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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5 혈의 누, 이인직 그는 뼛속까지 일본인이었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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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직(1862~1916)의 <혈의 누>/「만세보」연재(1906.7.22~10.10)

신소설이라고 하면 20세기 초에 등장한 고대소설과 현대소설의 가교 역할을 했던 소설을 총칭해서 이르는 말이다. 최근에 논란이 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최초의 신소설로 이인직의 [혈의 누]를 꼽고 있다.


그러나 뼛 속까지 일본인이었던 그를 우리는 ‘신소설의 선구자’ 정도로만 알아왔다.
추억해 보건데 최소 고등학교 시절까지 우리는 이인직을 개화사상과 자유연애를 소설로 설파한 위대한 개화사상가로 배워왔다. 어쩌면 해방 65주년을 앞둔 오늘까지 제대로 된 친일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그의 친일행보가 문학사적 업적에 가려져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우리사회가 덮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본인이고자 했던 이인직의 사상이 가장 짙게 배어있는 소설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혈의 누]라고 할 수 있다.
이인직이 지향하고자 했던 이상향은 제목과 이 소설의 정치적 배경이 된 사건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인직은 ‘혈의 누’의 우리말인 ‘피눈물’을 제목으로 설정하지 않고 굳이 일본식 표현인 ‘血の漏’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 소설의 배경이 된 ‘청일전쟁’을 ‘일청전쟁’으로 표기하고 있다.

뒷간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른 게 사람이라고 했던가? 단순히 친일문학인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이인직의 개인사가 상상 이상의 골수 친일파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면서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온 몸으로 전해져 오는 불편함을 감출 수가 없으니 말이다.

&amp;quot;이인직.jpg&amp;quot;

신소설 [혈의 누]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청일전쟁(저자는 일청전쟁이라고 하였으나)으로 평양에 살고 있던 김관일과 최춘애 그리고 그들의 딸인 옥련은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생사를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김관일은 부국강병의 뜻을 품고 장인의 도움을 받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오르게 되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옥련은 총상을 입고 그녀를 치료해 주었던 일본 군의관의 양녀가 되어 오사카로 들어가 학교 교육을 받게 된다.

자식이 없었던 군의관 부인은 옥란을 친딸처럼 키워왔으나 남편의 전사로 옥란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옥란 때문에 재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양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옥란은 방황을 하게 되고 우연히 구완서라는 한국인 청년을 만나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똑똑한 아이였던 옥란은 미국에서도 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되고 신문에 보도되기에 이른다. 먼저 미국에 와 있던 아버지 김관일은 신문기사를 보고 광고를 내어 옥란과 부녀상봉을 하게 되고 평양에 있는 부인에게 연락해 미국에서 흩어졌던 가족이 상봉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소설 전편에 걸쳐 미신타파, 자유연애 등 개화사상을 다루고 있으나 편협한 친일본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으며 일본인이 되어버린 그의 꿈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옥란을 찾아 헤매던 최춘애가 겁탈당한 위험에 빠졌을 때 도와준 사람도, 총상을 입은 옥란을 거두어 준 사람도 모두 일본 군인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미국 유학을 떠나는 구완서의 목적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구씨의 목적은 공부를 힘써 하여 귀국한 뒤에 우리나라를 독일국같이 연방도를 삼되, 일본과 만주를 한데 합하여 문명한 강국을 만들고자 하는 비사맥(19세기 독일 정치가인 비스마르크)같은 마음이요”

주지하다시피 이인직의 이러한 꿈은 1932년 만주국으로 실현되기에 이른다.

개화사상가들의 편협한 친일본 성향은 조국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인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리나라 사람이 제 몸만 위하고 제 욕심만 채우려 하고, 남은 죽든지 살든지, 나라가 망하든지 흥하든지 제 벼슬만 잘하여 제 살만 찌우면 제일로 아는 사람들이라.”

“옥련의 총명 재질은 조선 역사에는 그러한 여자가 있다고 전한 일이 없으니…”


“그 계집아이 똑똑하다. 우리나라 계집아이 같으면 저러한 것들이 판판이 놀겠지. 여기서는 저런 것들도 모두 공부를 한다 하니 “

이인직의 [혈의 누]가 한국의 고대소설과 근대소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고는 하나
[혈의 누]와 같은 신소설을 통해 그가 이루고자 했던 내선일체의 꿈 또한 정확히 직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인직의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친일의 흔적들이 공경과 경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는 광복 65주년 되는 해이다. 문학계 내에서도 문학사적 업적에 가려진 일부 친일 문학인들에 대한 뼈를 깎는 검증과 이에 상응하는 청산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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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여강여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