서 아버지를 찾아 아테나이로 가는 도중에 프로크루스테스를 만난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죽이고 아테나이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아이게우스왕의 후처인 메데이아 왕비로부터 독살의 위험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섬돌 밑에 숨겨두었던 신표로 인해 부자지간의 눈물겨운 상봉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화가 주는 매력은 악(惡)은 언젠가 선(善)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도 선한 영웅의 등장에 최후를 맞이했다. 결국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도 시쳇말이 되어야 한다.

인간이 모여사는 집단에는 무수한 사람들이 사는만큼 무수한 생각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얽히고 설킨 사회를 풀어나가는 방법은 관용과 이해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때로는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하는 것도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과 이해일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해 주고 이해하면서 좀 더 정답에 가까운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역동성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종교나 동성애, 낙태, 난민 문제 등에서 보이는 우리 사회의 갈등은 민주주의에서 한참 멀어진 느낌이다. 다름(차이)을 인정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틀렸다고 단정해 버리는 모습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떠오르는 것은 조금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침대보다 길다고 해서 잘라내고, 짧다고 해서 억지로 늘리려는 프로크루스테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신화 시대 프로크루스테스가 아니라 21세기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깨어있는 시민이기 때문이다.

Posted by 사용자 여강여호 트랙백 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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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wonta.tistory.com BlogIcon 리뷰하는 마범 2019.05.27 00:28 신고

    깨어있는 시민이라는 말이 너무 멋있네요!

  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9.05.27 06:41 신고

    침대의 어원 그래서 생긴거군요.
    잘 배우고 갑니다.

  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bonlivre.tistory.com BlogIcon 봉리브르 2019.05.27 07:20 신고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적용될 때가 있곤 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삶이 훨씬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kangdante.tistory.com BlogIcon kangdante 2019.05.27 07:49 신고

    사회는 점점 다양화되어 가는데
    정치는 언제나 양분을 강요하는 것 같아요
    선과 악의 경계는 과연 어디일까요
    새로운 한주를 여유롭게 시작하세요.. ^.^

  5.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공수래공수거 2019.05.27 08:07 신고

    악은 선에 의해 반드시 무릎 꿇어야 하는건 진리입니다.^^
    프로크루테스에 대해 알아 갑니다.^^

  6.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windyhill73.tistory.com BlogIcon 바람 언덕 2019.05.27 09:55 신고

    오늘 말씀을 정치인들이 새겨들어야 할 텐데요. ㅜㅜ

  7.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patinfo.tistory.com BlogIcon Patrick30 2019.05.27 10:31 신고

    타인과의 차이도 인정할 줄 아는 넉넉함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8.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gimpoman.tistory.com BlogIcon 지후니74 2019.05.27 12:47 신고

    시사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자신만의 침대에 갇혀 지는 이들이 많은것 같습니다.

  9. addr | edit/del | reply 핑구야날자 2019.05.27 13:03

    글을 읽다보면 정국이 어수선 해 한숨만 나오는 것 같아요

  10.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invitetour.tistory.com BlogIcon 휴식같은 친구 2019.05.27 13:31 신고

    섬뜩한 신이군요.ㅎㅎ
    잘 보고 갑니다.

  11.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ramideunioni.tistory.com BlogIcon 라미드니오니 2019.05.27 13:40 신고

    그리스 로마신화를 많이 알면 세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봅니다.
    공감 꾹 누르고 갑니다.^^

  12.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moon104308.tistory.com BlogIcon 문moon 2019.05.27 20:16 신고

    프로크루테스와 테세우스의 신화를 알고 갑니다.
    신화에서도 배울점을 찾아야겠네요. ^^
    편안한 밤 되세요~

  13.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deborah.tistory.com BlogIcon Deborah 2019.05.27 20:20 신고

    마지막 문장에 와 닿습니다. 그래요.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상황을 보게 되면 화가 날때가 있습니다.

  14. addr | edit/del | reply Favicon of https://fumikawa.tistory.com BlogIcon 후미카와 2019.05.27 23:20 신고

    신화에 한참 빠져있을때 읽은적이 있어요. 아마 저 침대에 딱 맞았던거죠? 자신의 틀에 맞춘다는 비유 아주 적절한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