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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미세스 오, 아내가 하룻만에 가정도우미를 바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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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스 오/윤선영(1972~)/2014

 

명품 토트백에 수천 만원 짜리 정장을 입고, 믹스커피보다는 원두커피를 즐기고, 일하는 내내 클래식을 듣는 가정도우미가 있다면 당시는 기꺼이 고용하겠는가? 가정도우미라고 그렇게 입고, 그렇게 먹지 말라는 법은 없다. 지나친 편견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아내는 이런 가정도우미를 들이고는 하룻만에 직업소개소에 전화해 조선족 도우미로 바꾸고 말았다. 아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윤선영의 단편소설 <미세스 오>에는 범상치 않은 가정도우미가 등장한다. 바로 미세스 오가 그녀다. 반면 아내(소설 속에서는 여자로 등장하지만 내용상 아내로 통일함)는 최근 아소 일본 부총리가 사회비용 증가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한 요즘 젊은 여성이다. 육아와 가사는 물론 직장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는 지극히 일반적인 요즘 여성이다. 음식물 쓰레기와 재활용품 내다버리는 일로 가사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는 남편의 아내이자, 육 개월 된 아기의 엄마이자, 웹툰작가다. 아내는 그럴 수만 있다면 사흘 밤낮을 깨지도 않고 깊은 잠을 자고 싶을 만큼 일상이 버겁다. 흡사 포탄이라도 맞은 듯한 집안 풍경도 모두 아내의 몫이자 책임이다. 결국 남편과 합의 끝에 가정도우미를 들였지만 하루를 못 버티고 바꾸고 말았다.

 

여전히 녹녹치 않은 일하는 여성의 현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중에서. 사진>다음검색 

 

소파 위에는 가방과 옷가지가 널려 있고 소파 테이블에는 책과 잡지들, CD와 과자봉지 들리 빈틈없이 올려져 있어 상판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거실 바닥에는 보행기와 일회용 기저귀 패키지, 장난감과 걸레 따위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텔레비전 앞 거실 한가운데 놓인 건조대에는 아직 정리하지 못한 빨래들이 늘어져 있었다. 식탁에는 빈 컵과 스푼, 젖병과 밀폐용기가 함부로 널려 있고, 개수대 안에도 양념과 음식 찌꺼기가 묻은 그릇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오랫동안 걸레질을 하지 못한 바닥은 얼룩지고 끈적거렸다. -<미세스 오> 중에서-

 

아내는 애초에 자신을 위해 누군가를 부리는 일에 저항감이 있었다. 그것은 미묘한 죄책감이었다. 비단 아내뿐이겠는가. 보통 사람들에게 내 일을 누군가에게 맡긴다는것이 그리 녹녹한 선택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남녀평등 사회라지만 여전히 가부장적 전통을 무시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게다가 예전처럼 부부 중 어느 한 쪽의 수입만으로는 도저히 감당해내기 힘든 지출 목록들이 한 두 개로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육아와 가사는 여성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전업 주부건 직장 여성이건 별반 차이가 없다. ‘누군가를 부리는 일에 대한 저항감은 이런 가부장적 전통이 만든 습관의 문제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아내는 불편했다.

 

여자는 냉장고를 열었다. 냉장고 안 역시 엉망이어서 누군가에게 보이기가 부끄러웠다. 제가 준비할 테니 가서 일 보세요. 바쁘신 것 같은데.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는 여자의 등 뒤에서 미세스 오가 말했다. 아뇨, 여태 계속 일하셨는데, 까지 말하고 여자는 말꼬리를 흐렸다. 아줌마 혹은 아주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하려니 어쩐지 실례를 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렇다고 다른 고용인들이 흔히 그러듯 이모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미세스 오> 중에서-

 

커피믹스는 못 마셔요.”

 

무엇보다도 아내는 미세스 오라는 가정도우미를 보면서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 범상치 않은 차림새에 클래식을 듣고 커피믹스는 못 마신다는 가정도우미를 보고 아내는 사업가인 남편이 부도라도 낸 것일까? 아니면 심심풀이로 가정도우미를 한 것일까? 생각이 복잡했다. 누군가와 통화하는 미세스 오는 분명 경제적으로 쪼달리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 화려한 차림새와 교양과 품위가 넘치는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빚을 내서라도 명품을 즐긴다는 사회 한 쪽의 세태가 집으로 들어온 것일까? 아내는 이런 가정도우미에게 자신의 해진 속옷까지 내주는 일이 자신의 치부를 내보인 것처럼 치욕스러웠고 급기야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에 휩싸이기도 했다. 또 미세스 오처럼 가정도우미를 했던 아내의 어머니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졌다.

 

여자의 어머니는 속옷을 일일이 손세탁해주기를 원하는 집도 적지 않다고 여자에게 말했었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의 생리혈이 묻은 팬티를 손으로 세탁하기도 한다고 했다. 야기를 전해듣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역겨웠고, 화가 치밀었다. 부끄럼 없이, 염치도 없이, 그런 일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라도 되는 양 타인에게 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란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미세스 오> 중에서-

 

스팀청소기 대신 손걸레질을 해야 한다는 아내의 말에 얼굴이 창백해진 미세스 오에게 계속 집안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내는 생판 낯선 사람이었던 미세스 오를 문득 문득 떠올리게 될 것이었다.

 

요즘 사회는 결혼을 미루는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며 싱글세를 도입한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는 젊은 부부들을 향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반가족계획 광고를 틀어대고 있다. 어째 앞뒤가 바뀐 것 같지 않는가? 왜 결혼을 미루고 왜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없다. 오히려 복지 얘기만 나오면 쌍심지를 켜고 좌파종북이니 하는 얼토당토않는 냉전시대의 유물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선전구호만 쉼없이 외쳐댄다. 게다가 남녀의 성역할에 대한 가부장적 인식은 여전히 공고한 성벽처럼 과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성이 안심하고 육아와 가사, 일을 병행할 수 있는 미래는 우리 사회의 복지와 성평등을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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