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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북 리뷰

종편이 종북이라던 그 책 읽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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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신은미 지음/네잎클로바 펴냄

 

오지 탐험가들이 쓴 여행기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순박하다', '착하다'이다. 우리 상상 속에는 심하게 식인종이라는 편견이 가득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문명의 혜택을 전혀 못 받고 사는 미개인으로 치부하고 마는 원주민들을 두고 한 말이다. 책이 아니더라도 방송을 통해 보여지는 오지 원주민들의 성정은 예상과 달리(?) 착하디 착하고 어린 아이처럼 순진무구하다. 그렇다고 오지 여행기를 쓴 작가에게, 오지 다큐를 만든 제작자에게 '그곳이 그렇게 좋으면 거기서 살아라'하고 비아냥 거리지는 않는다. 제멋대로 그린 보지 않은 세상의 단편을 그들이 직접 보고 새로 그려 주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본 세상이 오지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하지만 슬프게도 누군가가 그려놓은 그림에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될 여행지가 있나 보다. 아니 보았든 보지 않았든 그곳은 늘 어둡고 거친 채색만 해야 한다. 그곳에도 사람이 살지만 살지 않은 것처럼 묘사해야만 한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우리와 달라야만 하고 행복해서는 안된다. 녹슨 철조망 너머의 세상, 한반도의 반쪽, 우리네 절반의 가족이 살고 있는 북녘 땅을 두고 하는 말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재미동포 아줌마의 북한 여행기가 이렇게 논란이 될 줄이야. 사실은 논란도 아니다. 종편(종합편성채널)과 보수언론의 마녀사냥식 종북몰이에 권력이 이때다 싶어 끼어든 형국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보고 있자니 북한 사람이면 무조건 빨간색에 뿔 달린 모양으로 그렸던 어린 시절의 반공구호들이 사방에서 들리는 듯 혼란스럽다.

 

 

 

누가 이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나

 

재미동포 아줌마의 북한 여행기가 이렇게 논란이 될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최근 종편과 보수언론이 '종북콘서트'라고 낙인 찍은 '통일토크콘서트'는 신은미씨와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황선씨가 신은미씨의 북한 여행기인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를 토대로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될 때 몇 번 읽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사람 사는 또 다른 세상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지만 이렇게 논란이 되고 보니 혹시나 제대로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나 싶어 다시 책으로 읽어야겠다 결심했다. 좀 더 직접적인 계기는 전북 익산 신동성당에서 열린 통일토크콘서트에서 일어난 어느 고등학생의 사제 폭탄물 투척 사건이었다.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한 일베 회원들의 행동은 그야말로 애교(?) 수준이었다. 설마 이들의 삐뚤어지고 왜곡된 행동이 테러로까지 연결될 줄이야. 하기야 백주 대낮에 해방 공간에서 정치 테러로 악명 높았던 서북 청년단이 부활하는 요즘이니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누가 이 아이를 괴물로 만들었을지 추측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사고를 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저는 대구에서 태어나 아주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개신교 목사였던 외할아버지께서는 제헌국회를 시작으로 자유당 정권이 몰락할 때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보수 정치인이셨고, 아버지는 한국전쟁 때 육군장교로 참전해 조국의 최북단까지 진군했던 군인이셨습니다. 자연스레 저 역시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왔습니다. -<재미동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머리말' 중에서-

 

학창 시절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은 나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자처한 책의 저자인 신은미씨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자 하는 소망이 있을 것이다. 그 세상이 북한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다. 하지만 정보의 홍수 속에 산다는 이 시대 고등학생이 테러범이 된 데는 정보의 홍수가 독이 된 듯 하다. 바로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왜곡된 프레임이다. 종편과 보수언론이 주도하고 공안기관이 이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수순은 이미 현 정부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지 오래다. 권력과 언론에 의해서 걸러진 정보들이 마치 진실인 양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분단이라는 괴물보다 더 무서운 괴물은 분단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권력과 언론의 패악질인 것이다. 권력과 언론의 패악질이 순수해야 할 한 고등학생을 테러범이라는 괴물로 만들었다고밖에.

 

북한을 비난할 자유는 있지만 북한을 알 자유는 없는 나라

 

특히 종편을 비롯한 보수언론의 북한 관련 보도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이번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경찰 조사에서도 콘서트 참가자들이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표현한 적이 없다고 최종 발표했다. 종편과 보수언론의 왜곡 보도에 우리 사회가 놀아난 셈이다. 실제로 그랬다. 얼마 전 본 한 종편에서 '통일토크콘서트' 관련 토론에 참가한 북한학과 교수라는 사람은 이 콘서트가 종북이라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한가지 예로 신은미씨가 북한은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현재 북한은 200만대 정도의 휴대폰만이 보급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책 어디에도 모든 북한 주민들이 휴대폰을 사용하고 있다는 내용은 없다. 오히려 '연말께 100만을 넘을 것이라는' 이 보수 학자보다 더 보수적인(?) 정보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이곳의 식당들도 한산해 보인다. 설경이가 "지금은 식사 시간이 아니라서 사람들이 없고, 저녁 때가 되면 늦게까지 연다"고 설명을 해준다. 같은 민족이 아니랄까봐 이곳 남성들도 퇴근길이면 동료들끼리 술 한 잔씩을 걸치고 집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점이 아내들의 단골 바가지 메뉴란다. 설경이가 "남자친구도 친구를 좋아하고, 같이 술 마시는 분위기를 즐겨 벌써부터 저도 바가지를 긁습네다"라고 말해준다. -<재미교포 아줌마, 북한에 가다> 중에서-

 

종편이나 보수언론에게 북한은 그저 비난과 비판의 대상일 뿐 제대로 알아야 할 상대는 아닌 모양이다. 도대체 이들이 문제 삼은 종북은 어떤 표현들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식 교육을 고민하고, 일하다 받은 남자친구의 전화에 화색이 돌고, 남쪽 사람들이 관광을 끊은 탓에 먹고 살기 힘들다는 금강산 호텔 직원들의 이야기, 경제난 때문에 탈북자들이 많다는 북한 안내원의 이야기 등등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구나'라는 황당한(?) 소회 뿐이다. 굳이 문제를 삼는다면 신은미씨가 본 북한이 북한 전체 주민의 일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신은미씨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게 문제가 된다면 탈북자들이 밝힌 북한의 모습도 북한 전체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의 얘기대로 북한은 북한이 얘기하는 지상낙원도 아니지만 남한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는 곳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가 저자인 신은미씨가 본 북한의 전부인 것이다. 이게 문제가 된다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너무도 경직된 탓이 아닐까.

 

올해도 대통령은 통일을 얘기한다. 집권 초 '통일 대박'이라고 그랬던가? 이제는 웃음만 나올 뿐이다. 통일할 상대도 모르면서, 통일할 상대를 알고자 하는 최소한의 자유마저도 억압하는 상황에서 통일이라니. 과연 그들이 말하는 통일의 실체는 무엇일까. 북한을 비난할 자유만 있고 북한을 알 자유는 없는 나라에서 통일은 철지난 정치 구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정으로 통일을 생각한다면 재미동포 아줌마가 본 우리네 반쪽의 일상을 아무런 사심없이 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먼저 가져보라고 충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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