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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포스팅/한국대표단편소설

봄밤, 분수를 아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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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권여선/2013년

 

두 수의 비의 값을 분수라고 한다. a/b라는 식으로 표현하며 a를 분자, b를 분모라고 한다. 분자가 분모보다 작은 분수를 진분수, 분자가 분모보다 큰 분수를 가분수라고 한다. 파고 들어가면 더 골치가 아플터, 분수를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아니 적용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 물론 장점이 많은 사람이면 그 값은 1보다 큰 가분수가 될 것이고, 지나치게 단점만 많은 사람이라면 진분수가 될 것이다. 톨스토이의 <부활>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톨스토이는 왜 혁명가 노보드보로프를 하위 수준의 혁명가로 간주했을까?

 

노보드보로프는 혁명가들 사이에서 대단한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또 훌륭한 학자이고 아주 현명한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흘류도프는 그를 도덕적 자질로 봐서 일반 수준보다 훨씬 하위의 혁명가 부류로 간주했다.

 

톨스토이에 따르면 노보드보로프는 이지력은 뛰어났지만 자만심 또한 굉장하여 결국 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이지력이 분자라면 자만심은 분모여서 분자의 숫자가 아무리 크더라도 분모의 숫자가 그보다 측량할 수 없이 더 크게 되면 분자를 초과해버리기 때문이었다. 즉 인간은 장점인 분자를 키우던지 아니면 단점인 분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존재 가치를 높여가는 것이다.

 

▲영화 '장수상회' 중에서 

 

여기 분수를 아는 중년의 연인이 있다. 영경과 수환, 그들은 쉰다섯 동갑으로 12년 전 봄 수환의 고등학교 동창인 신랑과 영경의 대학교 동창인 신부의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 그 후로 매일 만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영경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둘은 분모가 지나치게 큰 커플이었다. 한 번씩의 결혼 실패를 경험했고 지금은 둘 다 요양원 신세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 사람들은 그들 부부를 '알루 커플'이라고 불렀다. 영경은 중증의 알코올중독이었고 수환은 류머티즘 환자였다. 둘의 사랑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안쓰러운 것은 보통의 연인보다 지나치게 큰 분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분자를 늘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식으로 사랑을 지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뭐야? 마음이 식은 거야?"

"아니, 입냄새 때문에 그래."

"그게 뭐 어때서? 입이 말라서 그런 건데."

"그래도 오늘따라 유난히 짜고 쓰네."

"난 괜찮아."

"내가 싫어. 달콤까지는 안 되도 간간한 정도만이라도 지키고 싶어서 그래."

-<봄밤> 중에서-

 

 분모야 어쩔 수 없다 쳐도 분자라도 늘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둘의 사랑은 그렇게 애틋하고 애잔하다. 하지만 중증의 알코올중독자인 영경은 이혼 후 아이를 빼앗긴 아픔 때문인지 용양원에 있으면서도 술을 끊지 못했다. 결국 요양원 관계자들의 양해를 얻어 자주 술을 마시러 읍내로 나가곤 했는데 그들의 첫 만남이 봄밤이었듯 마지막이 봄밤일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날 봄밤도 영경은 읍내 편의점에서 술과 컵라면을 사가지고 모텔에 들어갔다. 그 시간 수환은 끝내 영경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모텔 주인의 신고로 의식불명인 영경이 요양원의 앰뷸런스에 실려왔을 때는 이미 수환의 장례가 끝난 후였다.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에도 영경은 여전히 수환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다만 자신의 인생에서 뭔가 엄청난 것이 증발되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영경은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렸고 다른 환자들의 병실 문을 함부로 열고 돌아다녔다. 요양원 사람들은 수환이 죽었을 때 자신들이 연락두절인 영경에게 품었던 단단한 적의가 푹 끓인 무처럼 물러져 깊은 동정과 연민으로 바뀐 것을 알았다. 영경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그리고 수환이 떠난 후에야 비로소 안심하고 죽어버렸다는 것을, 늙은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봄밤> 중에서-

 

사실 영경은 알코올성 치매로 금치산 상태에 놓인 상황이었다. 수환이 떠나던 날 읍내로 나간 영경은 김수영 시인의 '봄밤'을 연신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날 딱 하룻밤만 마시고 요양원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다. 영경은 죽을힘을 다해 견디며 절제했다. 분모가 지나치게 커버린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영경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인내와 절제를 통해 분자를 키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제삼자나 독자들이 볼 때는 수환의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한 영경에게 단단한 적의를 품었겠지만 영경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수환을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환도 그랬다. 영경이 알코올중독 증상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려울 때마다 외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이 또한 수환 나름의 사랑법이었다. 수환은 영경의 이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에 죽는 순간까지도 영경을 원망하거나 기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절.제.여.나.의.귀.여.운.아.들.이.여.오.오.나.의.영.감.이.여.……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삶의 방식과 사랑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라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도 태반이다. 하지만 왜곡하기 전에 이해하려는 과정은 생략되기가 일쑤다. 사랑도 그렇지만 단점인 분모보다 장점인 분자를 키워나가는 과정이 인생의 여정이 아닐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그런 분자의 방편일 것이다. 분모가 워낙 커서 우리의 분수를 1보다 키울 수는 없다치더라도 0에 수렴되어 가는 것보다는 1을 향해 치고 올라가는 과정이 제대로 된 인생이고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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