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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책 이야기

음식 그림에 담긴 인간의 은밀한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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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미 갤러리/문국진·이주헌 지음/이야기가있는집 펴냄

 

법의학자와 미술평론가가 ‘음식물 정물화’ 속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을 파헤친다. 이 책은 인간의 감각 중 가장 예민한 미각을 주제로 명화 속에 담겨 있는 음식의 풍속과 사람들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다. 인간들이 느끼는 맛은 분위기, 성향, 감정, 심성 등에 의해 좌우되기도 하기 때문에, 저자들은 단순히 ‘맛’이라는 표현보다는 ‘풍미’라는 말로써 명화 속에 담겨진 풍성한 이야기들을 끌어내고 있다.

법의학자 문국진은 음식물에 포함된 과학적, 의학적 의의와 맛의 감각성에 대해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미술평론가 이주헌은 음식 문화가 예술로 승화된 인문적 배경과 역사적 배경으로 명화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 <풍미 갤러리>는 맛이 담긴 음식, 음식에 담긴 사람 그리고 이 모두를 표현하고 있는 그림에 대해 과학적, 인문학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어 그림에 대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안한다.

“제아무리 예쁘게 장식되고 아름답게 꾸며진 음식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는 순간, 우리는 죽음과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


푸줏간에는 지금 돼지 족발, 소시지, 곱창, 가죽이 벗겨진 소머리, 가금류, 생선 등 방금 잡은 온갖 동물들이 걸려 있다. 피테르 아르트센이 그린 [푸줏간](1561)의 모습이다. 어쩌면 풍성해 보이는 먹거리에 행복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핏빛으로 내걸린 동물들은 존재의 사멸, 곧 죽음을 드러낸다. 이것은 동물들뿐만 아니라 인간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음식물 정물화는 죽음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림이다. 음식물이 주는 풍요로움 뒤에는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인식하는 사람은 지금 살고 있는 삶에 대해 진지해질 것이다. 화가들이 그 그림을 그린 이유는 바로 그것이다. 죽음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삶에 대해 감사하고, 삶을 누릴 수 있는 희생에 대해 기도하고 인생을 허투루 낭비하지 말라는 진지한 사색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음식에는 인간의 염원이나 소망, 금기, 호기심 같은 것이 담겨 있다. 그 바탕에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연회장에서 남자들이 굴을 즐기고 있다. 바닥에는 이미 남자들이 먹어버린 굴 껍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기둥에는 비너스와 큐피드가 조각되어 있다. 이제 큐피드는 사랑의 화살을 쏘려고 하고 있다. 천장에는 사랑을 나누는 남녀의 모습이 황금으로 조각되어 있다. 장 프랑수아 드 트루아가 그린 [굴 점심식사](1735)의 모습이다. 굴은 스태미나 음식으로 알려져 있고, 카사노바는 연인들과 사랑을 나누기 위해 하루에 굴 50개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자들은 모두 잘 차려 입었고, 상차림 또한 격식 있다. 하지만 손으로 굴을 허겁지겁 먹고 있다. 격식 있는 모습과는 달리 손으로 굴을 먹는 모습은 육체적 쾌락에 대한 갈망을 의미한다. 천장에 조각되어 있는 황금 조각들은 이 굴을 먹은 후 남자들이 상상하는 바로 사랑의 순간이다.


빈첸초 캄피가 그린 [리코타 치즈를 먹는 사람들]을 입 안 가득 리코타 치즈를 넣은 남자들의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 남자들의 표정에서 드러나는 것은 식욕에 대한 만족도가 곧 성욕에 대한 만족도라는 것이다. 성적 만족도도 물론 해결되어야 하지만, 몇 시간마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식욕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면 인간은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이런 그림들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욕망인 먹는 즐거움에 대해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음식물 정물화를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음식물 정물화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실을 명료하게 전해주는 그림이다. 음식물 정물화뿐만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 대한 모습을 그린 그림들을 그리며 화가는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사티로스는 산속을 헤매던 농부를 만났다. 불쌍한 농부를 구해주기로 한 사티로스는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런데 농부는 손에 후후 입김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사티로스가 물어보자 농부는 언 손을 녹이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집에 온 사티로스는 농부에게 뜨끈한 수프를 대접했다. 그러자 농부는 수프를 한 수저 떠서는 후후 입김을 불었다. 사티로스가 왜 그러냐고 또 묻자 뜨거워서 식히는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사티로스는 냉정하게 농부를 쫓아냈다.


왜 사티로스는 농부를 쫓아냈을까? 그 이유는 어떻게 한 입에서 뜨거운 김과 차가운 김을 모두 내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티로스는 인간의 이중적인 모순에 대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티로스는 이 이야기를 한 농부의 집에서 재미있게 풀어놓고 있다. 이 우화를 야콥 요르단스는 [사티로스와 농부]에서 위트 있게 그려냈다. 인간은 음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음식을 먹지 않으면 생을 영위할 수 없기 때문에 음식은 인간에게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보기 위해 화가들은 이 음식을 가지고 삶과 사회를 풍자해내고 있는 것이다. 가장 절실한 욕망의 주체가 우리의 빈틈을 공격할 때 우리는 아차 하는 깨달음은 물론, 위트 있게 정곡을 찌른 풍자에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는 공식과, 음주의 역사와 문화, 카니발리즘 그리고 음식에 배어 있는 문화인류학적 배경 등을 명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미술이 다뤄온 음식 주제의 그림들과 그 배경에 자리한 인간의 본능적, 역사적, 문화적 욕구들을 두루 살피는 책이다. 풍성한 식탁에 한가득 차려진 음식들, 그리고 그 음식들을 즐기며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숨겨진 이면에는 어떤 욕망이 자리하고 있는지 들여다보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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